목욕을 마치고 나온 9살 2호(쌍둥이 동생)에게 연고를 발라주던 중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2호 사타구니에 습진이 생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에 속상한 마음으로 연고를 발라주던 차였습니다. '마음이 통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물었습니다.
"응? 아빠가 '고마운 사람'이야?"
"아니오. '꼬마 눈사람'이요."
연고에 이어 아빠가 발라 줄 로션을 기다리며 2호는 홀딱 벗은 채로 덜덜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고랑 로션 빨리 발라주세요. 저 '꼬마 눈사람' 되겠어요"
아이가 '꼬마 눈사람'이라고 한 말을 모음이 비슷한 '고마운 사람'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자신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연고를 발라주는 마음이 전달됐을 거라 착각하며 김칫국을 마신 제 자신에게 웃음이 났습니다.
이내 1호(쌍둥이 형)도 목욕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꼬마 눈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얼른 로션을 발라줬습니다.
정신없이 1호, 2호에게 로션을 발라주고 방에서 한숨을 돌리던 있었습니다. 혼자서 옷을 입은 1호에게 아내가 한 마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윗) 옷을 거꾸로 입었잖아. 매번... 그것도 능력이다"
아이의 대답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초능력이에요?"
1호는 상기된 얼굴로 저에게 달려와 소리칩니다.
"아빠, 저 초능력 있어요."
저희 집엔 쌍둥이가 있습니다. 한 명은 '꼬마 눈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초능력자'입니다.
같은 상황 다른 생각...
같은 말 다른 해석...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부모가 거는 기대와 아이가 체감하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이의 작은 실수도 관점에 따라서는 재능이고,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로션을 발라주고 2호에게 물었습니다.
"꼬마 눈사람이 추웠구나. 근데 아빠는 사타구니 염증이 걱정돼서 연고를 골고루 발라주려고 오랫동안 바른 건데 하나도 안 고마워?"
장난치며 하나도 안 고맙다고 말하던 2호가 마지못한 듯 웃으며 말합니다.
"사실 미세먼지만큼 고마워요"
아이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생각 차이 그리고 입장 차이는 어쩌면 '미세먼지'만큼의 신뢰와 공감대가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게 아닌지.
아이들은 조만간 사춘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겠죠. 오늘의 깨달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