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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때가 있다

지금은 골절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 때다.

by 오늘도 생각남
며칠 더 입원하면 안 되겠니?
치료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발등 골절로 입원한 지 일주일. 퇴원 날 아침,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깁스한 채로 집에서 쌍둥이들과 하루하루 씨름 할 아들이 걱정 되시는지 입원 연장을 권하셨다. 당신은 경험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고 그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최근 누님의 교통사고를 통해서 어머니는 그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셨다.


1년 . 누님은 추돌사고를 당했다. 횡단보도에 정지해있는데 뒷 차가 트렁크를 들이박은 것이다. 차가 많이 찌그러져서 폐차를 했다고 하니 그 강도가 짐작이 갔다. 차에는 누님과 여섯 살 조카가 타고 있었다. 차가 심하게 흔들려 누님은 목과 어깨에 상당한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누님은 안전밸트를 안 한 조카때문에 더 놀랐다. 안전벨트를 잘 하던 조카는 그 날 따라 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다. 평소 아이에게 큰 소리 한번 낸 적 없던 누님은 너무 놀란 나머지 '괜찮냐'는 말보다 '왜 벨트를 안했냐'며 아이를 혼 냈다고 하니 누님이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히 갔다.


누님은 통원치료로 물리치료를 받았다. 사무실도 바빳고 첫 교통사고로 놀랐을 딸을 생각하며 입원은 생각을 안 한 것이었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무섭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누님의 목과 어깨 통증은 심해졌다. 고통을 호소하던 누님은 사고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입원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보험처리는 안된다고 안내를 했다고 한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면 지금도 목과 어깨부터 통증이 온다고 누님은 말한다. 퇴원하는 동생에게 누님은 어머니와 비슷한 말을 전했다. '치료에도 다 때가 있더라. 애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니 몸 먼저 챙겨'.

때가 있다


입원비를 정산하고 퇴원 할 짐을 싸면서도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때가 있다... 때가 있다... 분석과 의미 찾기를 좋아하는 나는 '때'라는 단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때'는 네 가지 정도로 정리 할 수 있을 듯 하다.


먼저, '초동조치'의 때다. 문제가 발생한 직후부터 일정 시간 내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다. 사고를 당했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의 초반 조치나 치료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산모가 출산 직후 몸조리를 잘 해야하는 상황도 이에 포함된다. 이 '때'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둘째, '타이밍'의 때다. 이 '때'는 사람 관계에서 중요하다. 회사에서 보고를 할 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고수들은 식사시간 직전, 퇴근시간 직전 그리고 상사의 심기가 불편한 경우 보고를 피한다. 타이밍은 남녀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연애 하수들은 자신의 감성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고백하는 반면, 연애 고수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순간에 고백한다. 타이밍을 잘 잡기 위해서는 항상 안테나를 세워놓고 상황을 주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셋째, 마감시간의 '때'다. 글 쓰는 이들의 투고 마감시간. 범죄자를 잡기 위한 공소시효. 정치인들의 임기 등. 이 때는 말 그대로 '데드라인'이다. 이 때를 놓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우리 어머니는 '밥 때'의 데드라인을 항상 강조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끼니 놓치지 마라. 점심시간 지나면 점심밥 못 먹는다. 아무리 두 그릇 먹어도 저녁에 먹는 밥이 점심은 아니다.'


넷째, 숙성의 '때'다. '임계점'이란 말이 있다.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다른 상태로 바뀔 때의 온도와 압력을 말한다. 개인의 성장에도 임계점이 있다. 하루하루의 스몰스텝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 것은 천지차이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끊임없는 노력에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 99도까지의 지루한 루틴을 버틸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때는 '초동조치'의 때다. 쌍둥이들이 몸으로 놀아달라고 아무리 아빠에게 달려들어도, 아내가 쌍둥이를 챙기면서 다리 깁스를 한 남편까지 챙기느라 힘들다고 투정을 부려도 가족들에 대한 사랑은 잠시 농축시켜 놓아야 할 때다. 다리가 나은 다음 그 농축된 사랑을 찐하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건강 회복을 최고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시간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내 깁스 안의 복숭아뼈에도 때가 있다. 그 때는 숙성시켜야 하는 때다. 5주를 묵혀두어야 한다. 그리고 5주 후 깁스를 푸는 날, 그 날이 그 때를 처치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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