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by 오늘도 생각남

그날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1998년 11월, 시무룩한 얼굴로 나는 수능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근 2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큰 좌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능은 고등학교 때까지의 19년 삶의 유일한 목표였고, 그때까지 살아온 삶을 평가하는 단일 지표였다.


수능 시험장을 들어설 때는 영화 같은 엔딩을 꿈꿨다. 수능시험을 잘 마치고 시험장을 나서면서 하루 종일 애간장 녹이며 추운 곳에서 떨었을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칠 작정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현실은 영화 같지 않았다. 순진한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1998년 수능은 '불수능'이었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현실에 '순응'하기 어려웠다.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수능 시험장을 나섰다. 시험을 망쳤다는 좌절감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식만큼은 당신들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고 농사일은 손도 못 대게 하며 공부에만 전념하라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간절함과 기대에 차 있던 부모님의 얼굴은 죄인의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들을 보며 점점 굳어갔다.


'수고했다'는 짧은 한 마디를 하시고는 시험장에서 집까지 오는 택시 안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났을 무렵 우연찮게 외삼촌에게 1998년 수능 시험 뒷 이야기를 듣게 됐다.


"너희 어머니 그때 일주일 간 앓아누우셨잖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시험을 망치고 풀이 죽어있는 아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병져 누우셨던 것이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이다. 의도치 않게 두 배로 불효를 했던 나.


수능시험을 본 후 근 20년이 흘렀다. 살다 보니 세상에는 수없이 중요한 시험들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위한 시험, 취업 후 성과와 실력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 시험지에 답을 적어서 내지 않을 뿐 사회생활은 매일매일이 시험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장의 수입과 직결됐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그 시절 수능 점수는 지금 직장의 입사시험 그리고 현재 월급에 '1'도 관련이 없다.(도움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어쩌면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일 것이다. 첫사랑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말로도 그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랑을 하고, 세 번째 사랑을 하고 나면 이별은 또 다른 사랑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나는 하늘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20년쯤 지나니 이제는 것 같다. 그 수능이 내 삶에서 갖는 의미를.


수능이 끝난 후 하늘이 무너진 것 같고 죽을 만큼 힘들다면 유체이탈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문제 안에서는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지구 안에서는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처럼.


10년쯤 후의 내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지금 나는 어느 지점쯤 와있는지. 그 지점에서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내 삶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수능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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