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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땅거지냐?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당연한 듯 아빠에게 주는 아이들

by 오늘도 생각남

둘째 준이(8살)가 사탕을 먹으려다 거실 바닥에 떨어뜨렸다. 준이가 어떻게 처리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쌍둥이 형 건이(8살)가 당연한 듯이 말했다. 아빠 갖다 주라고.

(준이) 어떡하지?
(건이) 아빠 갖다 줘

건너 방에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드는 생각. '아빠가 땅거지냐?'


돌이켜보면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쌍둥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음식을 먹다가 바닥에 떨어뜨리면 아빠가 처리를 했다. 화장지에 싸서 버리거나 직접 먹거나. 아이들에게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 = 아빠 것'이란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있었던 것이다.


가수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 가사에 보면 전 국민이 공감하는 랩이 있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국민 레퍼토리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나는 배 안고프다. 너희들 먹어라.', '나는 짜장면 싫어한다. 너희들 먹어라'다. 희한하게도 어머니들은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시다. 맛있는 것을 보면 갑자기 입맛이 떨어지신다. 더 희한한 것은 자식들이 먹고 남기면 갑자기 입맛이 돌아 남은 음식을 부엌에서 조용히 뒤적이신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는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레퍼토리 완전 백과라 할만하다.


아이들은 스펀지다. 어렸을 적에는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부족하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유일한 기준이 된다.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면' 싫은 줄 아는 것이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아빠가 먹으면' 떨어진 음식은 아빠 것이 되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비밀 아닌 비밀을 조금씩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


부모의 기본적인 임무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다. 그 기본적인 것들을 위해 부모는 부모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수많은 것들을 감수한다. 땅거지처럼 바닥에 떨어진 음식들을 주워 먹는 것을 포함해서. 아이들도 부모의 노력을 알 필요가 있다. 부모의 노고를 생색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의 작은 배려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내 카톡에 메모를 전송했다.

자식교육을 반성하며 내가 나에게 보낸 카톡

아빠가 카톡에 적은 메모 내용을 보고는 자기 방으로 급히 뛰어가는 준이. 잠시 후 배시시 웃으며 나타나 '땅에 떨어지지 않은' 새 것이라며 아빠에게 사탕을 내밀었다.

"땅에 안 떨어진 새 사탕이에요"

의도하지 않은 카톡 교육이 통한 걸까? 아니면 아빠를 달래려는 고도의 전략에 내가 넘어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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