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일기 쓰기 봐주다가 내 글쓰기 실력 늘겠네

아이들의 밀린 독서 일기 방학숙제

by 오늘도 생각남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꼭 밀려서 하게 되는 방학숙제. 최소한 나는 그랬다. 아빠를 닮은 탓일까? 쌍둥이(8살)들도 밀린 독서일기 방학숙제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독서일기를 하루에 한편씩 쓰는 것이 방학숙제 중 하나였다. 3줄 분량이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그동안 작성했던 독서일기장을 보는 데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들 일기장을 보면 '운명처럼' 글을 쓰는 패턴이 정해져 있다. 바로 '놀았다-재미있었다-다음에 또 놀고 싶다'의 3단 구성이다. 나름 '경험-감상-계획'의 탄탄한 구성이긴 하다. 문제는 모든 일기가 이 공식대로만 작성된다는데 있다. 마치 쇠붙이를 만드는 한 가지 모양의 틀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글쓰기 제1의 공식
경험(놀았다) - 감상(재미있었다) - 계획(또 놀고 싶다)


쌍둥이들의 방학 초반 독서노트도 철저히 '글쓰기 제1의 공식'을 따르고 있었다. '봤다-재미있었다-또 보고 싶다'의 구조였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글쓰기 공식을 알려줄 생각에 '인상적인 장면 뽑기'를 제안했었다. 읽었던 부분 중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을 뽑고, 그 이유를 적어보도록 한 것이다.

글쓰기 제2의 공식
발췌(인상적이었다) - 이유(왜냐하면~)


첫째 건이의 독서일기장을 보는데 독서노트 중반부터는 또 '글쓰기 제2의 공식' 일색이었다.


- 8월 19일 : (아홉 살 마음사전) 사람들이 튜브를 타고 물놀이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튜브를 타고 물놀이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 8월 21일 : (공룡) 티라노사우르스가 나오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티라노사우르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8월 23일 : (물범) 아기 물범이 자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자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글쓰기 제3의 공식'을 알려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는 '질문하기'를 제안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질문'하기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궁금한 게 많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그게 무슨 뜻이에요?'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인 단어 뜻부터 궁금해한다. 그리고 '진짜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라고 물으며 그 원리 등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글쓰기 제의 3 공식'은 아이들의 장점을 살려 질문을 해보도록 했다.


글쓰기 제3의 공식
발췌(신기하다) - 질문(왜 그랬을까?)


'글쓰기 제3의 공식'의 장점은 다양하게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육하원칙을 활용하면 글쓰기 3-1, 3-2, 3-3 등의 공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방식이다.


- 주인공(악당)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Why)

- 주인공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How)

-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Who)

- 과거는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When)

- 주인공이 중요한 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What)


홍길동전을 읽어주고 건이에게 궁금한 사항을 독서일기로 써보라고 하니 이번에는 '글쓰기 제3의 공식'대로 작성을 했다.

홍길동은 구름을 타고 나쁜 부자를 혼내줬다.
홍길동은 어떻게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질문에 대한 답도 써보라고 하려다가 그것까지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숙제를 끝냈다. 돌아보면 내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은 글쓰기 제1의 공식으로 도배가 돼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다 보니 되려 내 글쓰기 공부가 되는 기분이다. 이래서 아이들 교육은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 같다.


아이들 글쓰기는 당분간 '글쓰기 제3의 공식' 육하원칙 '비기'로 돌려막기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다음 공식은 또 뭘 알려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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