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와 소음 사이

by 오늘도 생각남

폭포처럼 데이터가 쏟아지는 빅데이터 시대.

데이터 성격을 규정짓는 개념 중 하나로

'신호와 소음'이 있습니다.


신호는 유의미한 정보,

소음은 무의미한 정보를 가리킵니다.


당연히 신호는 긍정성,

소음은 부정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호인지 소음인지 여부는

절대적으로 주관적입니다.


엄마 잔소리가 적절한 예입니다.

엄마 잔소리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가끔 애증이 담겨있을 수 있음 주의)


엄마는 애정을 담아 자식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신호를 보냅니다.


하지만 자식의 귀에 도착하는 것은

소음입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 이미 다 아는 이야기.


금요일 퇴근길 브루투스 이어폰을 꺼내려다

주머니 집어넣습니다.


'넣어둬, 넣어둬'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퇴근길에는 보통 팟캐스트를 듣거나

오디오북을 듣는 편입니다.

출, 퇴근 시간에만 꾸준히 오디오북을 들어도

일주일에 책 한 권은 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퇴근길에는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금을 맞이하는 오늘 아침

작은 목표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선물하는 것.

오늘은 업무를 신속하게 끝내고

잠시라도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실패. 인생은 아니 단지 하루도 계획대로

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단 5분의 여유도 없이

쫓기듯 하루를 보냈습니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돼 퇴근을 하는데

이어폰에서 흘러나올 어떤 멋진 노래도,

돈 되는 정보도, 웃긴 이야기도

다 사양하고 싶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귀중한 신호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받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한낱 소음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그래서 오늘 퇴근길은

신호와 소음의 중간에 서있기로 했습니다.


무음의 공간.

거기서 세상의 소음에는 잠시 귀를 닫고

마음의 신호에 귀를 기울여봤습니다.


'이어폰은 넣어둬, 넣어둬'

'입력은 잠시 멈춰'


귀를 쉬게 하고 머리를 식히며 걷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건물들이 보였습니다.


소리 나는 동영상이라면 싫었을 텐데

아무런 소음 없이 가만히 빛을 밝히고 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됐다. 이걸로 됐다.

신호와 소음의 중간에서 얻은 사진.

불금을 맞아 저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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