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패밀리는 술만 마시면 노래방에 갔다. 그리고 팀을 나눠 노래 대결을 했다. 갓 전역한 이십 대 중반 예비역이었던 H 패밀리는 노래방에 진심이었다. 마치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처럼 모두 비장했다. 목에 피가 날 정도로 열창을 했다. 노래마다 상대방 팀을 1점으로라도 이겼을 때는 전투에 승리한 것처럼 환호했다. 나는 H 패밀리의 대학 1년 선배였다. 한두 번 노래방에 같이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H 패밀리는 쓸데없이 노래도 잘했다. H 패밀리는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그렇게 놀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싸(아웃사이더)였던 H 패밀리가 만든 자기들만의 놀이였다.
H 패밀리를 알게 된 것은 동아리 후배였던 H를 통해서였다.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갓 전역해서 복학한 H를 알게 되었고, 함께 학생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학생회 활동에 진심(?)이었다. 한참 ‘싸이월드’가 유행이었던 그 시절 우리 단과대학 학생회의 슬로건은 ‘일천 경영 일촌 맺기’였다. 1천2백 명 정도 되는 경영대학 학생들을 모두 일촌을 맺게 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였다. 나를 포함한 학생회 사람들은 일천 경영대학 학생들을 다 만나기라도 할 요량으로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신입생 환영회, 복학생 환영회, 전과생 환영회, 편입생 환영회, 유학생 환영회 등 환영회만으로도 3월 한 달은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는 ‘중매 쟁이’ 같았다. 학교 생활이나 행사와 학생들을 연결했고, 학생들과 학생들을 연결했다. 졸업한 선배들에게 전공 서적을 받아 필요한 학생들에게 전달하기도 했고, 술만 먹고 놀기만 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학술 대회’를 열어 교수님과 학생들을 연결하기도 했다.
성실한 중매 쟁이로 1년 내내 수백 명의 선배, 후배, 동기들과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회 활동에 진심이었던 내게 그 ‘진심’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 생겼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늦게 입학하여 나보다 5살이 많던 동기 S형이 있었다. 물론 S형을 알게 된 것도 학생회에서 주선한 술자리에서였다. S형은 학교생활 적응에 도움을 줘서 고맙다며 술자리를 자주 함께 하고 싶어 했다. 당시 공적인(?) 술자리 모임이 많았던 나는 S형과의 한 두 번의 술자리 후 약속을 잡지 못했다. 한 번은 단과대학 건물 앞에서 분주하게 학생회 행사 준비를 하던 나를 보며 지나가던 S형이 한마디를 했다.
“완전 연예인이야. 술은 천천히 먹자”
‘연예인’이라는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박혔다. ‘단합’, ‘화합’을 외치며 몸이 축날 정도로 매일같이 술을 먹고 다니던 내게 근원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누구를 위한 화합이지?’
다른 친구들이 토익 공부를 하고, 자격증 공부를 하러 도서관으로 향할 때 나는 항상 학생회 일을 하고 있었다.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학생회 회의를 하고 있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체 모를 사명감으로.
우리 단과대학에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지만 내 인간관계는 얇디얇았다. 학교 생활에 적응이 필요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우선 하다 보니 내 도움(?)이 필요 없는 기존 지인들과의 만남은 항상 후순위가 되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만 만들고 있을 뿐 나는 관계를 가꿔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실낱같은 인연들을 양산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후로도 고민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하고 성실한(?) 중매 쟁이의 생활을 이어갔다. H 패밀리도 실낱같은 인연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동생들은 가느다란 실을 단단히 쥐고 나를 끌어당겼다. 한 번은 학생회 술자리 모임에서 H 패밀리 중 J가 이런 말을 했다.
“형, 저희 이름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J는 자기 패밀리들이 아웃사이더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H 패밀리는 학부생으로 입학을 했다. 300여 명이 가까운 동기들. 이상적인 대학 생활에 대한 꿈은 쉽게 깨졌다고 한다.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학교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에 대한 적응을 하던 H 패밀리는 학교나 선, 후배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레 학교생활에서 멀어졌다고 했다. 당시 학생회에서 주선한 술자리에도 몇 번 참여해봤지만 화합하는 분위기도 순간일 뿐 다음날 서로 이름도 기억 못 하는 허무한 술자리들이 싫었다고 했다.
복학하고 별 기대 없이 참여한 학생회 술자리에서 나와 스쳐가듯 인사를 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내가 다정하게(?) 자기들 이름을 불러주더라는 것이었다. 신선했다고 한다. 새내기 시절에도 자기 이름을 기억해주고 불러주는 선배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자신들의 학교생활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마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중매쟁이’ 생활을 왜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H 패밀리는 2~3년에 한 번은 카톡을 보내며 안부를 전해왔다.
지난 토요일 밤 10시 13분 카톡 하나가 왔다.
“형... 토요일 밤에 정말 죄송한데요. 형 보고 싶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20분 후쯤 영상 통화 가능할까요?”
H 패밀리의 송년회 술자리 중 H가 카톡을 보내온 것이었다. 가끔 카톡이나 전화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영상 통화라니... H 패밀리는 H 패밀리다웠다. 마흔에 들어선 아재들은 역시나 얼큰하게 취해 노래방에 모여있었다. 근 20년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이런저런 안부를 전하고 조만간 꼭 얼굴을 보자는 약속을 하며 영상 통화를 종료했다.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 모를 사명감에 그렇게 술을 넘고 뛰어다녔는데 중요한 것은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화합’시키겠다는 대의명분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나는 ‘대의명분’을 갖고 H 패밀리에게 다가갔다면 H 패밀리는 그냥 ‘사람이 좋아서’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실낱같은 그 인연의 끈을 꽉 잡고서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갓 마흔을 넘긴 아재들은 토요일 밤 갑작스러운 취중 영상 통화를 통해서 이십 대 나의 고민들의 대한 답을 전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