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가 되었습니다

by 오늘도 생각남


"바쁩니다!" (딸깍)


어렸을 적엔 광고 전화가 오면

상대방이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광고 전화는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나쁜(?) 전화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생각이 바뀐 건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주변 지인 중에 콜센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중 아는 동생의 와이프도 있었습니다.


같이 술을 마시고 집들이도 하고

아이 돌잔치에 찾아가 축하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동생의 와이프는

술자리에서 콜센터 진상 고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 하기 힘들다는 말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듣고서부터

광고전화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광고전화는 단순히

시간을 빼앗는 '나쁜 전화'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사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은 억누른 체

하나의 콜이라도 어떻게든 성공시켜보려는

'바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 가족일 수도

내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광고전화가 오더라도

전화를 먼저 끊지 않습니다.


광고 내용에 관심이 없다는

양해를 구하고 상대방의 통화 종료 소리를

확인한 후 핸드폰을 내려놓습니다.


거절은 하되

감정은 덜 상하게 하자는 생각에서 입니다.


어쩌다 보건소에 파견 와서 하게 된

업무가 '콜' 업무입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확진자에게

기초 역학조사 설문 문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역학조사 설문 작성을 요청하는

전화를 합니다.


설문 작성이 어려운 분들께는

10분이고 20분이고 정보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일일이 물어보고

직접 기재하기도 합니다.


확진이라는 현실과 좋지 않은 몸 상태로

무턱대고 화를 쏟아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몇 번을 전화해도 바쁘다며

역학조사를 미루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화통화가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루에 수십 명의 확진자에 대한

콜을 배정받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초 역학조사서를 작성 완료될 때까지

전화를 돌립니다.


콜은 밤늦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기초 역학조사서를 완성해서

전달하면 되지만 그다음 프로세스 담당자는

일은 밤늦게까지 계속됩니다.


확진자가 위급한 집중관리 대상인지

재택으로 자가 격리하는

일반관리 대상인지도 구분하고


증상이 위급한 환자들에게는

병상을 배정하기도 합니다.


뉴스에서 매일 쏟아지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저에겐 그냥 숫자였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공간에서는 그것은 숫자가 아니라

케어가 필요한 '사람'이었고 '업무'였습니다.


'덕분에 챌린지'를 떠올려봅니다.


코로나 3년 차,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의료진들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의료진들을 도와 확진자들

동선을 체크하고 역학조사를 하며

보이지 않게 고생하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코로나가 이제는

무뎌진 일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뉴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어마어마한 확진자 숫자를,

그 사람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케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난의 한 복판에서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수십 통의 콜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 야경이

'오늘도 수고했다'며

단기 감정 노동자를 위로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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