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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May 02. 2023

껍닥의 숙명


11살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세수를 하러 왔다가
등 쪽 어딘가를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립니다.

'근로자의 날'이라고 학교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공원에서 무리하게 뛰어논 탓인 것 같았습니다.

손바닥으로 아이의 등을 어루만져 주는데
문득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는 껍닥이다"

어머니는 부모의 역할이 자식이라는 열매를 싸고 있는
'껍닥'(껍질)이라 말씀하시고
당신을 '껍닥의 껍닥'이라 표현하시곤 했습니다.

어느 부모 하나
자식이 꽃길만 걷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꽃길보다 진흙탕 길이 많고
가끔은 그 진흙탕에서 넘어져
허우적 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평생 어부바해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그것은 껍닥의 '월권'이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막는
'미필적 고의'의 방해 공작일 수 있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아이가 허리를 돌려보며
허리 통증이 나아졌는지 확인하며 말합니다.

더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으며 생각합니다.

'아빠는 언젠가 떨어져 나갈 껍닥이고 꽃받침이야.
가끔 진흙탕 길을 걸어도,

걷다가 넘어져도
너무 힘들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
세상은 원래

꽃길보다 진흙탕길이 훨씬 더 많은 법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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