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다. 쌍둥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독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잠자기 전 꼭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하나의 습관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쁜 습관은 잘도 만들어지던데.
처음에는 텍스트 전달에 집착했다. 책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가 '어휘력 늘리기'란 말을 듣고는 동화책 속의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히 읽어줬다. 신기하게도 단어에 집착해서 꼼꼼히 읽을수록 아이들의 집중도는 떨어졌다. 서점의 키즈존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가끔 목격한다. 아이는 관심도 없는데 엄마가 책 속 단어들을 귀에 주입하는 광경을. 마치 아이의 뇌를 열어서 책 속의 단어들을 쏟아붓고 싶은 그 표정을. 나는 아직 일방적 책 읽어주기의 효과를 모른다. 부모의 열정으로 주입된 그 단어들이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 잘 스며들어 필요한 순간에 툭! 툭! 튀어올라 제 역할을 할 것인지 못할 것인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알게 된 공공연한 '비밀' 한 가지가 있다. '아이들은 책은 안 좋아하지만 이야기 듣는 것은 좋아한다'는 사실. 아이들 머릿속엔 '책 = 재미없는 것, 이야기 = 재미있는 것'이란 생각이 무의식 중에 박여있는 것 같았다. 그 비밀을 알고서는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작전을 바꿨다. 잠자기 전에도 '책 읽자'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이야기 들려줄까'라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 들려줄까?
어느새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먼저 '아빠, 오늘은 어떤 이야기해줄 거예요?'라고 묻기도 한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나올 오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듯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잘 들려주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첫째,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야 한다. 아이들은 의성어, 의태어를 좋아한다. '고양이가 야~옹~하고 다가오는데 강아지가 멍! 멍! 하면서 길을 막아선 거야', '갑자기 호랑이가 성큼성큼 나타났어'. 의성어와 의태어를 표현할 때는 얼굴 표정과 동작도 그에 맞에 흉내를 내야 한다. 아이들 집중력이 흐려졌다 싶으면 상황 전환의 추임새도 몇 개 필요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아~글쎄', '이 일을 어쩌지'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아이들은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집중을 하게 된다. 소리에 집중을 안 한다면 딴짓하는 아이에게 다가가 '호랑이가 갑자기 찾아온 거야' 하면서 옆구리를 쿡 찌르며 스킨십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온몸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하버드 졸업장보다 독서습관이 중요하다는 빌 게이츠의 말도 한번 떠올려보고.
둘째, 이야기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이야기가 일방적인 전달이라면 질문은 쌍방향 소통이다. 아이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이나 궁금한 사항들에 대해서. 질문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단순히 '어땠어?', '무슨 생각이 들었어?'라는 포괄적인 질문은 아이들 뇌를 피곤하게 만든다. 질문이 밑고 끝도 없으면 답변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다. '주인공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너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아?'라고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해주는 것이 좋다. 질문의 시작은 부모가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의 질문이 이어지기도 한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다.
셋째, 이야기 내용과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은 반복할수록 효과적이니.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꺼내려면 어제 했던 이야기와 연관된 물건이 나타났거나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잘 포착해야 한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툭' 꺼내 보는 것이다. 아이는 어제와는 또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또 그 얘기냐며 부모의 의도를 눈치챘을 때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어제는 쌍둥이들에게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아이를 놓고 자신의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자에게 솔로몬이 지혜로운 판결을 내리는 이야기. 솔로몬은 아이를 갈라서 두 여자에게 반쪽씩 나눠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울면서 아기를 포기한 여자를 친모라고 판결을 내려준다. '모성애 확인'을 통한 문제 해결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쌍둥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솔로몬이라면 어떻게 진짜 엄마를 찾아줄 것 같아?"
아이의 아빠를 오라고 해서 아빠, 엄마 얼굴과 닮은 점을 찾을 것 같아요.
둘째 준이가 대답했다. 신선한 접근이었다. 어린아이 생김새야 비슷비슷하겠지만 하나의 단서는 될 수 있을 듯했다.
두 여자 중에 엄마가 없을 수 있지 않아요?
첫째 건이가 대답했다. 생각도 못한 질문이었다. 이 이야기에는 '두 여자 중에 엄마는 있다'라는 전제가 숨어있다는 것을 아이들 통해 처음 깨달았다. 질문이 잘못되면 틀린 답이 나온다는 사실. 아이들은 어른들 생각하지 못한 영역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준이가 묻는다.
아빠, 근데 가짜 엄마는 왜 거짓말을 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잠시 생각하다가 소설을 쓴다. '응, 가짜 엄마는 몸이 아파서 아이를 못 갖는 사람이었대.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거야'
책은 생각을 이끌어 내는 도구다. 아이들은 아직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고. 책을 읽는 방법은 눈으로 읽는 목독도 있지만 대화와 이야기를 통해 읽어가는 방법도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책 읽기 방식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아이들의 책 읽기 방식을 부모가 존중해주 건 어떨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고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 - 빌 게이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