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는 있어 보이는 직업이다. 그들은 소위 '언어의 마술사'다. 간혹 TV 광고 카피를 보다가 무릎을 '탁'치는 경우들이 많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저 카피라이터 뇌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카피라이터가 쓴 책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언어의 마술에 대한 비밀을 알려줄까 하고.
유명 카피라이터의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남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모두 카피다
이원흥. 28년 차 카피라이터다. 책 제목을 읽는 순간 '카피는 이런 것이구나'하는 느낌이 팍 왔다. '마음을 흔드는 것'. 이이제이? 동어반복? 카피의 정의를 살짝 바꿔서 카피의 핵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내 말이 남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저자는 그것 역시 카피라고 엄지를 지켜 세워주는 것 같다. 참 기분 좋은 제목이다. 제목만으로 내 마음을 이미 흔들렸다.
저자가 쓴 카피 몇 개를 살펴봤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삼성)
싸니까, 믿으니까! 인터파크니까! (인터파크)
오징어 없는 짬뽕이 짬뽕이니? (오징어 짬뽕)
그는 카피를 이렇게 정의한다.
카피란 남의 마음을 흔들어서 의도를 관철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한 마디로 카피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책 제목처럼. 저자가 말하는 카피라이터가 갖춰야 할 자질이 몇 가지 있다.
1. 호기심을 가져라.
What(무엇), How(어떻게)보다 Why(왜)가 중요하다는 말은 모든 자기 계발류 책의 최상위 명제다. Why(왜)를 다섯 번만 꼬리를 물고 반복하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당연한 진리이니 이 정도만.
2. 카피는 디테일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꼭 카피가 아니더라도 그 작고 세밀한 차이가 카피의 성패를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고요한 99도씨의 물을 팔팔 끓어오르게 만드는 그 마지막 1도씨의 차이.
저자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라는 노르웨이 시인 울라브하우게의 시로서 디테일의 중요성을 설명해준다.
'우리가 원하는 건 큰 바다가 아니라 물이고, 천국이 아니라 빛이며, 새가 호수에서 물 한 방울을 가져오고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오는 것'
3. '마음이 흔들리는 그 순간'을 포착하라.
책 제목에서 강조하듯이 카피의 핵심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저자는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들은 '레이디 가가'의 인터뷰를 통해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을 설명했다.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말에 상대방이 긍정하거나 공감을 하는 경우 '소중한 것을 가방 속에 넣는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미래로 가져갈 가방 속으로. 레이디 가가의 말은 들은 저자는 차를 세우고 레이디 가가의 카피를 몇 번이나 곱씹어봤다고 한다.
카피라이터라면 자신의 마음을 흔든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자신도 타인에게는 남이다. 내가 흔들렸던 그 포인트의 맥락과 방식을 이해하고 자신의 카피에 적용함 으르써 카피를 쓰는 실력이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거나, 사람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흔들리는 경험을 많이 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호기심과 디테일. 진리 같은 말들이고 많이 들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하라'는 조언은 한 발짝 더 들어간 영업비밀인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지금은 SNS 대홍수 시대이고, 1인 미디어가 대세인 시대다. 누구나 자기 밥벌이하는 카피 정도는 써야 먹고살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문장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다 카피다' 일독을 권한다.
최근 내 마음을 가장 흔드는 카피는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시 제목이다. 제페토라는 댓글 시인이 쓴 시로 1600도씨 용광로에 빠져 숨진 20대 노동자를 추모하는 내용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카피다.
나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가가 되고 싶다. 내 카피가 1600도씨의 용광로에서 숨진 그 청년의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카피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