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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Sep 06. 2020

삶은 끝이 아니라 과정을 사는 것

41번째 가을을 맞으며

며칠 전부터 새벽 공기가 차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 '진짜 가을'이 온 것이다. 진짜 가을은 달력에 쓰인 '입추'나 '처서'라는 글자가 아니라 새벽 공기를 맞는 몸이 알려준다.


계절은 어김이 없다. 코로나로 우리 일상이 멈춘 지 오래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쌍둥이. 학교에 가는 것도 아니고 안 가는 것도 아닌 것처럼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도둑 등교'라고 할까? 코로나를 피해 몰래몰래 학교를 다니는 듯하다. ''아빠, 친구가 없어요''.  초등학교 입학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친구가 없다며 둘째 준이가 아쉬워한다. 물론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으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 세상 학교생활에서는 친구를 사귀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짝꿍'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2m 거리 두기. 아이들이 조금만 모여 있어도 흩뜨리려는 선생님. 선생님의 감시느슨한 화장실에서 옆에서 손 씻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그나마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준이는 말했다.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타인과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나와 가족을 자발적으로 집 안에 강금하고 있다.


일상은 멈췄지만 계절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여름이 지나고 또 가을이 왔다.


또 가을?


코로나를 뚫고 가을이 왔음을 살갗에 닿는 서늘한 바람으로 느끼고 있는데 '또'라는 글자에서 생각이 멈췄다. 또 왔다? 어제의 태양이 지고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멈추지 않고 무한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

계절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올해 가을은 작년 가을과는 다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단풍이 지고 잠자리가 돌아다니는 모습은 같지만 '똑같은' 가을은 아니다. 작년 가을은 내게는 40번째 가을이었고 올해 가을은 41번째 가을이다. 한 번의 가을이 지날 때마다 부모님의 주름살과 흰머리는 더욱 늘어가신다. 주먹만 하게 태어났던 쌍둥이들은 이제 동시에 안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인식하 못하든 일상이 멈춰 섰든 아니든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사춘기 시절 '끝'이란 말의 허무주의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삶의 끝엔 뭐가 있을까?', '결국 삶의 끝은 죽음인데 죽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가끔 그런 말을 한다. '어차피 내려올 산인데 땀나게 왜 올라가냐?' 끝의 허무주의에 빠져있을 때는 그 말의 구덩이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과정'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닫게 됐다. 성냥개비는 잠시 반짝하는 불꽃을 보이고 이내 재로 바뀐다. 그리고 쓰레기통으로. 잠깐의 불꽃이지만 성냥개비는 더 큰 불꽃을 일으키기 위한 전달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생일 케이크의 초에 불을 붙여준다. 장작불의 시작점도 성냥개비다. 어차피 내려올 산이지만 산에 오를 때의 나와 내려올 때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터벅터벅 무심히 걷는 걸음에 집중하고, 뻐근한 장딴지와 허벅지를 생각하며 잠시나마 일상 속 스트레스를 잊기도 한다. 알록달록한 단풍잎, 장관을 이루는 산봉우리를 직접 쳐다보며 손바닥 속의 핸드폰 화면으로만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나의 삶. 지는 태양처럼 내 삶은 그리고 내 몸은 조금씩 사그라들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꽃을 피운다. 그리고 내 삶의 파편들이 군데군데 남게 된다.


'또 돌아왔구나'가 아니라 '또 흘러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든다. 코로나와 함께 맞은 가을. '삶이 끝이 아닌 과정을 사는 것처럼 코로나도 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과정을 살아가야 한다'라고 새벽 가을바람이 일러주는 듯하다.


문득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한 시구가 생각난다. 연탄재도 한때는 누군가의 따뜻함이었다고.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을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누구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


코로나 속에서 맞게 된 이 가을. 나는 이 시간을 어떤 따뜻함으로 만들어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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