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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Sep 23. 2020

'사랑의 매'가 있을까?

'이상한  정상가족' 리뷰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기 아이를 때리면
옆집에서 신고를 한대.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삼십여 년 전 형이 내게 했던 말이다. '참 희한한 나라구나. 옆집 부모의 훈육방식에 배나라 감나라 할 수 있다니'. 형이 하는 말이니 끄덕끄덕하기는 했지만 진짜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시절 우리 삼 남매는 어머니에게 많이 맞았다. 어머니는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분이셨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날이면 어김없이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회초리를 꺾어놓고 우리 삼 남매를 기다리셨다. 시험을 본 날은 집에 가기가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 날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매를 맞는 순서는 나이 순이었다. 누나, 형, 나. 막내였던 내가 항상 마지막이었다. 운이 좋게도 누나와 형이 맞던 회초리가 부러지는 날이 있었다. 회초리가 부러지면 어머니는 때리는 것을 멈추시고 다음부터 더 잘하라는 훈계를 끝으로 자리를 정리하셨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나와 형의 아픔은 생각지도 않고 회초리가 부러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의도하지 않은 꼼수를 눈치채셨는지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회초리가 부러지면 다시 꺾어오라는 말씀으로 내 기대를 같이 꺾어버리셨다.


'이상한 정상 가족' 책을 보는데 회초리가 부러질 때가지 맞았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는 부모의 체벌이 아이들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주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다. 마치 시험 끝나고 회초리를 맞던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첫째, 체벌은 반성보다 공포를 일으킨다. "상처받음, 무서움, 속상함, 겁이 남, 외로움, 슬픔, 성남, 버려진 것 같음, 무시당함, 화남, 혐오스러움, 끔찍함, 창피함, 비참함, 충격 받음." 영국의 인권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이 2001년 아이들이 맞았던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 정리한 기록이다. 시험 점수가 떨어져서 어머니께 종아리를 맞던 날, 나는 왜 점수가 떨어졌지 하는 생각보다 종아리를 열 수 있다면 종아리 안에 보호대를 넣고 싶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둘째, 체벌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 메시지는 '너의 몸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며 나(부모)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반복적 폭력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데이트 폭력'이라고 포장되는 연인 사이의 폭력, 잊힐만하면 터지는 체육계 사제 간의 폭력, 모두 메시지는 동일하다.


셋째, 폭력을 내면화한다. 폭력도 사랑의 하나라고 피해자에게 가르치며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시킨다. '내가 맞을 짓을 했어', '내가 잘 되라고 때리시는 거야', '내가 맞아서 잘 된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랑하거나 돌보는 관계에서 권력의 우위에 있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체벌받은 아이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때려도 괜찮아", "공격적이어도 괜찮아"라는 가르침을 받게 된다. 폭력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식이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비슷하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는 체벌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경계는 아이들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의 스트레스는 언제든 선의의 체벌을 학대로 발전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잘못을 바로 잡아줘야 하는 부모가 자기감정에 빠져 흔히 '화'를 내는 경우가 그렇다.


'이상한 정상 가족'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아이들의 개별성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과도한 사교육으로 아이들을 짓누르는 과보호, 아이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방임. 두 가지 모두 자식을 본인의 소유물인식하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들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가족과 비정상 가족의 이야기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을 '정상 가족'이라 정의하고 그 이외의 가족형태는 모두 비정상으로 바라보며 배척하고 차별하는 편견에 관한 이야기다. 미혼모,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 가정들이 그 사례들이다.


저자는 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과 억압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그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에서 '가족과 가족주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체벌이 아이들 교육에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부모라면 그리고 배타적 가족주의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 시민이라면 '이상한 정상가족'의 일독을 권한다.


스웨덴은 1979년 세계 최초로 부모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다. 법 통과 1년 전인 1978년 아동문학가 린드그렌은 '폭력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면서 체벌에 대한 의미심장한 일화를 소개했다.


한 여성이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믿음으로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매로 가르치기 위해 아들에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소년은 회초리를 찾으러 갔다가 한참 만에 울면서 돌아와 작은 돌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아이는 '엄마가 나를 아프게 하길 원하니까 회초리 대신 돌을 써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을 때려야 한다면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자. 맞는 아이들에게는 체벌의 이유가 사랑이든 분노든 다를 게 없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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