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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Nov 05. 2020

아름다운 사람 박지선이 남긴 '선물'

극 중 이정재의 직업은 개그맨이다. 무대에서 웃긴 분장을 하고 열심히 개그를 하고 있다. 이정재의 개그에 환호하는 관객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다. 자세히 보면 땀보다 눈물이 더 쏟아지고 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아내가 객석에서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생명이 꺼져가는 아내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는 모든 것을 쏟아내서 자신이 개그맨의 꿈을 이루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줄 뿐이다. 영화 '선물'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장면은 슬픔의 순간에도 웃음을 줘야 하는 희극인의 삶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며칠 전 뉴스로 개그맨 박지선 씨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막연알려졌던 그녀의 지병에 대해서도 더 자세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는 '햇빛 알레르기'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햇빛을 피하기 위해 늘 양산을 들고 다녔고, 방송 조명의 빛마저도 힘들어했다고 한다. 최근 새로운 프로그램의 섭외를 거절한 것도 방송 조명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듯하다. 박지선 씨의 부고 소식을 듣는데 영화 '선물'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됐다. 극심한 피부질환으로 고통받던 그녀는 자신의 고통은 속으로 삭이고 남들의 고통을 치유해주기 위해 그렇게도 '돌고래 소리'를 내며 개그를 했을 듯하다. 데뷔 3년 만에 연예대상을 타던 날, 펑펑 울며 그녀가 시상식에서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오늘도 '생얼'인데 얼굴 이상하지 않아요?


일상의 고통을 그 자리에서 비로소 말할 수 있었던 듯하다. 상을 탄 기쁨과 그간의 아픔이 합쳐져 쏟아진 눈물들이었으리라.


그녀는 학창 시절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고려대 사범대학을 나왔고, 당연한 코스로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노량진에서 한창 교사 시험 준비를 하던 어느 날, 함박눈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문득 그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지?


친구들을 웃겼을 때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깨달은 그녀는 그 길로 교사 준비를 때려치우고 개그맨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개그맨 시험장에 들어가자마자 '합격'했다고 너스레를 떤 그녀.


그녀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남들이 원하는 가치가 아니라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존중할 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신대로 삶을 꾸려나갈 줄도 알았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서 개그맨을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만류가 상상이 된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남들의 고통을 껴안을 줄 알았다. 남들의 큰 병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에 더 아파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안타까운 그녀의 소식과 함께 드러나고 있는 그녀의 선행들도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떠나가는 순간까지도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통해서.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나요?

자기 손톱 밑 가시 말고 타인의 아픔에도 관심을 갖고 있나요?


"지선 씨,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당신은 이 세상에 '선물'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간의 웃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져준 소중한 질문들도 감사합니다. 그곳은 햇볕이 강하지 않을 겁니다. 이제 메이컵도 필요 없고 양산도 필요 없을 거예요. 생얼로 맘껏 산책도 하고 편안히 쉬세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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