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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 Mar 18. 2024

유교가 망친 대한민국

1) 망침의 시작, 옥새




사극을 보면 임금의 도장인 옥새가 등장할 때가 있다. 예전에 옥새는 '옥으로 만든 도장'으로 국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왕실 문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것이 이 도장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그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옥새를 빼앗기면 왕좌도 빼앗기는 것으로 여겼는데 도장 하나 빼앗겼다고 왕이 하루 아침에 왕이 되지 않는다는 규칙 자체가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 옥새라는 도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왕의 권력의 상징이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옥새 역시 유교 사상에서 만들어진 비효율적인 물건 중 하나. 난 개인적으로 성리학(유교)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학이 국가의 가르침이 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왕실에서 조차 유교 사상으로 발생한 옥새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으니,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비합리적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옥새에서 비롯된 '완벽'이라는 단어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 하나인 '완벽하다'라는 말이 이 옥새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걸 알고 있는가? 완벽에서 벽은 '璧' 이 글자로 뜻이 '둥근 옥 벽'이다. 한마디로 '완전하게 둥근 옥'이라는 뜻으로 옥새가 된 최고의 완전한 옥을 '완벽'이라고 했다. 옥새가 될 정도로 완전한 옥이라는 완벽이 지금은 퍼펙트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완벽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옥을 뜻하므로 '완벽하다'는 최고라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연암 박지원의 <옥새론>에서 본 옥새의 탄생  


연암 박지원,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연암 박지원의 <옥새론> 초반부를 보면,



趙王得和氏璧(조왕득화씨벽)

조왕이 화씨벽을 득하니


秦以十五城易之(진이십오성역지)

진에서 15성과 바꾸자고 했으나


藺相如完璧歸趙(린상여완벽귀조)

인상여(사람 이름)가 그 옥을 온전히 하여 조나라로 돌아왔다.

(인상여는 옥을 가지고 진나라 소양왕을 찾아가 외교 담판으로 15성을 확실히 받아낸 인물로 고려의 서희와 비교될 때도 많음)


及秦兼諸侯(급진겸제후)

진이 제후를 통합하자


璧復入秦(벽부입진)

그 옥은 다시 진으로 들어갔고


爲傳國之璽(위전국지새)

국가에서 전해지는 옥새로 만들어졌다.


其文曰(기문왈) 

게다가


受命于天旣壽永昌(수명우천기수영창)

'하늘의 명을 받아 수하고 길이 창성하리라.'라고 새겨져 있다.

고대에는 천명 즉, 하늘의 명을 받아야 왕으로 최종 승인이 되는데 이 천명을 받았다는 증명을 위해 수 많은 신화가 만들어진다.(예를 들면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같은) 천명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음.


論曰(논왈)

이에 관해 논하니


古之傳國者(고지전국자)

고대에 국가를 전하는 것은


道也(도야)

도였으나


今之傳國者(금지전국자)

이제 나라를 전하는 것은


寶也(보야)

보(옥새)이다.


연암 박지원의 <옥새론> 초반부를 보면 진나라 왕이 옥새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국가를 전하는 것으로 명하는 내용까지 이어진다. 옥새론 전체를 보면 옥새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물론 박지원은 유교에 반대적 입장인 실학자로 양반전까지 쓰며 양반을 풍자했던 인물이니 옥새를 좋게 바라봤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연암은 옥새에 대한 편견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고작 도장 하나에 목숨을 거는 행태를 꼬집고 싶었던 것 같다. 연암이 돌려까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힌 사람이었으니까.




출처: 위키미디어


옥새론을 바탕으로 옥새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중국 초나라부터 시작된다. 초나라 사람인 벽화가 강가에서 발견한 원석이 바로 완벽인데 벽화의 이름을 따 '화씨벽'이라 칭했다. 벽화는 이 원석을 여왕에게 바쳤으나 시기하는 간신들이 가짜라고 하여 벽화는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 문왕이 즉위한 후 변화의 화씨벽을 갈라보니 원석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빛을 가진 옥이 나왔고 그걸 도장으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옥새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 완벽한 화씨벽을 춘추전국시대때 조나라 왕이 손에 넣게 되자, 전국통일의 야망을 가진 진나라 소양왕이 조나라 왕에게 15개 성을 줄테니 화씨벽과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 옥을 가진 자가 최고 권력자임을 아는 조나라 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고작 15개 성을 받고 바꾸려 했을까? 이 옥을 가지면 천하를 갖는 것과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당시 가장 강력한 대국이었던 진나라가 쳐들어 올 것을 알기에, 소국의 조나라 왕은 진나라 소양왕에게 화씨벽을 넘기고 15개 성을 받는다. 하지만 15개 성을 받은 들 무슨 소용? 어차피 진나라가 전국 통일을 하고 15개 성은 고스란히 진나라로 다시 귀속 되었으니까. 이렇게 진나라 소양왕은 완벽을 가짐으로써 완벽한 황제가 되었다.




진 시황제(소양왕), 출처: 지식백과


중국의 진시황은 진나라가 최초로 전국을 통일하면서 '진 시황제'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진시황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명확하게는 '진 시황제'로 <진: 진나라의 통일로> <시: 시작된 최초의> 황제라는 뜻이다. 시황제가 되기 전까지는 그도 일개 국왕인 소양왕이었다. 그러니까 진시황은 이름 자체가 아니라 진나라 시초의 황제라는 의미.(진시황은 진씨가 아니다! 진 시황제는 성은 영, 이름은 정으로 영정) 


소양왕 영정은 여러 나라로 갈라져있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며 위에서 얘기한 소양왕에서 시황제로 업그레이드 된다. 이 때부터 옥새를 국왕은 사용하지 못하고 황제급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고 옥새의 디자인도 등급에 따라 나뉘게 된다.




우리의 옥새


이렇게 옥새 문화는 유교를 거쳤던 나라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과 우리나라만 옥새 문화가 있었고 일본은 옥새가 아닌 '삼종신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건국 신화가 있는데 일본은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의 손자가 내려와 일본을 건국했다는 신화를 바탕으로 신의 손자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바로 일본의 '천황'이다.(천황 얘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삼종신기, 출처:위키백과


그리고 아마테라스가 천황에게 증표로 줬다는 물건이 바로 삼종신기로 세 가지 종류의 신기를 얘기하는데 검, 거울, 옥 이 세 가지. 그래서 일본은 옥새가 아닌 삼종신기를 목숨처럼 받들었고 지금도 신사에서 받들고 있다.




중국 건륭황제의 용 옥새
조선의 거북이 모양 옥새, 출처: 두페디아


이처럼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받으며 옥새 문화로 자리잡게 되는데 중국은 황제라는 이유로 옥새에 용 문양을 사용하면서 우린 국왕이라는 이유로 옥새에 거북이 모양을 사용하게 하였다. 이는 중국 황제가 우리의 국격을 자신들 보다 낮추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향후 옥새의 '새'가 중국어 발음의 죽을 '사'와 비슷해 '보물 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왕은 금으로 도금한 금보, 세자는 은으로 도금한 은보를 가지고 있었다. 왕비는 아무 문양이 없이 손잡이만 있는 도장을 사용했다. 


옥새는 왕의 권력의 상징이므로 매우 중요한 물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미 왕이면 왕인데 굳이 이 도장이 있니, 없니하며 싸우기도 했고 환관이 자신이 더 좋아하는 둘째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서를 위조해 왕의 옥새를 찍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런 옥새에 관한 일화를 보면 지금의 입장에서는 참 한심하다. 도장을 찍었어도 파기하고 다시 찍으면 될 것이고, 누가 훔쳐갔으면 다시 만들면 될 것을 샤머니즘적 유교사상에 입각해 이 도장 하나에 나라가 좌지우지 됐었으니 연암 박지원이 옥새론을 안 쓰고 배겼겠는가?




© alanveob, 출처 Unsplash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도장의 문화가 옥새에서 비롯된 것이다. 옛날에 왕이 찍는 것은 '새'라 칭하고 백성이 찍는 것은 '인'이라 칭해 왕족과 일반인을 구분했던 것이 그대로 전해져 지금도 우린 도장 '인'을 사용하고 있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가 유일한 도장 사용이 많은 나라가 아닌가 싶다. 중국과 우리를 제외한 동양권 나라 중엔 이처럼 유교가 깊숙히 들어온 나라가 없기도 하거나와 중국은 도장을 사용하지 않은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게다가 인감 도장이라는 개념도 우리나라만 사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처럼 도장은 옥새에서 비롯된 하나의 강력한 결재와 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 의미를 지금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물론 큰 불편함이 없다면 옛 것을 그대로 이어와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도장은 점점 그 불편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특히, 인감도장처럼 여전히 고대사회 왕의 옥새처럼 절대 잃어버려선 안 되고 주민센터에서 인감증명서까지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3D프린터까지 나온 이 시대에 도장의 위조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인감증명서는 본인이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발급에 상당한 애를 먹게 되니 이제 우리도 옥새의 옥에서 벗어나 좀 더 간결한 문서 체계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손가락 도장 찍으면 약속이 되는 것처럼, 옥새가 찍히지 않아도 서로가 한 말과 약속을 잘 지켜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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