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남의 시선을 유독 신경 쓰는 이유 '관찰문화'

by 오서

예전에 한 외국인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한국 여자들은 정말 집 앞 편의점에 갈 때도 화장을 해?"


이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했을까? 아니, 당신은 뭐라고 답할 거 같은가?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핵심은 집 근처에 잠깐 나가면서 화장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손가락질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개인의 습관이자 일종의 문화라고도 볼 수 있다.

비단 화장뿐이 아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타인의 시선에 대해 많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고 있다.

'없어 보여. 있어 보여야지.'

이런 표현은 아마도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장만 봐도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에 비해 남의 시선을 더 많이 신경 쓰는 문화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유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게 유교랑 무슨 상관이야?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민족이 가진 공통적 습관을 문화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유독 많이 신경 쓰고 산다면 이 역시 하나의 문화이고 문화의 형성은 과거 역사에서 해답이 찾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유교에 대한 포스팅을 여러 개 올렸는데 유교의 기원과 우리나라로 흘러 들어오게 된 배경을 설명한 적이 있다. 유교의 기원은 중국이고 그걸 조선을 건국하며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국이 유교의 창시 국가인데 왜 중국은 유교의 색이 우리보다 연한 것일까? 동양의 많은 나라 중 우리가 왜 유독 강한 유교의 색을 띠게 되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 해답은 간단하다. 중국은 향후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공산주의 이외의 신념이나 사상은 모두 금지시켰다. 잘 알다시피 공산 국가는 종교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유교의 색이 거의 사라졌다. 일본은 원래 유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태양신 아라테미스를 숭배해 천황 문화를 만들었기에 유교 색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내내 유교였고 유교의 상태에서 근대로 넘어왔기 때문에 유교의 색이 짙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리나라의 문화 특성상 타인의 시선을 외국인들에 비해 더 많이 신경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또 생길 것이다.

'그래서? 유교랑 뭔 상관이냐고!'

유교와 눈치보기의 관계를 한번 풀어보자.



유교에서 찾아보는 눈치보기 문화

유교는 양반 중심의 문화이고 양반은 체면을 매우 중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양반들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고 상대방이 알아서 이해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양반은 손으로 돈을 만지는 것조차 천하다 여길 정도였는데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양반도 분명 재물욕이 있었으나 유교를 숭배하는 양반이라는 이유로 체통을 지켜야 하기에 남의 눈치를 보며 '싫어하는 척'을 했다.

어디 재물뿐이겠는가? 여색도 탐하기 좋아하는 양반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들은 남들 앞에선 마치 아닌 척, 여자 보기를 돌같이 보는 척을 했다. 그렇게 여색 보기를 돌같이 봤던 인간들이 왜 공노비란 걸 만들었을까? 공노비는 공공의 노비로, 그중 여자 공노비들은 양반이 어느 지역에 가면 해당 지역의 여자 공노비가 양반의 잠자리를 책임져야 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교 사회에서 양반은 양반이라는 위상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경계했으며 양반답게 보이려 애썼다는 것이다.


"썩 다시 가져가거라!"

"냉큼 눈앞에서 사라져라!"

라고 말한다고 가져온 재물을 정말 다시 가져가거나 집을 나가버린다면

"그렇다고 진짜 가냐?"

"싫다 했어도 한 번은 더 물어야지!"

라는 핀잔을 들으며 '눈치 없는 인간'이 되어 찍히고야 만다.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아닌 척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되고 알아서 눈치껏 해석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이다. 다시 말하면, 지오디의 어머니가 짜장면을 싫다고 하셨어도 눈치껏 어머니께 짜장면을 덜어드리는 게 맞겠어? 아니면 진짜 싫은 줄 알고 혼자 처묵처묵 하는 게 맞겠어? 그래 후자처럼 하면 뒤통수 처 맞겠어.


"말 안 하면 어떻게 알아?"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 이 빙구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눈치를 살피고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 바로 이 마음이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며 지금의 우리 마음 한 구석에도 자리 잡고 있다.

먹어'봐', 입어'봐', 말해'봐'처럼 신기하게도 우리의 언어에는 '봐'또는 '~보고'가 많이 붙는다.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보는 '관찰 문화'가 강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처럼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우리이기에 뷰티, 패션, 디자인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남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문화이기에 허세와 척이 난무하고 남과 비교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남의 시선을 중요시하고 그만큼 남을 많이 관찰하는 우리의 문화를 유교와 연관 지어 풀어보았다. 이런 관찰 문화를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기보다 이런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파악하여 장점을 잘 살린다면 더 눈에 띄고 보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타인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많이 봐줄 수 있는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지 않는 우리, 타인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우리가 되길 희망한다.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작가 오서

@author.ot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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