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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May 13. 2022

아내의 본분과 도리란 이것일까?

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나에겐 예정된 일과와 계획이 있다. 새벽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오전엔 전공 공부와 악기를 연습할 생각이었다. 도서관에도 가고 헬스를 다니거나 운동을 배운다거나, 때론 미술관이나 여가를 보내고 싶었다. 남매가 까꿍이 시절. 남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품을 내어주고 서로를 만지며 스킨십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게 좋았다. 함께 놀이하는 것도 재밌고 커가는 모습엔 배가 불렀다. 다시 오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는 시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남매가 어린이집에 있을 동안엔 집안일을 하면서 나의 에너지도 챙기며 하원 후 만날 아이들에게 최상의 컨디션으로 맞이하며 엄마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만끽하고 싶었다.


군인의 아내가  이상 엄마로서 나로서 일과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못했다. 매일 오전 종교 일로 봉사를 한다. 지정된 과정이 있었고 군인 가족으로서 교육이 있었고 행사가 있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참석이 어려울  같아요하면 어린이집에 맡겨도 된다는 의견이 돌아왔다. ‘일이 있어서 참석이 어려워요하면 믿음이 약하니 그렇단다. ‘돌쟁이를 안고 연습이 힘들  같아요하면 얼마나 은혜롭고 보기 좋으냐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은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는데 아기띠 두르고 하는 열정에 긍정적 도전이 되었다면서.


물론 그렇게 매일같이 다니면서 배울 점도 많았다. 부지런함이나,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한다거나, 고수하는 생활방식이 세월의 지혜를 담고 있거나, 내 그릇에 담지 못했던 무언가를 어렵지 않게 행동하는 생활의 달인들을 보면서. 좋은 점, 배울 점, 장점은 쉬이 흘려보내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 눈여겨봤다.   

핀터레스트 펌.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계획과 일상이 무너지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과연 명목이라는 관습을 이수한다면 진짜 잘했다 하실까? 돌에 새겨진  모든 규칙과 관습이 존재한다. 그것도   나게 문화와 전통을 들먹이면서.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 세어  수도 없게 수백  동안 이어져왔을 거고,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명맥은 계속 이을 거다. 바위에 계란을 내리친다고 바위는 꿈쩍하지 않지만 옳은지 아닌지 물을 수는 있지 않은가.


‘내가 겪었으니 너도 겪어봐’로 이어져 내려오는 건지. ‘내 행동 하나로 남편에게 피해가 갈까’ 조심스러운 건지. ‘사모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회적 욕구인 건지. ‘누구는 참 이런 거 잘한다’ 하는 애정의 욕구인 건지, 타인이 칭찬받는 것을 보고 자신도 뭐라도 들어야 안심하는 인정의 욕구인 건지. 타인을 눌러야 자신이 돋보이는 피라미드 형 꿈을 갈망하는지, 내가 구성하는 그룹이 제일 참석률이 높아야 한다는 목적 성취형인 건지,


원인이야 무엇이 되었든, 그 안에 ‘나’라고 하는 자신이 중심에 없다는 점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닐까? 나로 살기 이전에 누구의 아내로 비친다면 내 안의 ‘나’는 어떻게 되는가? 내가 나로서 먼저 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로 봐주기는 힘들다. 누구의 아내로만 정체성이 붙어있다면 나는 누구의 아내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된다. 나로서 개인성과 자유함은 내가 챙겨야 한다.


아내의 본분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내라면 이래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건가? 도덕적이거나 관념적인 어떤 틀 안에서 조건을 만족하면 옳고 만족하지 못하면 틀린 건가? 맞고 틀리고는 과연 누가 어떻게 결론 내리는 건가? 문화적으로 가문적으로 이 바닥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면 무조건 수행해야만 하는 건가? 기존 역사가 그랬으니 너도 해야 돼 라는 틀은 개인이 한 건가? 다수의 뜻이 만드는가? 다수가 한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싫다’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던 세습을 답습하는 모양새를 나에게서도 확인한다. 나의 행동으로 사모님에게 정 맞으면 내 남편도 상관에게 매 맞을까 겁이 난다는 것. 하나의 입이 여러 사람의 입이 되어 수군대었을 때 모난 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 설령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 사모님이 옳다 하시면 눈 감고 따라가야 후 폭풍이 없을 것만 같은 것. 다들 한다고 하니 혼자서 N0!! 하기에는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 두려움이나 막연함에 끌려가면 어떤 감정의 상태를 겪는지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었다는 것. 나로서 자유하게 살고 싶다 하면서도 역할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엮어진다.





계급 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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