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비타민
어르신들과 함께 예술 수업을 진행한다. 준비된 우쿨렐레 키트로 각자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간단한 연주법을 배워보는 프로그램이다. 참여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70대, 많게는 80대의 어머님들이다. 자신만의 악기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내 평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것도 다 배우네.”
“세상에, 이 나이에 이런 걸 배우게 될 줄이야.”
“뭔 일인지 모르겠다. 손주들한테도 자랑해야겠다.”
“이거 다 만들면 손주 선물로 줄 거다.”
어머님들의 기쁨은 수업마다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 나이에 뭘 배우느냐’며 투덜대던 분조차 더 꼼꼼히 자신의 악기를 챙기고, 그림을 잘 그리는 이에게 부탁하거나 악기가 상할까 조심스레 이름만 적어 넣기도 한다. 머쓱함이 걷히고 나면 결국 진심 어린 설렘이 얼굴에 스며들었다.
오래도록 생계를 우선하다 보니 음악은 늘 먼 자리였다. ‘다 늙은 나이’라는 말이 배움 앞에서 늘 멈칫하게 만들었고, 돈을 들여 배우는 일은 사치로 여겨졌다. 악기를 잡아본 기억이 까마득한 지금, 다시 도전하는 일은 낯설고 어색했다. “엄마가 그걸 어떻게 배워”라던 자식들의 만류에도 손주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
이미 굳어버린 손가락이 섬세한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아도,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열심에 열심을 더하게 했다. 50분 동안 한 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악기 잡은 손에 온 마음을 집중했다. 그녀들의 마음은 이미 열여덟 살 소녀였다. 훌쩍 지나간 세월이 야속했지만, 이제라도 ‘나만의 악기’가 생겼다는 사실은 자부심으로 남았다. 속으로는 이미 한 곡을 멋지게 연주했건만,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손가락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농사일이나 자식들 뒷바라지에는 능숙했던 손이, 오늘따라 더디기만 했다. 어떤 이는 악기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며, 연주 속도에 맞지 않는 몸을 탓했다. 그 모습에 나 역시 마음이 저릿하고 애처로웠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쉽게 전달하려 애쓰며 입을 다그쳐 움직였다.
배움이 귀한 이분들에게 다양한 것을 전하고 싶어 내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름도 모를 자리에서 헌신적으로 먹여 살리던 우리 어머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땀방울이야말로 자식 세대가 풍족히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이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분들이 놓쳤던 젊음의 한 자락을 배움으로 메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