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비타민
「놀이는 어린이의 뿌리를 만든다」는 주제로 진행된 편해문 작가님의 강의가 문득 떠올랐다. 소위 말하는 ‘치유적’인 것, 혹은 ‘힐링’이라 불리는 것의 뿌리는 모두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가님의 강의를 간략히 요약해 본다.
세상에는 책보다 중요한 것도 많은데, 너무 책, 책, 책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는 말씀으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책이라는 것, 장르라는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2차적 형식으로 고작 100년 남짓의 역사에 불과하다. 원래 아이들에게 존재하던 문화와 장르, 그들 안에 이미 살아 있는 어떤 것들을 책과 더불어 만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행위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셨다.
1. 그림(ex. 낙서, 끄적임 등).
그리고 싶은 마음은 열 살 안팎의 아이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좋아하는 욕구다.
2. 노래(ex. 울기, 웃기 등의 표현에서 출발하는 소리의 언어)
아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말로만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말, 글, 이야기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진심과 마음, 감정 같은 것들이다. 노래는 그 지점에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지닌다.
3. 춤(ex. 몸짓, 댄스 등.)
놀이라는 것 또한 몸짓의 범주에 속한다.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에서 속이 시원해지고, 그 경험이 곧 성장을 이끈다.
4. 만들기
어떤 재료든 상관없이 만들고 싶은 마음, 점토나 종이를 오리고 접고 빚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5. 이야기
작가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는 전래동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살아 있는 이야기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철학이 되고 추론이 된다. 이른바 ‘배움’이란 몸과 행동,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다. 몸을 쓸 줄 알아야 사고하고 철학할 수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몸을 만들어가는 일과의 균형이다. 배움과 놀이의 균형, 그 균형을 지켜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몸과 생각의 균형 위에서 아이들은 배움과 자유를 함께 만끽할 수 있다. 몸, 생각, 놀이의 균형. (편해문 선생님 강의 중)
아이들을 놀이를 통해 심신이 건강한 존재로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어른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건강하고 온전하며 자유로워지고, 어른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심신이 건강하게 자란 어린이가 결국 심신이 건강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점차 주어진 숙제와 책임, 역할과 사회의 틀에 맞추어 살아가게 되고, 어느새 ‘자기 자신’보다 그것들이 우선이 된다. 살기 위해 애쓰다 보니, 정작 나를 만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앞서 말한 다섯 가지는 모두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놀이에 몰입하고 감응하는 순간,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와 힐링은 내 안에서 함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치유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자연을 보아도 동물과 식물, 곤충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보호색을 띠고, 때로는 독을 품고, 때로는 속임수를 쓴다. 사람 역시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내며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식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를 만나는 시간, 즉 미술과 음악, 춤과 움직임, 만들기와 이야기 속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닐까. 인류가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고대부터 함께해 온 숨결들이다. 때로는 염원으로, 때로는 표현으로, 때로는 즐거움으로 이어져 왔다. 행복하다는 느낌, 다시 말해 스트레스가 풀리는 감각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힐링의 순간이 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에게서 이것들만 빼앗지 않아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란다. 공부가 우선이 되어 책만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 안에서 음악으로 노래하고 미술로 표현하며 이야기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성장. 생기를 유지하도록 돕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아닐까.
삶을 놀이처럼, 예술처럼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온전하고 자유로우며 건강해질 수 있다. 인스턴트 음식이나 냉동식품처럼 빠른 시간 안에 기계로 균일하게 찍어내는 문화는 사람에게도 스며들어 표정을 잃거나 독기를 품은 개인을 만들어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메마르게 한다. 보호색을 띠되, 자신의 생기를 지키기 위해 삶을 예술로 살아간다면 아픈 아이도, 외롭고 고독한 어른도, 자유로운 성인으로 한 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