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어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스코틀랜드에 오기 전까진.
이제까지 영어를 배운 세월만 얼마인가. 학교 수업부터, 대학교 때도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 수업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어에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듣기' 만큼은 자신 있는 영역이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처음 왔을 때, 호텔 직원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래스고는 억양이 강한 스코틀랜드 내에서도 알아주는 곳인데, 한국어로 치면 사투리 중에서도 제주 방언 정도로 보면 된다. 잉글랜드 사람은 물론, 다른 스코틀랜드 지역 사람들도 가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정도니까.
글래스고 억양이 이렇게 된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난 아는 게 없다. 그저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게 병합되기 전까진 완전히 다른 나라였고 '겔릭어'이나 '스콧어'와 같은 다른 언어를 사용했었다는 사실만 들었다. 스코틀랜드는 문화, 언어적으로 잉글랜드와 아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자신들의 정체성이 강한 편이다. 금기어가 있는데, 절대 그들을 '잉글랜드' 사람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아마 한국 사람을 중국이나 일본 사람으로 오해하는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식당이나 카페 같은 쉽고 일상적인 영역에선 듣기에서 애로가 거의 없으나, 조금이라도 디테일한 영역에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얼마 전, 창문을 고치러 사람들이 방문했는데 50%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강한 억양을 가진다. 한국에서도 젊은 세대일수록 사투리가 옅어지는 현상을 보인다는데 이곳도 아마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다. 내가 잘 이해하든 그렇지 못하든 미소와 상냥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 스코틀랜드, 특히 글래스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친절함에도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예전에는 유럽에서 가장 친절한 도시로 뽑힌 적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가 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평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러한 평판은 얼마나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그로 인해 로컬들의 피로도가 쌓이느냐와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에서 규모적으로 가장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과하게 끌어들이는 편은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살기에는 옆 동네인 에든버러보다 더욱 쾌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해서 일부러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미국이나 잉글랜드식 억양으로 이야기해주지는 않고, 그렇게 요구할 수도 없다.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로컬들끼리의 대화는 일절 이해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시험 삼아 미국인 학생에게 스코틀랜드 시트콤인 'Still Game'을 보여줬는데 그 역시 글래스고 사람들의 영어를 이해할 순 없었다. 뭐, 이웃 주민인 잉글랜드 사람들에게도 매한가지인 상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영국 내에서 억양은 사회적 계층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억양 만으로 해당 사람이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대충 파악이 된다고 한다. 물론 일부러 상류층의 말투를 흉내 내거나, 터프해 보이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거친 말투를 따라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지역 별로 다양한 억양이 존재해서 글래스고 내에서도 동네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도 긴 역사 덕에 영토 크기에 비해 다양하고 풍부한 사투리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국은 심지어 한 도시 내에서도 전혀 다른 현상을 보이니 참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 억양이 궁금해졌다면 처음에 언급한 스코틀랜드 국민 시트콤인 스틸 게임이나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아웃로 킹을 적극 추천한다. 스틸 게임에서는 투박한 듯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매력을 엿볼 수 있고, 아웃로 킹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전쟁 역사를 흥미로우면서도 현실적으로 풀어낸 영화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스코틀랜드인이 부정하는 영화가 있는데, 유명한 할리우드 대작인 '브레이브 하트'다. 수많은 고증 오류와 역사 왜곡으로 말이 많은 영화이니 보긴 보더라도 혹시라도 스코틀랜드 사람을 만난다면 모르는 척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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