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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Nov 27. 2021

워킹맘도 남의 집 귀한 자식입니다

룰루랄라의 나쁜 예

"엄마가 봐줘, 시어머니가 봐줘,  아주 룰루랄라겠네?"


처음 보는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잠깐 머리가 띵했다.

보통은 나이 많은 어른들이 하시는 말은 그대로 듣는 편이고, 굳이 대거리를 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 굳이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맞받아쳤다.


"룰루랄라는 아니죠. 저도 얼마나 힘들게 다니고 있는데요"


그러더니 가만히 있을 것 같았던 내가 받아친 게 못마땅했는지 다시 응수를 한다.


"아니 왜 룰루랄라가 아니야,

 우리 때는 봐줄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엄마가 봐줘, 시어머니가 봐줘, 얼마나 좋아. 룰루랄라지."


그놈의 룰루랄라. 이런 맥락에서 쓰이는 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중에 이틀은 시어머니가, 나머지 사흘은 친정엄마가 봐주시는데 출근이 빠르다 보니 엄마는 거의 매일 집에 살다시피 하셨다. 여름부터 장기 출장을 떠나 있는 남편을 대신해서 주말은 거진 소위 독박 육아를 해야 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시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더더군다나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그날 아침에 시할머니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열이 오르고 있는 아이를 해열제를 먹여두고 주말이라 친정에 쉬러 가시는 엄마를 다시 호출해서 맡겨놓고 나왔던 길이었다.


나 역시도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안 그래도 출장 내내 아이랑 씨름하셨을 엄마를 다시 집으로 오시라 말씀드리는 것도 마음이 쓰였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몇 달째 해외 출장 중이었고, 접종 자여도 격리 면제가 되지 않는 곳에 있어 장례식에 올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룰루랄라라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앞이 아득해졌다.

무엇보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 내 사정을 한 톨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 많은 어른이어도 무례한 사람에게 굳이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겠다 싶어서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따박따박 응수라고 쓰고 말대꾸라고 읽는 행위를 했다.  

그런 내가 여간 못마땅하셨는지,


"아, 그래 그럼, 내가 꼰대라서 그런가 보네".


갑자기 또 꼰대 어택을 당했다. 

시어머님 친구분이라고 했다. 잠깐 시어머님이 손님을 맞으러 자리를 비운 지 5분도 되지 않았다. 

이분은 왜 나를 이렇게 몰아세울까. 나는 당신의 며느리도, 딸도 아니고 심지어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워킹맘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왔다는 분이 왜 이러시는지 당최 이해도, 공감도 가지 않았다. 


"냥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집에 지금 남편도 없으니까 더 힘들었죠. "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어차피 더 이야기를 해봤자 통하지도 않을 것 같았으니.


"아, 그건 그렇긴 하지. 그래도 할머니들이 봐주시니 얼마나 좋아. 다른 사람 손 안 타고 그게 정말 좋은 거라니까" 

 

이제 좀 말이 통하나 싶었다. 천 번 만 번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서 엄마도 시어머니도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면서,


"남편 없는 동안에는 진짜 엄마 아니었으면 직장 다니면서 아이 키우는 건 못했을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또 내 예상을 뛰어넘는다.


"아니 왜 못 키워? 일을 그만 두면 되지?"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내 경력단절을 시켜버린다.


어차피 이제 이야기는 안될 것 같아서 그만두려다가 다시 마음을 바꿨다.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까워서 그만둘 수 없다고, 나는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내 말이 곧이 들리지 않은 사람이지만 오기가 생겨 일부러 더 속마음을 구구절절 일일이 펴 보였다. 그리고 똑같이 일을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데에 왜 여자만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상황에 따라서 남자도 휴직도 할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는 거라고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더니만 역시나 무슨 저런 말을 하느냐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본다.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다.


어차피 서로 평행선만 달리는 대화가 될 것 같아. 그냥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래도 할머니 두 분이 봐주시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동의를 하고 대화가 끝났다.


안 그래도 아픈 구석을 송곳처럼 꾹 찔러서 그래서일까, 그래도 어머님 친구분이시라는데 내가 좀 너무했나 싶다가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 공격을 하시니 나는 나름대로 방어를 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봤다.


이 정도로 (?) 마무리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나중에 그분도 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심지어 그 딸도 일하는 엄마라 본인이 아이들을 봐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데도 왜 처음 보는 친구의 며느리에게 이런 말을 할까 싶어서 다시 속이 좀 시끄러웠다. 나는 당신의 며느리도 아니요 (심지어 이분은 딸 하나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의 딸도 아니다. 


나도 우리 엄마 아빠가 지금 내가 우리 아이에게 그러했든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아부어 키워낸 귀한 자식이다. 본인도 그렇게 딸을 키웠을 끼면서, 그 딸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본인도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는 분이, 응원까지는 아니어도  공감의 한마디를 바랐던 게 그렇게 큰 바람이었을까. 


 

워킹맘이 되고 나서 그렇지 않아도 생활의 곳곳에서 극복하고 해쳐 나아가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걸 피부로 느낀다. 굳이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아이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것이, 그것이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늘 마음이 쓰인다. 엄마라고 이름표는 붙여졌는데 엄마의 역할을 배워가는 중인지라 아이에게 늘 부족한 엄마인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엄마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으로서의 자리도 지켜가면서 엄마의 역할을 해나가고 싶은 마음이라 더욱더 복잡하고 어려운 방정식을 푸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때로는 엄마로서도 일하는 사람으로서도 다 부족한 것만 같아서 스스로를 탓할 때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두 가지의 일 모두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무엇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한 아이로 키워내기 위해서, 오늘도 워킹맘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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