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년

엄마 경력 6년 차, 아직도 갈길은 멀다.

by 김오뚝

6년 전 이맘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던 그 순간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새로 이직해서 출근을 2주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네이버 초록창에 '임신 후 이직'이라는 답도 없는 키워드를 줄곧 쳐댔더랬다. 그리고 어느새 엄마 경력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늘 종종 거리는 마음으로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워킹맘으로의 삶에 적응하다 보니 언제나 크려나 하던 아이가 허리춤만큼 커 있었고, 그렇게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며 새삼스레 나도 아이가 자란 만큼 성장했을까 자문해 본다.


그렇다. 나는 성장에 늘 목마른 1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나 두려웠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라는 존재는 이제 더 이상 자라지도 발전하지도 않고 그냥 없어져 버리는 것만 같아서,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컸다. 엄마가 된다고 해도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게 엄마라는 역할이 하나 더 주어진 것뿐인데, 그렇게 또 넓어지는 세상을 맞이하게 된 것인데 그때는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왜 그렇게 강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도 갓난아이를 낳고 초보 엄마 생활을 시작하는 지인이나 후배들에게는, 나처럼 그렇게 스스로에게 모질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역할이 하나 더 생긴 것일 뿐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한 번씩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럼 나는 사라지지 않고 성장했을까?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니 사실 얼마나 자랐는지 성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건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마음가짐 그리고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두 돌을 지났을 무렵 안아주는데도 힘이 부치기 시작하고, 피곤하고 눕고만 싶어지는 날이 많아지면서 앞으로 더 무거워질, 힘이 더 세질 아이를 잘 돌보려고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사실 운동 생각은 그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나의 마음에 불을 지핀 건 3년 전, 전 구글 디렉터 정김경숙 님의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워킹맘으로 남자아이를 기르면서, 무려 5개의 대학원을 거쳐 석사를 따고 커리어 패스를 확장해 온 이야기를 보고, 그 저변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기반이 체력이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내가 또 석사를 따러 들어가지는 못할지언정 체력이라도 키워보자 하고 난생처음 피티에 등록했다.


운동시간은 나의 작은 호사, 움직이는 명상 시간


퇴근시간이 들쭉날쭉 하니, 퇴근하고 운동하기는 어렵고, 그나마 지킬 수 있는 아침시간을 잘라 쓰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PT도 시작했다. 아무리 다짐해도 누군가 지켜봐 주는 이가 없다면 계속 해낼 재간이 없다는 걸 나는 잘 알았다. 그렇게 찾아낸 틈새시간이 운동시간이라기보다는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호사스러운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그저 일주일에 2번, 어쩔 때는 3번, 출근 전에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으로 뿌듯했다.


이른 아침에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3년 전, 아직 근육운동 애송이였던 나에게 몇 십 킬로를 거뜬히 들어내던 분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어야지 또 출근 전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구나 자극도 받았다. 더디기는 했지만 점점 더 들어 올리는 무게가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체력도 같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스쾃, 데드리프트 그리고 벤치프레스 3대 운동을 더해 150kg을 들게 되면 운동 좀 하는 사람 소리를 듣게 될 거라는 피티 선생님 말씀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운동 좀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운동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에 새삼 아들에게 고마웠달까. 확실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기도 하고, 야근을 하거나 출장 일정이 무리되었을 때 예전보다 몸이 더 잘 견뎌주고, 또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쓰다 보니 여러 면에서 나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앞으로도 계속 가져갈 나의 습관을 자리 잡은 운동은 어쩌면 아이를 낳았기에 시작하게 된 감사한 루틴이다.


그런가 하면 늘 부족한 시간을 채워내는 일에는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어버이날 무렵, 미술 수업에서 아이가 트로피와 상장을 만들어왔다. 상장에는 부모님이 _____ 해서 상을 드린다는 ‘최고의 부모님상’이 들어있었다. 아이의 미술선생님이 그날따라 나를 붙잡고 아이가 그린 그림이며, 만든 트로피며 열심히 설명을 해주시는데, 엄마에게 이 상을 주고 싶다면서 만든 상에 상을 주는 이유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이 상을 준단다. 갑자기 눈앞이 시큰해졌다. 만으로 5살을 이제 넘긴 아이니, 물론 감사해서 상을 드립니다-와 같은 말을 기대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늘 ‘보고 싶은’ 존재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그만큼 같이 있어주지 못한 빈자리를 느꼈던 것 일가, 늘 출장이 많은 아빠의 빈자리가 더해져서 그저 '보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엄마이기도 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회사에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은 일로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해서 야근을 생활처럼 해왔던 지난 몇 년들의 시간이 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해외 출장이 잦았기에 평일에는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양가 할머니들의 시간을 빌려 열심히 붙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건 부족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까지는 한동안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는 야경증이 너무 심하게 계속돼서, 아이를 달래도 달래 지지 않는 순간들도 많아 한밤중에 넋이 나간 적도 있었다. 남편도 출장, 그리고 나도 3주간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고 난 이후였던가. 엄마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힘이 부치고, 나는 나대로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느라 지칠 때로 지쳐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저 힘든 나를 돌아보느라 나를 보고 있는 아이를 충분히 봐주지 못했었나 뒤늦게 반성해 본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다 보니, 초보 엄마시절에는 말 그대로 좌충우돌했었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지친 마음이 눈빛으로 그리고 말투로 새어나가 아이에게 전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니 정신이 번쩍 든다. 그렇게 아쉬운 시간을 다시 고쳐내서 쓸 수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가도, 앞으로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시금 다잡는다.


40대, 지금이 가장 인기 많은 나이라고 했던가. 아래로는 아이를, 회사에서는 일을, 그리고 부모님을 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나이에 조금씩 더해지는 짐들에 어깨가 무거운 날들도 많아짐을 실감한다.

나의 성장도 아이의 성장도 우리 가족의 성장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다시 한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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