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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Jul 18. 2020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홀가분하게 후회를 떠나보내는 방법

더위가 짙어지는 계절이 왔다.

그 말인즉슨 바야흐로 예비 워킹맘에서 "예비"자를 떼어낼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씩씩하고 당찬 워킹맘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나였건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 싱긋싱긋 웃는 아이를 두고 회사에 가려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린다. 얼마 있으면 현실이 될 그날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툭 하고 가라앉으려고 하는 순간 황급히 마음을 붙잡아본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어차피 다가 올 일이니 걱정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토닥여 마음을 다잡고 겨우 현재로 돌아온 순간,

그 자리를 비집고  숙한 두 글자가 들어온다.

너의 이름은 '후회'


그리고 여지없이 돌림노래가 시작된다.

그때, 그때, 그때


그때 이직을 안 했더라면,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때 이직 대신 난임휴가를 썼더라면,

그때 결혼한 선배들의 얘기를 좀 더 들었더라면,


그랬으면, 지금 복직하는데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않았을 텐데,

그랬으면, 육아휴직도 더 길게 쓰고 시터 이모님도 더 짧게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내 몸도 더 편했을 텐데, 우리 봉봉이 환한 미소 매일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몇 번 읊조리고 나니, 툭하고 가라앉기만 했을 마음이 이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몇 번이고 곱씹고 나니, 마음이 마구 헝클어져 버린 기분이다.

현재의 나도 과거의 나도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다.

그렇게 죽어 있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때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기억 안 나? 거기 남아있었으면, 지금도 힘들어했을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 갑자기 정지한다.


 "하긴, 그때 엄청 고민하고 결정한 거였지"


정말 그랬다. 커리어에 변화를 주고 싶었고, 회사 내에서 다른 보직으로 일해 보고 싶었지만 여의치가 않아 이직을 결심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나의 자존감이 갉아먹히는 듯한 느낌이 계속되는 곳에서 버티기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 정말 어렵사리 결정한 이직이었고, 또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에 더더군다나 반갑고 기뻤던 이직이었다. 동시에 두 군데 인터뷰 날짜를 받아놓고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먼저 합격 통보를 받은 곳에 거절 의사를 내비치기까지 걷고 또 걸으면서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자아실현이냐 연봉이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대관절 무엇인지 노트에 빼곡히 적어 내려가면서 마지막까지도 고민했던 시간. 1차 인터뷰가 흐지부지 지나가고 나서 다시 얻은 기회로 들어가게 된 지금의 직장은 힘들지만 성취감이 들게 해 준 시간들을 허락해주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갑작스레 찾아온 아이 소식에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출산 이후를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아이를 품느라, 아이를 낳느라, 아이를 키우느라 떠나 있던 시간이 적응했던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이전에 안락했던 환경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후회 없는 선택은 없다.


확실히 기억이 미화되나 보다. 뇌에서 좋은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고 괴롭고 안 좋은 기억은 삭제하려는 경향이 있다더니, 그 힘들고 몸서리치게 지난했던 시절들은 희미해지고 익숙했던 사람들, 익숙했던 환경, 좋은 복지, 워라벨 등등등 좋은 것만 떠올라서 내가 했던 선택에 후회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때 당시로 돌이켜보면  후회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한 선택은 아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가 따르리라는 건 알고 있었고 다만 그 후회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결정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후회를 하고 있다니, 인간은 정말 망각의 동물임이 확실하다.


후회를 물리치는 마법의 주문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다시 남편이 던진 말을 생각해 봤다.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후회'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때 내린 선택에 뒤따라오는 결과였다. 오래전 TV 속 이휘재의 인생극장처럼 A와 B를 모두 겪어보고 나서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그때 결정을 내린 나의 선택도 맞고, 또 지금 와서 후회를 하고 있을지언정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그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에 지금의 생각도 맞다. 그러니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지 출처 https://theqoo.net/square/1496696334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분명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고 이 모든 시간을 지내온 '지금의 나'가 그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당시로 돌아가지 않는 한, '그때의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항상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었다.

다시, 지금 그리고 여기


'그때의 나' 도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노력했고, '지금의 나'도 또 지금 보다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고민하기 때문에 '후회'라는 것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머리로는 알면서도, 다시 한번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고백하며 이렇게 글로 기록해 그 망각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본다.


복직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에 생각이 떠돌다 맞이한 '후회'라는 불청객. 막을 수는 없겠지만 원치 않는 시점에 찾아온 손님을 홀가분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결국 '현재'에 집중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그때 치열하게 고민하던 순간도 과거에서는 현재였고, 복직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미래를 걱정하는 지금도 현재이자 미래의 과거이니까. 결국 그 '현재'인 '지금'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가 어떻든 간에 미래의 나에게 당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또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찾아오게 될 불청객을 한시라도 빨리 돌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현재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보라.
과거에 시도해봤으나 실패했다고? 그래도 괜찮다.
그게 바로 현재의 좋은 점이다. 현재는 끊임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가?
스틸니스 (Stillness is the key) 中/라이언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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