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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May 20. 2020

나는 매일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좋아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요즘 부쩍 거울에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보였다. 하루 종일 육아로 거울을 볼 여유 따위(?)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잠시 나갈 일이 있어 준비를 할라치면 어김없이 낯선 얼굴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피곤에 찌들어 어느샌가 자리 잡아 버린 다크서클과 출산 후 늘어난 몸무게로 어딘가 모르게 듬직해진 얼굴, 그리고 호르몬 때문인지 잠을 잘 못 자는 탓인지 알 수 없는 트러블로 얼룩진 입가까지. 이렇게 달라져버린 모습도 적잖이 충격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건  부쩍 어두워진 얼굴이었다.


"저의 강점은 잘 웃는다는 점입니다.
미소 킴으로 통할 정도로 환한 미소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잘 다가가며.... "

빼곡하게 이력서를 적어 내려 가던 시절  '강점'란에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멘트들이다. 세상 어색하다는 웨딩 촬영을 할 때에도 웃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웃지 않는' 포즈가 더 어려웠다. 전 직장에서 일할 때도 프랑스, 알제리 사업주 직원들이 늘 밝게 인사해주고 다가와주는 내 모습이 그렇게 인상 깊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었는데 요즘 내가 거울에서 보는 사람은 그때의 나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나 스스로 어둡다고 하기에는 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예전만큼의 생기나 밝음이 뿜 뿜 넘치던 시절의 안색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마냥 서글퍼졌다. 새삼 이런 (?) 나의 모습에도 변함없이 예쁘다고 해주는 남편이 찐 사랑임을 다시 한번 느끼긴 했지만 사실 어두워진 게 안색뿐이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심란하진 않았을 것 같다. 잠만 푹 자주고 나면 될 일이니까. 물론 그 '잠만 푹'이 몇 달째 안되고 있고 앞으로도 안될 예정이기도 하다만 어쨌든 그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온건 내 머릿속에 긍정적인 아우라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를 '프로 시도러'라고 칭할 만큼 의욕 뿜 뿜에 경주마처럼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던 나였는데 요즘은 어딘지 모르게 황량한 들판에 드러누워버린 노새가 된 기분이다. 자주 멍해졌고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랑 까르르 웃고 잘 놀아주다가도 돌아서면 갑자기 왈칵하고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분명 하나의 생명을 기르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하루가 가고 그렇게 올해가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나를 채근하는 일이 많아졌다. 기분이 자꾸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무엇다 밝게 웃는 건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웃을 때 이런 근육이 쓰였던건가 의식하게 되고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이들 수록 얼굴에 그 사람이 드러난다던데, 내가 매일 하는 이런 생각들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건 아닌가 생각을 하니 갑자기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 나 왜 자꾸 이러지?

 

감사일기 말고 칭찬 일기 쓰세요!

며칠 전, 집 앞까지 나를 만나러 와준 선배 언니가 한 껏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만난 회사 선배이자, 대학원 선배이자, 소울 메이트로 서로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이인 언니는 내가 회사 다닐 때 하던 고민, 이직에 대한 열망과 망설임 그리고 꽤나 큰 야망(?)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인지라 내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느 때처럼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언니는 운을 뗐다.

 "당근은 안 주고 너무 채찍질만 했네".


지금까지 너무 잘 해냈고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데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멀리 가려면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줘야 하는데 지금 한껏 채찍질에만 익숙해져서 당근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이직에 성공했을 때도, 바라던 아이가 와주었을 때에도, 원하던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때에도 그리고 그렇게나 바라던 브런치에 작가로 입성했을 때에도! 나는 그저 하나의 미션을 달성했다는 생각에 기뻤을 뿐, 그 여정을 함께한 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박했다.

당근은 운 좋으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가끔 받는 보급품 정도였고, 스스로는 제대로 줄 생각을 못한 것 같다.


스스로를 칭찬하자, 습관이 될 때까지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려 든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가치가 될 뿐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中/웨인 다이어


생각해보니 근 2년 간, 나를 채근하는 일과 더불어 꾸준히 해온 일중 하나는 감사일기를 쓰는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자기 전에 일부러라도 감사한 일을 찾아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쯤은 꼭 쓰곤 했다. 문득 적어둔 일기장을 보니 늘 누군가에게 감사한 일, 어떤 일에 대해 감사한 일이 대부분이었고 정작 그 일의 중심에 있었던 나에게 감사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에 목이 말라서 더욱더 나를 더 몰아붙이고 채근했던 것 같다. 나를 칭찬하자니 왠지 낯 뜨겁기도 했고, 그렇게 하면 일순간 헤이해 질 것 같아 스스로 더욱더 박하게 굴었던 것 같다. 정작 필요한 건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는 거였는데, 내 손에 이미 가득한 당근을 두고 언제 줄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당근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나에게 미안해졌다.


익숙하지 않으면, 연습하면 되지


2020년을 들어오면서 세웠던 목표 중의 하나는 '나를 사랑해주기'였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사실을. 성장하고 싶고, 발전하고 싶다고 하면서 성취에 대한 평가응 하며 늘 부족한 점, 개선해야 할 점만 쏟아놓는 혹독한 비평가가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자존감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고, 자신감도 오락가락하는 것이었겠지. 나는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오락가락하다 보면 행복과는 저만치 멀어져 가있는 것 같아서 자그마치 '목표'로나 세운 '나를 사랑해주기'. 그새 잊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칭찬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 연습이고 또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꼭 무엇을 이루어야만 칭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을 살아낸 나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연습. 대단한 결심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다짐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내 삶도 변화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실천해 보려고 한다. 익숙하지 않겠지만, 시도하는 시간이 쌓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러운 일이 되리라 믿으면서.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칭찬: 다짐을 결심으로 공표하는 나, 아주 칭찬해. 좋아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어떤 일을 하는 능력을 나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일에 종지부를 찍는다. 나는 실직할 수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꼭 알아둬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성취도와 상관없는 나만의 가치가 있다는 것.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언제까지고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표면적 행동을 혼동하는 고집을 부리게 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
행복한 이기주의자 中-웨인 다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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