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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May 13. 2020

조바심 처방전

받아들임  한 스푼, 충실하기 두 스푼 

작년 11월,  임신 중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조산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직 예정일은 3달도 넘게 남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온갖 상념에 사로 잡혔다. 자궁내부도 괜찮고 기저질환이 있던 것도 아니라 조산 증상의 원인이 명확하지는 않다고 했지만 내 경우는 '스트레스'와 '과로'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나 무리를 했던 건가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옆에서 전혀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이었다. 매일 야근에 퇴근하면 쓰러져 잠들기 일쑤이고 주말에도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고 하니. 하긴 그래서 자꾸 힘들면 그만두라고 했던 거구나.


임신 초기에 시작된 이직 생활. 단축근무도 가능하긴 했지만 입사하자마자 단축근무라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직한 뒤 1년도 채 되지 않아 휴직을 들어가야 하는데 빨리 적응해야지. 그래서 그 대신 초과근무를 했다(?). 그때부터였다. 조바심이라는 독이 온몸에 퍼져서 뭘 해도 자꾸만 더 불안해지는 상태가 된 것이.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 세 달이 흘렀는데 여전히 일은 많았고 야근은 계속됐다. 분명 사람이 더 필요한 일인 것 같은데,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바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제대로 일 해 보지도 않고 징징댄다(?)고 할까 봐 불안했다. 직급도 올려 이직한 터라 내가 더 잘해내야 한다고 나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불 꺼진 사무실을 나오며 한 달을 더 시달리고서야 나는 사람이 한 명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윗선에 말씀드렸다. 그동안의 격무(?)를 모두가 보고 있던 터라 그런지 바로 추가 인원 채용 공고가 났다. 이제 적응도 어느 정도 했겠다 신규인력도 오면 좀 수월해질 테니 두 달만 더 일하다 출산휴가를 들어가자 싶던 바로 그때 입원해버리고 말았다. 하늘이시여.


그렇게 예정보다 3개월이나 더 일찍 조기 휴직을 들어와야만 했고 나는 또다시 회사에 죄송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밤늦게 까지 종종거리면서 일만 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뱃속의 아기까지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 안 한 마음도 컸다. 다행히 아기와 나의 건강이 최우선이라고 회사에서 배려해주신 덕에 입원에서 출산까지 큰 고비 없이 지나오게 되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난 지금 안도감보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과유불급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지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고 했건만. 나는 지나치게 빨리 적응하려고 애썼고 지나치게 빨리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그렇게 자라난 조바심이 온몸에 퍼져서는 적응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휴직을 떠날 일이 걱정이고 복직해서 돌아올 일이 걱정이라 금세 초조해졌다. 그래서 더 빨리 적응하고 최대한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또 조바심의 구렁텅이로 나를 내몰아 갔던 것이다. 


기분이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며
마음이 평화롭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 노자-


그 당시를 돌아보니, 내 마음은 늘 미래에 가 있었던 것 같다. 빨리 적응해서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나의 모습. 여유롭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 시간과 노력이 쌓여야 도달할 수 있는 그 모습만 바라보고 그렇지 않은 지금의 나를 비교하니 자꾸만 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휴직에 들어와서 누워있는 것 외에는 유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때 그렇게 까지 무리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그저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으면 됐는데 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또, 너무 잘하려고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어도 됐다는 것과 그저 열심히 하려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피어났다. 

그리고  아이까지 위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 처했던 만큼, 더 이상은 이제 조바심에 속절없이(?) 흔들리지 않도록 대비책을 만들겠노라고 다짐했다. 


대비책이라고 했지만 사실 대단한 건 없다. 내가 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했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대비책이라면 대비책이랄까. 너무 빨리 무언가를 해내야겠다거나 너무 빨리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조바심이 들 때면 그때의 기분과 상황을 기록해 두는 것. 그렇게 되면 미래로 달아나 있는 나의 시선을 나에게로 다시 돌려오고 편안해진 상태에서 훨씬 여유롭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계절이 변하고 복직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역시 호르몬의 농간이라 믿고 싶지만. 무엇보다 적응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휴직에 들어왔다는 것과 이제는 아이가 있는 엄마가 되어 다시 업무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어떨까. 사람들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시 예전처럼 무력하게 조바심에게 휘둘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재의 나의 상황 (아이를 낳고 업무를 놓은 시간이 길어졌으니 당연히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을 인정하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업무 관련 기사 읽기, 책 읽기, 글쓰기)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낼 테니까. 멀리 달아난 나의 시선을 오늘로 계속 가져오는 노력을 매일 해 나갈 테니까. 이렇게 쌓아간 시간이 여유라는 방패가 되어 자연스럽게 내 앞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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