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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May 08. 2020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이유

워킹맘을 준비하는 자세

"욕 좀 먹었겠다."

"네? 아, 네 아마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


얼마 전,  예전에 몸담았던 회사의 사장님과 나누었던 짧은 대화이다. 내가 이직하면서 임신을 했고 이제 출산해서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는 얘기에 하신 말씀이다. 얼떨결에 나도 동조는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자 괜스레 억울해졌다.


     정말 아이를 가진 게 욕먹을 일인 걸까...?

2018년 결혼 2년 차가 되던 봄, 남편과 나는 아이를 갖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갖는 건 전적으로 의지의 문제라 언제고 원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댔는데 간절함이 부족했을까? 어찌 된 일인지 몇 달째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는 하나 둘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그중 한 친구가 자신도 인공수정을 시도했노라고 우리 나이엔(?) 난임 클리닉으로 바로 가보는 게 좋을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래 할 수 있는 노력은 해보자 싶어 병원에서 날짜도 받아보고, 호르몬 주사도 맞아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배에 주사를 연신 꽂아가며 인공수정 시술도 해봤었다. 그렇게 몇 달째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테스트기는 어김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몇 달간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는 성공률이 40%라는시험관 시술을 할 것인지 (인공수정은 10%정도였다) 아니면 다시 인공수정을 시도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서서히 몸도 마음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즈음, 아이도 갖고 싶었지만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 갔다. 통번역사라는, 나름대로 전문직이었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일의 부침이 심했고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 특성상 앞으로의 비전에 자꾸만 의구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경험을 더 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를 갖는 것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사실, 아이를 생각하면 커리어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다니던 회사에 머무르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대기업 정규직 6년 차, 나쁘지 않은 연봉, 직장 어린이집도 있고 업무 특성상 크게 긴급한 일이 없으면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었으니까. 주변에서도 '아기 키우면서 다니기 좋은 곳'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렇게 머무르기에는 40세 이후에 내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40대가 넘은 여자 선배들을 찾아봐도 하나같이 커리어에 대해서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그 변화를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었다

이직도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었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할 때면 주변에서는 대부분 지금 회사에서 애 낳아서 잘 키우면 되지 않느냐 무슨 고민을 사서 하느냐 하는 말들이 돌아왔다. 정말 이게 그렇게나 큰 욕심일까. 다행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열렬히 지지해 주던 남편이 있었지만, 사실 임신과 출산이 가져올 변화는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에 고민이 더욱더 깊어졌다.


1년여 남짓 임신을 시도해봤지만 인공수정도 실패하고, 어차피 아이가 찾아오는 것은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 먼저 해보리라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역시도 녹록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직무 자체를 변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녹여서 이직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면접 제의가 오면 무조건 참여하겠노라 다짐했다. 공공기관, 사기업, 엔터테인먼트 회사까지 다양한 회사를 거쳐 드디어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3번의 면접과 연봉 협상, 그리고 이전 직장에 퇴사 통보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지만 변화를 꾀하는 나 자신에 자랑스러워하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퇴직원을 내던 날, 임신테스트기에 처음으로 두 줄을 봤다. 그렇게 바라던 두줄이었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당장 이직한 회사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테스트기 확인만으로 아직 임신은 확언할 수 없다는데 그럼 임신인 걸까 아닌 걸까. 임신이면 어떻게 하지, 혹시라도 아기가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지, 찰나의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절묘한 타이밍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새 회사로 이직하기 일주일 전,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했다.



세상일은 원래 마음대로 되지 않고, 마음대로 된다고 해도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문득 회식자리에서 영업팀 상무님이 해주신 얘기가 떠올랐다. 법륜스님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바라던 바가 모두 이루어진 셈이지만 당장 이직한 회사에 어떻게 임신 사실을 알려야 할지, 회사에 적응하고 일을 익혀야 하는데 출산하고 출산휴가는 어떻게 할지. 무엇보다 회사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직한 회사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더 열심히 보여주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출근 첫날, 이렇게 첫 출근부터 임신 사실을 알려드려 송구하다는 말씀부터 드렸다. 다행히 이해를 해 주셨지만 새로 옮겨간 직장에서 임산부로 시작한다는 게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았다. 당시 팀에는 기혼자도 없었고 임산부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임신 초기 입덧으로 현기증이 나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도, 새로운 직장에 더 빨리, 더 잘 적응하고 무엇보다 임신을 핑계로 밑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집에 와서 정신없이 쓰러져 잠이 들 지언정, 회사에서는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했다. 무슨 임산부가 그렇게 일을 하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출산하기 2주 전까지는 출근을 해야지.' '아이가 어리니 육아휴직은 몇 개월만 쓰고 다시 복직해야지. 그러려면 지금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렇게 4개월이 흘러 차차 적응이 되어 가던 차였다. 그런데 그 다짐들이 무리가 되었을까 임신 6개월에 접어들던 어느 날, 배가 너무 아파 앉아있기가 힘들어졌다. 숨이 가빠졌다. 그리고 찾은 병원에서 조산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바로 입원을 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금방 퇴원해서 다시 출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세상일 사람 맘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3주 동안 입원하고도 퇴원해서도 누워있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3개월간 이른바 눕눕 생활을 시작했다. 이직하면서 임신한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직한 지 4개월 만에 휴직에 들어가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출산을 하고 이제는 복직을 3개월 앞둔 예비 워킹맘이 되었다.


또 다른 시작 워킹맘 , 나는 다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커리어와 아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고 싶어 시작한 이 모험이 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죄송하고 미안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자꾸만 발생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회사에서는 나의 임신으로 근무 대체자를 다시금 채용해야 했고, 나는 그 미안함에 내 몸을 불살라(?) 무리한 탓에 원래 계획보다도 훨씬 더 일찍 휴직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휴직기간 중에도 마음이 불편해서 몇 번이고 다시 출근을 시도했지만 무산되길 수차례. 어렵게 찾아온 생명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알고 어느 순간부터는 안전한 출산을 기다리기도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제 겨우 적응한 직장을 잠시 떠나 또다시 적응할 생각을 하면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지 워킹맘들의 조언을 얻고 싶어 맘 카페에 검색을 해본 적이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인식도 제도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많았다.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나서 사직을 권유받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사직을 택하는 사람도 있었고,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막달까지 출근한 뒤 출산휴가만 쓰고 나서 바로 복귀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의 사정은 달랐지만 대부분 나처럼, 회사에 어떻게 말할지 죄스러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대다수였다. 아이를 갖기로 한 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 임신과 출산은 아이를 가지려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수순인데 그 당연한 일이 일하는 여성에게는 양자택일의 문제인양 너무나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는 사실에 씁쓸해졌다. 완벽한 타이밍에 커리어를 쌓고, 완벽한 타이밍에 아이를 갖고 완벽한 타이밍에 출산을 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18년 10월 기준 유배우 가구 중 맞벌이 가구는 46.3%에 달하고 18세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가구는 유배우 가구 중 51.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수치적으로 봤을 때 이미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 고무적이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렇게나 눈치를 보고 미안해해야 하는 분위기가 여전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일까 '엄마'라는 타이틀이 아직도 너무 어색한 나에게 '워킹맘'이라는 무게는 예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엄마들은 늘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일도 육아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그저 그럴 수 있겠다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던 이야기들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하는 요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더욱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커리어도 모두 나의 선택의 산물이니 선택에 책임을 지려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난생처음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제 막 적응한 지 90일째, 엄마라는 명찰을 달고 '워킹맘'이 되기 90일 전, 그 어느 때보다도 나에게 너그러워지고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많이 응원해주자고 다짐해본다.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이 세상 하나뿐인 내 아들의 손도, 성장을 꿈꾸는 내 인생의 커리어도 모두 다 중요하니까 양손에 한 마리씩 토끼를 붙잡고 묵묵히 걸어 나가는 수밖에는 없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두 마리 토끼와 나란히 길을 걷고 있을 모든 워킹맘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저도 곧 뒤따라갈게요 선배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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