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 eu de la chance
J'ai eu de la chance.
운이 좋았어요
가까스로 졸업을 딱 한 달 남기고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게다가 무려 프랑스 회사라니. 취업에 성공했다는 사실도 물론 기뻤지만, 더불어 내가 가지고 있는 도구가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사무실에 프랑스인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 분명 뿌리 깊은 프랑스 회사인데 지사장님도 한국분이셨고, 우리 팀 부장님도 선배들도 한국분이었다. 어쩌면 면접 때 잠시 둘러본 것이라 사무실에는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다른 층에, 다른 일로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면서 출근날을 기다렸다. 그래도 명색이 프랑스 회사니까 한 명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드디어 첫 출근날, 이래저래 부산스러운 마음에 원래 출근시간보다 거의 1시간을 먼저 도착했더랬다. 전에는 외부인인지라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보안실을 거쳐 나를 증명하는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가야 했는데 이제는 절차 없이 당당히(?) 인사를 하고 사무실에 올라가니 묘하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나도 이제 회사원이 되었구나.'
그런데 이게 웬걸, 마음이 들떠 너무 오버했나 보다. 출근시간이 1시간이나 남아서였는지,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그만두었는지 그만둠을 당했는지 알 수 없는 전임자는 이미 떠나고 없었던 터라 그저 우두커니 내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머쓱하게 서있었다. 얼마쯤 지났을 까, 전시 담당이셨던 R대리님이 출근을 하시면서 내가 추측했던 그 자리로 나를 안내해주셨다. 그리고 잠시 후 나의 사수 K선배님과 Y 대리님도 속속 출근을 마치셨다.
부장님까지 오시고 난 뒤, 처음으로 팀 회의라는 것에 들어갔다.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간단하게 소개를 나눈 뒤, K선배님과 함께 회사 내에 각각의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드렸다.
사장님과 MD팀, 그리고 우리 팀이 있었던 층 위에 한층 더 올라가면 총무팀, 전산팀, 재경팀이 있었고 지하에는 물류팀 분들이 계셨다.
그런데 아직도 안 보인다. 파리에서 인턴을 할 때만 해도 한국 회사에서 나와계신 주재원분들이 꽤나 많았는데, 이렇게나 유명한 회사에 프랑스인이 하나도 없다니...
그렇게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는 물음표를 달고 사무실 라운딩을 마칠 무렵, K 선배가 샘플실 반대편에 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유일한 프랑스인을 만났다. 바로 가방 수선을 위해 본사에서 파견된 프랑스 장인 P.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투박한 영어로만 대화했다고 들었는데, 오래간만에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서 흠칫 놀란 P도, 그리고 드디어 프랑스인을 만나게 된 나도 반갑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새로운 사람에게 곧잘 말을 거는 편이고, 더군다나 '배운건 써먹자 정신'이 투철한 탓에 학부시절에도 길을 가다가도 종로나 광화문 같은 곳에서 프랑스어가 들리면 (그때는 서울에 프랑스인들이 정말 적었다) 부러 길을 알려주거나 말을 거는 오지랖을 부렸다. 물론 불필요한 상황은 아니었고, 대부분 지도를 들고 있거나 (아, 세월이여), 어딘가를 찾는 듯이 두리번거리면서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었다. 도와주기 위함도 있었고, 머나먼 아시아 한국땅에서 자국어를 하는 한국인을 만나는 일 역시 그들에게 흔치 않은 기회이지 않나 싶어 좋은 의미로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종종 말을 걸곤 했다.
물론 P는 길에서 만난 도움이 필요한 관광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일한 공통분모인 '프랑스어'를 발판 삼아 틈날 때면 작업실에 가서 P에게 말을 걸곤 했다. 한 달에 몇 개 밖에 못 만든다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훈련받았던 사람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조용한 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지만 그렇게라도 '프랑스 회사'에서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있음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렇게 내가 안면을 자주 튼 덕분이었을까, 다른 이들에게는 다소 퉁명스럽다는 P가 (아마도 퉁명스럽다는 것은 프랑스인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다 보니 서로 간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가서 요청을 할 때는 그래도 잘 들어주는 편이어서, 수선의뢰가 들어오거나 인그레이빙 서비스 같은 의뢰가 들어오면 모두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하셨다. 그러나 P에게 이야기할 때 말고는 적극적으로 프랑스어를 말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프랑스 회사에서도 프랑스어는 제2 외국어
프랑스 회사에 프랑스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먼저 사내 분위기가 여느 한국 회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으레 프랑스인들은 몇 주씩 휴가도 가고, 일보다 사생활을 중시한다고 생각하는 선입견 내지는 틀에 박힌 시선 같은 게 있었는데, 일단 프랑스인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회사이니 사내 분위기는 자연스레 한국 회사와 비슷했다.
또, 회사가 한국에 진출해 있는 프랑스 기업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비단 한국 오피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뻗어있는 지사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영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가 전반적인 업무 언어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회사에서 조차 프랑스어는 잘하면 좋지만 못해도 크게 상관없는 제2 외국어가 되었다는 사실에 잠시 좌절하기도 했지만, 프랑스어가 빛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영어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실제로 내가 있었던 부서에서 나를 제외한 4 분 모두 영미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혹은 유학을 하셨던 분들이라 영어는 다들 유창하셨고, 그중 두 분은 원어민 정도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셨다.
다행히 나를 처음 외국어 집착녀(?)로 만들어준 계기가 영어였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써먹고 싶은' 프랑스어를 사용할 기회가 생각보다 적다는 점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렇지만 반대로 영어로 메일 쓰는 법,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고, 가끔씩 오고 가는 프랑스 본사 담당자들과의 메일이나 전화 교류를 통해서 학교에서 배운 표현 말고, '비즈니스'에 필요한 쉽지만 안 쓰면 바로 까먹거나 어색해지는 표현들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언어, 그것도 좋아하는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난 참 운이 좋았다.
내가 일했던 팀은 커뮤니케이션 부서로 브랜드의 PR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부서였다. 각 각 브랜드의 광고, 홍보/마케팅, 전시담당으로 이루어진 팀에서 나의 업무는 주로 홍보/마케팅 부분을 지원하는 일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매체 협찬에 필요한 샘플이 있는 프레스룸(Press room) 관리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왔던 샘플 실과 비슷한 모양새이긴 하나, 앤 해서웨이가 시크한 뉴요커로 변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그곳과는 달리, 회사의 프레스룸은 사적인 이용이 불가능하다. 워낙 고가의 제품이 많았기 때문에 '샘플'도 같은 제품 중에 하나였고, 그 제품을 '대여' 해주는 개념으로 화보 촬영이나 매체 촬영에 협찬하고 다시 돌려받는 시스템이었다.
패션잡지, 럭셔리 잡지, 라이프스타일 잡지 등 타깃 고객층에게 노출될 만한 각 매체 에디터며 스타일리스트들의 화보 촬영에 주로 협찬이 들어갔고, 실제로 촬영되어 매체에 노출된 지면들을 모아 본사에다 리포트하는 일이 매달 루틴으로 돌아가는 업무였다. 더불어 촬영 이후 기사 작성에 필요한 보도자료 배포를 위한 자료 정리하고 번역도 하고, 또 감수도 했는데 제품명이나 컬러명 같은 것들은 모두 다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나는 더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주기적으로 계획하는 브랜드 홍보 행사나, 전시회 준비등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행사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야근도 참 많이 했다. 매체들을 초청하는 행사 VIP 관련 행사 등 기본적으로 행사가 많다 보니, 만들어야 하는 자료나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의외로 정말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야근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버렸고 선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어떤 사람처럼 되고 싶은지, 나는 계속해서 이 분야에 있고 싶은지 어떤지 다시금 고개를 드는 질문들에 잠을 설치는 날들이 잦아졌다.
협찬을 위해 매달 찾아오는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기자들의 얼굴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이름만으로도 어느 매체의 어떤 분야 기자인지 줄줄 꾈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다른 선배들을 지원하는 일들도 점점 수월해지는 게 느껴졌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른 럭셔리 브랜드에 자리가 났는데 관심 있냐는 오퍼도 받아보고 그래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건가 내가 일을 나쁘게 하지는 않는가 보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일을 하던 와중에도 틈틈이 다른 회사 공고도 찾아보고, 동기들도 만나고 내가 가야 하는 길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또 몇 번의 행사가 지나가면서 어느새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무렵 본사 고위급 간부들의 한국 방문이 있었다. 당시 방문은 고위급 경영진이 해마다 각 국가들을 방문해서 둘러보는 연례행사로 팀에서도 중요하게 준비했던 행사로 기억한다. 일정상 이동을 위해 사무실에서 행사 장소로 가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프랑스에서 방문한 VIP와 나, 그리고 우리 팀 부장님이 함께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이동 중 조용한 차 안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창밖을 보면서 부디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참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로수길을 달려가던 중, 부장님이 VIP에게 행사 일정을 다시 한번 설명하신 뒤 불쑥 내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운을 떼셨다.
그렇게 불쑥 시작된 대화에서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프랑스어를 어디서 배웠는지, 어떻게 배웠는지 하는 기본적인 대화가 오고 갔던 것 같고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는지 건물인지에 관한 질문을 또 하셔서, 답변을 드렸더랬다.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그래도 한국에도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고, 또 그 직원이었다는 것도 괜스레 뿌듯했다. 부장님도 내심 만족해하시는 눈치셨다. 그리고 마지막 킥 한번 더.
"Mais, vous n'avez pas d'accent du tout" 그런데 (한국어) 악센트가 전혀 없으시네요.
내 프랑스어 발음이 나쁘지 않은 편이긴 했는데, 원어민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괜스레 그동안 공부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았고 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언어를 내가 실제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기분이 좋았다. 무슨 말인지 묻는 부장님에게 한국어로 설명해드렸는데, 다시 한번 영어로도 같은 말을 해주신 VIP 덕분에 부장님도 그동안 진짜 잘하는지 어쩐지 알 수없었던 나의 프랑스어 실력을 이제야 검증했다는 눈치셨다.
물론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발음이 전부가 아니다. 발음이 좋다고 그 언어를 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심각하게 틀리지 않은 이상, 발음상의 문제로 단지 발음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의사를 표현하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별거 아닐 수 있는 그때 그 한마디가 프랑스어를 더 잘하고 싶다, 프랑스어를 더 많이 활용하고 싶다는 어떤 마음의 불씨를 타오르게 해준건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는 그 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