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tenant ou Jamais
Maintenant ou Jamais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입사하고 한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새로운 사람들도,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언어는 또 다른 세계를 위한 통로라고 했던가, 프랑스어를 하지 않았다면 이 회사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겠다 싶을 만큼 다양한 경험을 했다.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만든다는 가방을 수 없이 보고, 각종 매체들을 초대해서 S/S, F/W 뉴 시즌 컬렉션을 소개하는 자리인 프레젠테이션도 참여하고, 협찬을 위한 룩북도 제작해서 보내고, 다른 브랜드나 매체 파티에도 초대되어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회사 행사에서 프랑스의 국민배우 격인 줄리엣 비노쉬도 만났고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때문에 출장도 갔었다. 미술 전시 오프닝도 참석해보고, 매장 영업이 끝난 뒤 밤늦은 시간 매장 별 윈도 디스플레이도 있어보고, 첫 해였기 때문에 더욱더 늘 새로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이 많아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내가 다른 꿈을 꾸었는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매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해의 T/O에 맞게 변하기에 언제까지 계약직으로 머물러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 그리고 내가 정말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지 확실하지 않았다는 점, 그 하루가 다르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다른 곳을 바라보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자꾸만 한눈을 팔게 된대에는 어떤 간극도 있었다. 패션을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처럼 패션을 너무 사랑하고, 럭셔리 업계에 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모든 것을 다 뛰어넘을 정도로 기쁘고, 자부심을 느끼고 그래서 더 앞으로가 기대되는, 그런 사람이 나는 아니었다.
프레스룸에 있으면서 최신 트렌드며, 브랜드며 줄줄 꾀고 있는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들을 많이 만났다. 촬영을 위해 밤샘은 기본이고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각 브랜드 담당자들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셀렉하고 촬영하고 에디팅까지 하면 지칠 법도 한데, 새로운 샘플이나 제품이 들어오면 눈을 반짝이며 '예쁘다'를 연발하며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그저 그렇게나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열정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 부러웠고, 내가 채울 수 없는 그 열정을 노력으로 따라잡으려 관련 서적도 찾아보고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그들이 갖고 있던 그런 반짝임이 나에게는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되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분야는 뭐가 있을까 역으로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당장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통역사의 길로 조금씩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외교관 다음으로 사라지지 않은 꿈 리스트 중 하나였던 통역사는 당장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바로 대학원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한 뒤에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취업을 먼저 했던 것인데, 그 '어느 정도'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버렸다.
1년이라는 시간이 사회생활을 충분히 경험할 만큼 어느 정도의 시간이 되기엔 길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만족스럽지 못했던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핑계일 수도 있고, 그래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그럴싸한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나도 그렇게 그럴싸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의 가치를 올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올리는데 적어도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도 내 가치를 올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 2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던 때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그렇게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뭐든지 다 했을 만한 여유가 있었는데 막상 당시에는 이미 앞서 가고 있는 주변 친구들과 나를 같은 선상에 두고 보니, 무언가 하려면 빨리 시도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루에도 마음이 이리저리 왔다가 길 수십 번, 공부를 시작할까 하다가도 당장 현실에 벽에 부딪혀 마음을 고쳐먹고 회사에서 더 경력을 쌓아야 하는 건가 생각하다가도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 가치를 더 높이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고민하던 차에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는 4-5살 차이도 엄청 커 보였는데, 당시 함께 일하던 선배도 20대 후반, 30대 초반 사원, 대리급이었고 어느 정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게 보였다. 그중 내 사수였던 선배는 유난히도 일을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 퇴근 후에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다가도, 내가 너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며 황급히 화제를 돌리기도 하고, 또 다른 선배도 푸념을 늘어놓는데 그 시간이 좀 지속되다 보니, 나도 점점 같이 지쳤갔다. 그러다 별안간, 언젠가는 내가 저 지친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소 싶은 곳으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빨리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지나가면 어찌어찌 지나가면서 내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선배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지금 아니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든 시점이.
그리고 주변을 수소문해서 고등학교 친구를 통해 통번역 대학원을 다녔다는 그 친구의 동기와 연락이 닿았다. 나는 프랑스어, 그 친구는 독일어로 비록 같은 언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질문 리스트를 메일로 보냈다. 입학 전에 얼마나 준비를 해야 하는지 실제로 입시 준비에 얼마나 시간일 걸리는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가 필요한지, 그리고 졸업생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묻고 찾아보며 조금씩 준비해 나갔다.
그렇게 차차 준비를 해가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의외로 사수였던 선배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나보다도 먼저 그만두게 된 것. 패션업계가 워낙 이직과 이동이 잦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한 번씩 화장실에 다녀오면 눈이 빨개지며 돌아왔던 그 선배가 내 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이 떠나 있기도 했었다.
그렇게 가장 가깝게 일하던 선배가 먼저 떠나고, 한 두 달 정도 후에 나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오뚝 아"
대학원 준비로 퇴사 이야기를 꺼내니 뜻밖에도 부장님은 응원을 해주셨다. 워낙 통역사들과도 일을 많이 하셨고, 전문직으로 일찌감치 나가는 게 내 미래를 위해서 더 좋은 선택이라고 충고를 해주셨더랬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채용과 인수인계 기간을 거치고 나서 그만두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만류하셨던 건 오히려 사장님과 다른 팀 이사님이셨다. 당장 그만두기보다는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준비하면 어떻겠냐고 여러 번 물으셨는데, 잠시 맘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었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대학원 준비를 하기로 했다.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려면 일반 대학원과는 달리 입시시험을 준비해서 들어가야 하는 터라,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더 단호하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 거쳐간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있던 자리에 언제나 오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후임자는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졌다. 다만, 이번에도 스스로 문을 두드린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내 후임자는 프랑스에 있으면서 사장님께 직접 메일로 이력서를 보냈다고 했는데, 정식 공고가 나기도 전에 들어온 지원서를 보고 면접이 결정되었고, 그분으로 채용이 결정되었다. 역시 마냥 기다리기보다 두드리는 사람에게 기회가 더 생기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어 덕분에 들어갔던 회사를 프랑스어 때문에 그만두게 되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오로지 하고 싶은 일만 바라보고 나오게 되었다.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안되면 어떻게 하지, 등록금은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지금 아니면 영어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최선을 다하자 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회사를 나온 지 7개월 되던 그 해,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했다. 그것도 수석으로.
그렇게 다시 나를 다른 세계로 안내해준 프랑스어와의 동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