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넘어야 하는 가장 거대한 벽은, 당신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벽이다 Le plus grand mur que vous devez grimper, est celui construit par votre esprit
작자 미상
프랑스어로 나름 레벨 끝판왕 중 하나라는 통번역대학원까지 들어갔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따금씩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도 프랑스에 살다 왔으면 좋았을 텐데"
외국어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끼리는 해외파와 국내파를 구분하는 말이 바로 '살다왔다'이다. 어디에 살다왔는지는 그 언어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그저 '살다왔다'는 사실이 네이티브 혹은 해외파의 동의어로 사용됐다. 과거로 시간을 돌려, 어린 시절 프랑스로 떠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특히 대학원 생활 내내 이 불가능한 염원을 실제로 입 밖으로 내뱉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소위 말하는 국내파다. 국내파 해외파를 나누는 기준이 일목요연하게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국내파는 성인 이전에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 혹은 해당 국가를 성인 이후에 잠시 다녀온 사람을 일컫고 해외파는 대게 성인이 되기 전 어린 시절부터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을 주로 일컬으며 동의어로는 '네이티브' 정도가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조기 유학이 많아진 연유도,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익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하는 건 해외에서 '살 다오는 것'이 그 나라 언어를 학습이 아닌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되기 때문이리라.
프랑스어로 외대 통역대학원에 들어가고 졸업 후 통번역사로 커리어를 꾸려오면서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나도 나름대로 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이 어떻든 간에 꽤나 오랜 시간 나는 '국내파 콤플렉스'를 앓아왔다. 이제야 비로소 그 콤플렉스에서 해방되고 보니 그 콤플렉스가 얼마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인지 알리고 싶었고, 혹시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하루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콤플렉스 : 자기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뒤떨어졌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 (네이버 국어사전)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배운 외국어는 영어이고, 프랑스어만큼이나 일상생활에서도 오래도록 쓰고 있는 언어이지만 딱히 그런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에 한번 가본 적도 없으면서 이만큼 하면 잘하는 거 아니냐며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들이밀 정도로 더 잘하려고 노력을 했으면 했지 결코 내가 영미권에 다녀오거나 살 다오지 못한 것이 콤플렉스로 느껴졌던 적은 없다. 물론 그랬다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게 '콤플렉스'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프랑스는 그래도 1년 반 정도를 다녀왔음에도, 유독 내가 국내파라는 사실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주력으로 공부했던 언어이고, 직업으로 까지 연결되는 언어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그랬던지도, 아니면 너무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서 나의 실력이 미천하게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 유래부터 찾아보아야 하니 처음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 가보겠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부러움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장르를 불문하고 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친구, 아니면 잠시 아버지를 따라 몇 년 살다온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일전에도 한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독일에서 살다온 친구 하나는 독어도 하고 영어도 잘하는데 프랑스어도 잘하고 그때는 '정말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너무 부럽다.' 했다. 뭐 유럽 국가들에서는 흔히들 2-3개 언어씩 한다고 하니까 그때 그 친구는 아주 특수한, 나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긴 했다.
실제로 한국인 선생님들과 수업을 할 때는 크게 다른 점을 느낄 일이 없었다. 한국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문법이며 동사변화며 대부분 외워야 하는 것들이 많았고, 대화 내용도 녹음된 대화를 듣고 따라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프랑스인 원어민 선생님 수업에서는 늘 달랐다. 나는 외우고 외운 표현들을 뱉어보고,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야 겨우 대답을 할까 말까 했는데, '살다온' 친구들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때부터였나부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자연스러움에' 부러움이 동반된 열등감 같은 것이 그때부터 스멀스멀 싹트기 시작한 것이.
자연스러움과 익숙함 사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살다온'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특례입학으로 프랑스에 살다온 학생들이 동기와 선후배 해서 꽤나 많았는데 고등학교 때랑은 소위 레벨이 달랐다.
나도 나름 외고를 다녀서 처음 한 학기는 특별히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도 전공 시험은 모두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딱 1학기가 지나고 나자 고등학교 3년 동안 저장해온 것이 바닥이 났다. 좋아서 하는 공부였고, 잘하기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늘 마주치는 '살다온' 애들에게는 뭔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고 한걸음 물러나게 되는 그런 무언가가 있었다.
프랑스어는 단어마다 성/수가 있고 동사변화도 6인칭이나 되는 데다가 거기에 시제도 다양하다. 지칭하는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에 흔히들 논리적인 언어라고 하는데 그만큼 배우기도 복잡하다. 시제는 또 어떤지, 과거만 해도 반과거, 복합 과거 단순 과거 대과거 등 규칙도 많은 데다가 각종 동사에 들어가는 전치사며, 쓰이는 시제며 게다가 어쩜 그렇게 예외도 많은지. 그래도 공부하는 방법은 어쨌거나 외우면서 익히는 방법밖에는 없었는데, 나는 외워서 집어넣고, 다시 생각해서 끌어와야 하는 표현들이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오고 구사하는 해외파가 정말이지 너무너무 부러웠다.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그렇게나 부러워했던 그 '자연스러움'이 묻어나기 시작한 때는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다녀온 즈음이었던 듯하다. 언어가 유기체와 같으니 그 상황 속에서 쓰는 말이 몸으로 각인되는 효과도 있었던 듯하고, 아무래도 눈 뜨면서 잠들기 전까지 프랑스어로 세팅된 환경에 살다 보니 내가 그렇게나 갈구하던 '자연스러움'이 나에게는 언어에 '익숙해짐'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또, 인턴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일까지 해보고 돌아온 뒤로 얼마간은 '국내파'니 '해외파'니 하는 구분에서 자유로워 그저 프랑스어를 잘하는 사람이 돼서 프랑스어로 밥벌이를 하자.라는 생각으로 지냈더랬다.
1) 내가 가진 것에 집중 하자
굳은 의지로 다니던 회사도 나와서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갔는데 얼마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국내파의 잔상은 한 층 더 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나를 찾아왔다.
대학원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일반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어휘나 표현을 넘어서 더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룬다. 흔히 생각하는 국제회의에 다루어지는 이슈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늘 새로운 환경에 알아야 할 것들이 아는 것보다 점점 더 많아지는 상황에서 그 간극을 채워가면서 공부를 해내가는 게 정말이지 쉽지만은 않았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더더군다나 통역대학원은 언어를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통번역 스킬을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언어에 관한 부분은 철저하게 개인이 채워가야 하는 몫이었다. 때문에 방학이면 동기들끼리 모여서 어휘 공부, 통번역 스터디를 하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교수님들께서는 문화적인 자료, 역사적인 자료 등 프랑스어 자체뿐만 아니라 배경지식을 키울 수 있는 공부를 더 권하시기도 했다. 가뜩이나 봐야 할 것도 외워야 할 것도 많은데, 내가 살다왔으면 이런 문화적인 부분들도 '공부'하지 않아도 채워지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이따금씩 머릿속으로 치고 들어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이 입학했던 동기들 중에 한영불(3개국어과정)과 1명을 제외하고는 해외파가 없었다. 있었다면 나의 부러움이 또 궁극에 달했을까. 그래도 다른 기수들은 한 두 명씩은 있다고 들었는데, 교수님들 말씀으로는 해외파가 한 명씩 있으면 A(한국어)->B(프랑스어) 통역 스터디나 수업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들었다.
같은 학년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1/2학년 통합수업이나 교수님들의 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해외파의 모습은 내게는 '완벽'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프랑스어와 통번역 스킬 두 마리의 토끼 중 그래도 한 마리라도 잡아 놓은 채로 시작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또,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이나 내가 미흡한 부분을 모조리 다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생각으로 '해외파'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환상은, 프랑스인인데도 프랑스어를 지적받는 프랑스인 선배를 보면서 보면서 조금은 사라지긴 했었다. 프랑스인도 프랑스어를 크리틱 받는 마당에 나는 한국사람인데 오죽하겠어라는 자기 합리화였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통번역을 공부하면서도 언어는 도구일 뿐이지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전적으로 그 도구를 활용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모르는 척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없는 그 '살다온'경험을 자꾸 되돌아보며, 통번역에서 꼭 필요한 모국어 능력을 간과하고 오로지 내가 갖지 못한 지점에 집착했기 때문에 그렇게나 부러움이 콤플렉스까지 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언젠가 그 프랑스인 선배가 본인이 약한 한국어가 나는 강하지 않냐면서 되물었을 때 약간 머리가 띵 해왔다.
그렇다. 나도 한국어는 한국 체류기간이 이제 30년도 훌쩍 넘은 한국어 네이티브다.
2) 세상에 공짜는 없다
프랑스어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늘 주변에는 프랑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원 동기들은 이 대부분이 나처럼 국내파였기에 나와 같은 애환(?)을 공유했다면 내가 일하면서 만나게 된 해외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애환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처음 프랑스어권에 가게 된 친구 하나는 불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 프랑스 학교에 갔다고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편견 어린 시선을 견뎌내며 보냈던 어린 시절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아서 많이 힘들었다고. 물론 모두 다 일반화할 수는 없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은근한 인종차별까지 겪어내며 보낸 시절 끝에 말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다시 가서 살고 싶을 법도 한데, 프랑스에 돌아가서 살고 싶지는 않단다. 한국이 더 좋다고.
다른 친구도 워낙 어렸을 때 아무 기초도 없이 부모님을 따라갔던 터라 말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더 빨리 익숙해지려고 프랑스에서 프랑스어 과외를 받으면서 혼자서 참 부단히 공부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애환은 한국어에도 있었다. 프랑스어권에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만 한국으로 온 친구가 있었다. 학부를 마치고 일을 시작했을 때 오히려 한국 문화나 실제 회사생활에서 쓰이는 어휘들과 표현들이 생경해서 한국어로 보고서를 쓰고 메일을 쓰는 게 어렵고 힘들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작성해도 자꾸만 지적을 당하니 그것이 또 힘들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나 부러워했었던 '자연스러움'을 모두 갖고 있는 그들에게도 그게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각자 외롭고 힘든 시간을 거쳐서 얻어낸 결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엇하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데 왜 나는 그 '자연스러움'이 '살다 오기만 하면' 쉽게 얻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막연하게 부러워하기를 멈추게 되었다. 모든 것은 다 노력의 산물이니까.
3)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한국어를 하지만, 지금 당장 한국어 시험을 봤을 때 얼마나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 한국사람도 한국어를 각 잡고(?)하려면 어렵고 알게 모르게 어순, 어휘, 맞춤법 등등 실수를 한다. 언어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니, 그 자체로 완벽해 지기 위한 대상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실제로 일을 하면서 만났던 프랑스어권 (알제리, 모로코, 프랑스, 콩고 등등) 사람들조차도 실수를 했다. 문서에서, 일상생활에서 오히려 내가 한 번씩 집어낼 정도로. 내가 그렇게나 부러워했던 '살다온' 친구들도 실수를 했다. 그들도 모르는 게 있다. 일반인이 한국어로 된 법률문서를 봤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 언어를 한다고 해서 모든 사안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흔히 하는 생각이 통번역대학원에서도 해외파와 국내파가 중 전자가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통역이라는 행위 자체가 한 가지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아니라 한국어가 모국어인 경우 한국어-> 외국어, 외국어-> 한국어 양방향 통역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 언어 거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양쪽이 균형 있게 강한 사람들이 통/번역에 유리하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경우는 어느 쪽으로나 어렵다. 또 통역과 번역 모두 단어 대 치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자, 혹은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메시지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능력 역시 중요하다.
물론 언어의 유창함이 더해지면 더 좋은 통역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유창하다고 해서 다 좋은 통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국어를 모두 구사하지만 개중에는 조리 있게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하는 이른바 말 잘하는 사람이 있고,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차이라고 보면 비교가 쉽게 될까
이론적으로는 나도 이렇게 이해했었고, 실제로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교수님들이 해주셨던 말씀도 이와 동일했다. 실제로 필드에서 활동하고 계신 선생님들 대부분이 국내파와 해외파가 두루 계셨었고, 내가 처음 통역사의 꿈을 갖게 된 최정화 교수님 역시 국내파 통역사였다.
그런데 막상 통역을 하다 보면 한국어도 꼬이는데 프랑스어는 말하면서도 이게 말인지 말이 아닌지, 말이 되는지도 모르면서 말을 뱉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외에 좀 살다 왔더라면 이런 표현들은 좀 쉽게 고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프랑스어-> 한국어 통역을 할 때에도 말이 꼬이고 적절한 표현이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아 비문을 말한 적도 많았는데 (그래서 자아비판의 시간이 참 많이 온다) 해외에 살고 안 살고 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실력의 문제, 연습의 문제였는데 그것을 자꾸만 '살 다오지 않은탓'으로 많이 돌렸던 것 같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도 이 콤플렉스는 쉬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는데, 번역이나 통역을 하다 보면 원문 자체가 이상할 때가 왕왕 있다. 번역의 경우 아예 원문 자체가 비문이거나 (이 역시 한국어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문법이 틀려있거나 지칭하는 대상이 모호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그 모호한 원문이 정말 이상한 게 맞는지 원어민에게 확인을 하고 나서야 확신이 생겼더랬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맞았는데, 그렇게 자기 검열이 심해지다 보니 점점 더 완벽한 표현에 집착하게 되고, 번역이건 통역이건 모든 것에는 '완벽'이라는 것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 자신을 내가 괴롭히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같이 일했던 프랑스인, 알제리인 동료들이 모두 내 불어도, 번역도 통역도 훌륭하다고 이야기를 해줘도 그저 기분이 좋으라고 하는 말이려니, 곧이듣지 않았고 늘 더 나은 표현, 그리고 '내가 살다왔으면 쉽게 했을 만한' 말들을 끊임없이 주워 담기에 바빴다.
나는 정말 잘하고 싶었다. 꿈을 이루겠다고 뛰어든 그곳에서, 나는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랬을 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통역사'의 모습을 그려두고, 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이룰 수 없는 '완벽'이라는 신기루만 쳐다보며 내가 그 '완벽'에 다다를 수 없는 이유는 온전히 내가 '살다 오지 않았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하는 불어가 완벽한지, 완전한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확인하다 보니, 오히려 스스로 확신도 줄어들게 되고 그러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나를 더 '국내파 콤플렉스'로 몰고 갔던 것 같다. 실체도 없는 완벽이라는 모습을 향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말에는 힘이 있어서, 그렇게 자신을 과거의 내가 그랬든 '국내파라서...'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국내파'니까 이건 못하고, 저건 할 수 있고 이렇게 본인 스스로를 한계 짓게 되고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벽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세운지도 모르는 벽 때문에 한 번씩 또 괴로워하게 된다.
온전히 프랑스어로 밥벌이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가면서, 앞서 나열한 3가지를 되새기며 그동안 내가 실체 없는 콤플렉스를 앓느라 나를 갉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콤플렉스'라고 느껴왔던 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쌓아 올린 마음속의 벽을 깨서 무너뜨리기만 하면 될일 이었다.
국내파인지 해외파인지 계파 구분을 해서 자신의 한계를 정하기 전에, 자기가 자기 자신을 더 믿어주었으면 될일 이었다. 그리고 어제보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 가면 될일 이었다.
좋아서 시작해서 나중엔 콤플렉스를 느낄 정도로 힘겹게 배웠지만, 한 평생 외국어 외길인생을 걸어오면서 느꼈던 점은, 언어 공부는 참 정직하다는 점이었다. 배울 때는 실력도 더디게 느는 것 같고 도무지 내가 저렇게 말하려면 얼마나 더해야 되나 한탄만 나오던 시절도 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한 단계 또 올라가 있고, 좀 더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고, 또 자연스러워지기도 한다. 가끔 프랑스에서 1년 반만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하냐 라는 공치사라도 들을 때면 어깨도 으쓱하다. 게다가 프랑스어로 가졌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경험까지 선사해주니, 더더군다나 더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요즘은 영어는 물론이고 다른 언어들도 국내파와 해외파 구분 없이 발군의 실력을 뽐내는 통/번역사들, 외국어 능력자들도 아주 많다. 요즘은 특히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해외 매체들도 너무나 많고,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도 많다. 화상통화로 외국인과 대화도 할 수 있고, 현지에서 처럼은 아니더라도, 그에 비등하게 외국어에 노출되어 생활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있으니 더욱더 국내파/해외파 경계나 분류도 모호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니 더더욱 국내파니 해외파니 하는 구분에 얽매여 자신의 실력을 한정 짓거나 움츠러들어 무디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