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 y a encore un long chemin à parcourir 갈길이 아직도 머네요.
언제부터 통역사를 꿈꿨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탤런트였다가, 피아니스트였다가 사장님(?)이었다가 뮤지컬 배우였다가 기자 (그것도 특파원)였다가 다시 통역사와 외교관, 그리고 쇼호스트까지 무지개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나의 꿈 목록. '일과 직업의 세계'라는 교양수업시간에 내가 갖고 싶은 직업을 주욱 나열해보다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하기 어려운 것부터 지워가 보고 나중에는 그래도 만만해 보이는 것 (?)은 도전해보고서라도 그만두자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것 하나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나마 하나를 꼽자면 누군가의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말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려나.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 시절을 지나오면서 늘 '하고 싶으면 하라'는 주의셨던 엄마와 자라온 탓에 정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래도 노파심에 혹시나 하고 시키신 것인지 아니면 이마저도 내가 시켜달라 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수학과 함께 당시만 해도 센세이셔널했던 영어 학습지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라디오를 진행한답시고 테이프를 틀어두고 DJ처럼 이야기를 할 만큼 말하기를 좋아해서 그랬을까, 새로운 언어를 접한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재미가 있었는데 발음도 소리도 정말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듣기 테이프에 녹음된 대화를 따라 하고 듣고, 또 듣기를 여러 번 아예 나중에는 다 외워버렸다.
그렇게 한창 영어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도중에, 운명 같은 만남을 하게 된다.
나는 꼬꼬마 시절에도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혹은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자기 계발류의 책을 좋아했는데 그렇게나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이나 이야기들을 듣고 보는 것을 즐겨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다 (사람은 안 변한다). 어찌 됐건 그 당시에 즐겨보던 프로그램 중 나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방송이 있었으니 바로 MBC 성공시대다.
드디어, 운명을 만났다.
당시에 성공시대는 제목이 보여주듯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인터뷰해서 성공 비결을 묻고, 그 사람의 일상을 스케치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성공한 사람이 겪어온 역경, 그리고 고난 극복 스토리 등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33회 주인공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바로 최정화 교수님.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수도 없이 달고 있던 그녀는, 우리나라 1호 통역사이자 교수로 활동하고 계신 분이셨다. 나는 이제 고작 영어 몇 마디 배우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영어도 프랑스어로 그것도 국가 원수들 사이에서 활약하고 계신 분을 보니 아- 이거구나 했다.
아마 그때부터 인가보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음, 저는 나중에 통역사가 될 거예요!라고 이야기하던 것이.
그렇게 장래 희망란에 빠짐없이 동시통역사를 넣어두었던 나는 오히려 학부시절에는 통역사에 대해 큰 열망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언젠가는 응당 하게 될 (?) 직업을 갖기 전에 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는 게 더 옳았겠다. 그리고 어차피 하게 될 (?) 그 직업을 바로 갖기 전에, 버려지지 않던 쇼호스트에 대한 미련은 실제로 당시 케이블 채널에서 했던 쇼호스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은데 지원했었다. 면접 길이 너무 멀어서 가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되뇌고 너무 시시하게 돌아왔지만, 그때 면접을 봤으면 어땠을까 아직도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그렇게 통역사만 빼고 시도했던 나는 프랑스 회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오히려 통역사에 대한 강렬한 콜링을 다시 느껴 대학원에 들어갔더랬다.
정말 운이 좋게도 입시 준비 6개월 만에 회사를 나온 그 해 통번역 대학원에 한 번에 합격했다. 그것도 수석으로.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나의 상황을 하늘이 알았을까, 본교 출신 장학 조교로도 선발되어 한 학기 동안은 교수님 조교로 일하면서 당시 500만 원이 넘었던 한 학기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면제받았다. 시작이 너무 좋았다.
우상을 만나다.
꿈이 이루어진다는 게 이런 걸까. 90년대 초등학생이 티브이로만 선망해오던 그때 그 명사를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게 되니 정말이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 무렵 입학했던 동기들 대부분이 나처럼 최정화 교수님을 보고 꿈을 키워왔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게 우상을 만나 감격스러웠던 순간이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을 위한 잠깐의 위로였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대학원에서의 삶은 수험시절보다도 더 치열하고 더 빡빡하고 더 혹독했다.
대학원 생도 아닌, 직장인도 아닌 회색 인간에서 '대학원생' 집단에 들어간 기쁨도 잠시, 본격적으로 자아성찰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당시 수업에 첫 시간에 교수님들께 들었던 이야기 중 제법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 몇 가지만 먼저 나열해 보겠다.
1. 통번역대학원은 언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왜 그런 환상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순간! 뭔가 쏼라쏼라 엄청나게 외국어 실력이 향상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늘 프랑스어 텍스트를 끼고 사니, 향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하다.
그래도 내가 학부시절에 동경했던 대학원 생들의 포스는 뭔가 '외국어 만렙' 다운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무것도 그냥 되는 건 없었다.
학부시절에는 어떤 어떤 표현이 있다는 것과 문법 같은 정말이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혔다면 통번역대학원은 각자 가지고 있는 외국어를 '기반'으로 통역, 혹은 번역을 해낼 수 있는 테크닉을 배우는 것이 다르다. 예컨대 노트 테이킹을 하는 방법, 순차통역과 동시통역을 하는 방법, 번역에서 주의해야 할 점등 등 이미 가지고 있는 언어능력을 키우는 것은 자기 몫이요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물론 통역 혹은 번역을 하고 난 뒤 '크리틱'이라고 해서 잘된 부분, 혹은 잘 못 표현된 부분 개선된 부분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더 나은 표현을 제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이럴 땐 이런 표현 딱딱 치환되는 말이나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하면 발화자가 혹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국어, 혹은 프랑스어로 명확하게 전달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통역과 번역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통역을 예로 들어보면, 한 번쯤 학창 시절 중에 말 옮기기 게임 같은 것을 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국어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전달하는 이야기가 세 번째 사람에게 갔을 때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놀랐던 경험이 있다. 우리가 익숙한 모국어로만 이야기를 전달해도 '아'가 '어'가 되기 쉬운데, 외국어는 오죽할까. 그렇기 때문에 통역이라는 행위 자체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단순히 말을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서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 첫 시간부터 졸업 때까지의 주된 골자다.
이를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의 입장, 처지, 어떤 환경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생각보다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이마저도 늘 고심이었던 것이 한국어든 외국어든 발화자가 두서없게 말하는데 이것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마저도 의도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겠다) 어쨌거나 매 시간마다, 교수님들이 첫 시간에 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나만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입시기간 동안에 짧은 시간 동안 허겁지겁 이런저런 표현들을 단시간에 소화시키기가 쉽지 않았는데, 막상 대학원에 들어오니 계속해서 인풋을 하면서 표현력도 높여야 하는 와중에, 테크닉을 소화시켜야 하니 정말이지 깝깝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겠다고 들어왔는데, 막상 이렇게 깝깝하니 또 이건 불평을 할 수도 없고 그냥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말 그냥 하루하루 더 나아지겠거니 도 닦는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더랬다.
2. 한불과 (한국어-불어)지만, 영어를 잘해야 한다.
여러분의 불어가 빛나려면 영어도 잘해야 해요
딱 10년 전이다. 최교수님 수업시간에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첨언으로 해주셨던 말 중에 뇌리에 박혔던 말이 바로 이거다. 영어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누가 모르겠냐마는, 그래도 실컷 공부해서 프랑스어 통번역을 배우려고 들어왔는데 별안간 '영어'가 있어야 프랑스어가 빛난다니.
아무리 나의 우상이었어도 약간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물론 나에게도 영어가 있었기에 처음 외국어에 흥미를 가졌고, 영어 덕에 외고에 가서 프랑스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언어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늘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언어임에는 맞는데,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역시 영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당시 동기 중에는 3 언어 과정 (A:모국어 B:외국어, C:외국어로 총 3개 언어 과정을 칭한다)에 합격해 한영 불 과로 들어와 같이 수업을 듣는 능력자 친구도 있었다. 외대 한영과의 경우 입시 경쟁률이 가장 센 학과인데, 난다 긴다 하는 네이티브, 영어 능력자들도 줄줄이 떨어지는 시험이 바로 그 시험이다. 한불과는 그보다는 경쟁률이 덜 세지만 어쨌거나 한영 불 과로 들어온 친구가 괜스레 더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는 영어도 뭐 틈틈이 같이 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웬걸 막상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정말이지 평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하루가 늘 어떻게 가는 지모를 정도로 과제와 스터디와 개인 공부로 가득 차게 되어 영어공부도 더 열심히 하리라는 다짐은 생각만큼 잘 지켜지진 않았다.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도 EBS 입이트이는 영어로 영어스터디를 하는 동기들을 보고 그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도 놓지는 말자 싶어 그나마 머리 식힌다 생각하고 대학때 우려먹었던 프렌즈를 또 우려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당시에는 교수님이 영어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하는 노파심 섞인 말씀이시려니 치부하기도 했었는데, 그 말씀이 뇌리에 박혀있었는지 실제로 통역사로 일을 시작하고 난 뒤에 지금까지도 매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어떤 점에서 그랬는지 지금 당장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이 부분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다시 한번 따로 다룰 예정이다.
3. 비교하지 말라.
비교할 건 오직 어제의 나 자신뿐
통/번역 대학원의 수업에서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은 바로 '크리틱'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은 '자아비판'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통번역대학원 시절 2년 내내 자아비판, 자기 비하, 자기 연민 등 자아성찰을 수도 없이 했다. 통역 수업의 경우 수업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주로 정해진 주제 안에서 '연사(발화자)'역할을 맡은 사람이 통역할 텍스트를 준비해오고 이를 듣고 순차 (말이 모두 끝난 뒤 노트 테이킹을 보고 통역하는 것), 혹은 동시( 발화자와 동시에 통역하는 통역, 주로 통역 부스에서 이루어진다)로 통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통역이 끝나고 나면, 그 뒤에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통역에 대한 일종의 평가를 하게 된다. 잘된 점과 고쳐야 할 점을 이야기해주고 (대부분 잘된 점과 고쳐야 할 점의 비중이 2:8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교수님이 총평을 해주신다. 이 역시도 크리틱.
그렇게 매번 돌아오는 수업을 듣다 보면, 통역을 하는 것도 크리틱을 하는 것도 괴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전자의 경우, ' 아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지'라는 자아비판의 내면의 소리와 싸워야 하고 크리틱을 할 때도 '나는 저 표현을 생각 못해낼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모양이지' 하는 비교의 내면의 소리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번역의 경우는 교수님이 과제로 미리 주신 텍스트를 각자 정해진 기한안에 번역해서 제출하고, 교수님이 바꾸면 좋을 법한 부분들을 표시해주시고 (빨간펜 선생님처럼 첨삭해주시는 건 아니다) 잘된 번역 혹은 같이 보면 좋은 번역물을 선정해서 같이 토론하면서 수업을 한다. 번역은 한국어로 하나 프랑스어로 하나 똑같이 어렵다. 흔히들 B-A (외국어-> 한국어)가 A-B (한국어-> 외국어)보다는 그래도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어에 대해서는 기준이 더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표현이나 맥락, 뉘앙스, 문장부호 등등 신경 쓸 것도 많고 나중엔 수업시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국어가 더 어렵다'라는 볼멘소리도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쉽게 예를 들면 영어로도 Yellow면 족한 이 말을 우리말은 노랑, 노랭, 누런, 누루 튀튀, 노리끼리 등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고 각자마다의 맛이 다 다르다.
이렇듯 대학원에서 듣는 수업의 방식 자체가 큰 틀에서는 유사한데 매번 이런 자아비판+비교 캄보에 노출되다 보면 분명히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나만 빼고 저만치 가있는데 나 혼자 제자리만 돌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른바 '슬럼프'가 온 것인데, 그렇다고 덮어놓고 도망칠 수도 없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들 모두 우리와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가신 분들이라,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말씀들을 해주시고 공감도 이해도 많이 해주셨다. 그 많고 많은 말들 중에, 통번역 수업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중요한 교훈이 되었던 것이 바로 '비교하지 말라'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말이 쉽지 사람인지라 아예 비교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고 자꾸만 밖으로 가는 시선을 자꾸 내 안으로 데려와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나'를 비교하는 것을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대학원 2년 동안 충분히 수련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도 불쑥불쑥 남과 나를 비교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면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다시 마음을 돌리려고 한다.
4. 통번역대학원 입학도 어렵지만 이 와중에 졸업도 어렵다.
대학원 입학 전에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대학원을 들어가기까지 했는데, 설마 졸업을 안 시켜줄까 하는 안일한 마음도 있었는데, 그 안일한 마음이 두려움으로 바뀌기 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가 입학했던 학년도에는 한불과의 경우 1학년은 같이 수업을 듣고 1년이 지난 2학년이 되기 전에 국제회의 통역과 (동시통역)을 지원할 사람은 따로 시험을 봐야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순차통역 번역반에서 순차통역과 번역 수업을 주로 듣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입학했을 때부터 통역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전공선택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시험을 봐야 하는 것이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더 큰 어려움은 바로 '졸 시'라고 불리는 졸업시험. 우리 윗 기수 선배들이 늘 부스에서 스터디를 하는 모습을 봐온 탓에 그냥 어렵구나 정도로는 생각했는데 무조건 본다고 시험을 다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목별로 일정 점수를 넘겨야 졸업이 되고 통과를 못할 경우 '졸업'이 아닌 '수료자'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추후에 수료자들은 몇 달 뒤 추가 시험을 통해서 재응시를 해서 다시 한번 졸업에 도전할 수 있었고 이마저도 포기하면 그냥 수료자로 남게 된다고 했다. 수료 자건 졸업 자건 2년간의 훈련을 모두 이수했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지만 인하우스 통역사 공고의 경우 '졸업자'라고 자격요건을 한정 지어놓을 경우 지원할 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면 차이겠다.
입학도 나름 힘들게 했는데 이건 들어와 보니 수업도 힘들고 그 와중에 졸업도 힘들다니 어느 하나 쉬운 것 없는 2년을 어떻게 버티나 했는데 하루하루는 느렸지만 일주일은 빨랐고 그렇게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