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에도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한불과 통대생의 언어 학습법

by 김오뚝
Connais-toi toi-même
Socrate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내가 입학했던 2011년도를 기준으로 (글을 쓰면서 이것이 10년 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세월이여).

당시에 한불과 통번역대학원 수업은 1학년 2학년 과정이 각각 달랐다. 당시에 우리 기수는 인원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분반을 했었는데 분반을 했다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1학년 수업 커리큘럼은 같았다. 순차통역과 번역 수업이 각각 A->B (한국어-> 프랑스어), B-A (프랑스어-> 한국어)로 개설되어 있었고 전 학년이 같이 듣는 주제 특강 (외부에서 연사가 와서 강의를 해주시고 2학년 선배들이 통역을 했다), 주어진 주제로 프랑스어로 발표했던 프랑스어 주제 발표 그리고 한국인 학생들을 위한 프랑스어 숙달 수업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2학년에는 동시통역(국제회의 통역반), 순차통역 번역반 이렇게 2개 전공으로 나뉘어서 각각 다른 커리큘럼으로 훈련을 받았다.


1학년 때야 프랑스어 주제 발표와 숙달 수업이 있긴 했지만 부수적인 수업에 좀 더 가까웠고, 원어민 교수님과 함께 B언어에 더 노출되고, 사용량을 늘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숙달 수업에서 번역을 하거나 통역을 하면서 매끄럽지 않다고 느껴졌던 부분을 질문하거나 텍스트나 영화를 보고 토론도 했었다. 유일하게 그나마 긴장이 덜 되는 수업이 바로 이 수업들이었던 것 같다. 크리틱에서 그나마 좀 자유로웠으니까.


이전 글에 한번 언급한 바 있지만 통번역대학원은 더 이상 프랑스어에 관한 언어적 수업이 주가 되는 곳이 아니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실력을 바탕으로 , 이를테면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스킬을 연마하는 곳이지 그 도구 자체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연유로 교수님들도 프랑스어 어휘와 한국어 어휘 등 이른바 가지고 있는 도구를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식을 추천해 주셨다.

그중에 프랑스어에 관한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1. 통으로 외우기


최교수님이 진행하셨던 불->한 통역 수업 중에는 통역 수업과 별도로 늘 시간마다 과제가 주어졌는데, 일주일에 모르는 표현 10-20개 정도씩을 찾아서 예시를 적고 제출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방송을 들으면서 내가 들었는데 몰랐던 표현을 찾아내고, 그 표현이 담긴 부분을 받아 적은 뒤,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까지 적어서 내야 했다. 어찌 보면 간단하지만 시간이며 품이 많이 드는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은 과제였는데, 실제로 표현을 배우는 데 있어서 이렇게 좋은 방법은 또 없는 것 같다.


한국어도 그렇지만 프랑스어는 특히나 '단어'만 안다고 그 '단어'를 활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조치'라는 말을 안다고 하자. 그 '조치'가 어떤 동사와 어울리는지, '조치를 취하다', '조치를 하다', '조치를 내리다'등 한국어로도 이렇게 함께 쓰이는 단어들의 결합이 있다. 따라서 그 결합을 알지 못하면, 어색한 조합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통역이나 번역의 질도 떨어진다.

따라서 하나의 단어, 그것이 명사라면 그 명사가 어떤 동사와 함께 쓰였는지,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 통으로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당시에 동기들도 그렇고 나도 과제를 하다 보면 20개나 되는 표현을 한 방송에서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새로운'표현을 발굴해야 했기 때문에 호흡이 긴 토론 방송을 보기도 하고, 비교적 짤막한 뉴스 등 여러 가지 방송을 돌아가면서 들었다.


2. 5번 듣고 1번 말하기


그리고, 두 번째는 국내파에게 등대와도 같았던 L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방법이었다. 한문단 정도를 통으로 쉬지 않고 5번 듣고 이후에 그 내용을 기억해서 말하거나 써보는 연습인데 혼자서 하기보다는 파트너와 짝을 지어서 한 명이 5-6개 정도로 구성된 문단을 5번 읽어주고, 다른 한 명은 메모 없이 오로지 들으면서 기억했다가 나중에 그 내용을 떠올리면서 그 자리에서 외워보는 연습이었다.


실제로 메모리 스팬도 키울 수 있고, 내가 쓰는 불어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명확하게 체크해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 역시도효과를 많이 봤다. 특히나 관사나 전치사 같이 흘리기 쉬운 부분도 체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파트너가 있을 때는 말하기로 했었고, 혼자 할 때는 내가 직접 1번 읽어서 녹음한 파일을 5번 듣고 써보는 연습을 했었다. 이 방법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어서, 나중에는 그냥 연설문을 하나 정해서 문단씩 쪼개고, 하나를 거의 다 외우는 식으로도 공부했었다. 연설문 같은 경우 비교적 쓰이는 표현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중에 통역을 할 때에도 유용하게 활용했던 표현들이 많았다.



3. 쉐도잉


쉐도잉은 말 그대로 말하는 사람을 그림자처럼 쫓아서 1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바로 따라서 말하는 방식이다. 2학년에 동시통역 전공을 시작한 뒤로 동시통역의 흐름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 쉐도잉도 연습했었다. 사람마다 도움이 됐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연사와 거의 동시에 이야기하면서도 연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동시통역의 특성상, 들으면서 말하는 훈련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방식이다. 나 같은 경우는 통역이나 프랑스어 발화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봤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입을 풀어야 할 때 쉐도잉을 조금 하면 예열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종종 이용했던 방법이다.



4. 좋아하는 글 읽기


발군의 통역실력을 갖추고 계신 P 교수님은 늘 손에 읽을거리를 가지고 다니셨다. 주로 프랑스 시사 주간지였는데 가끔 수업시간에 읽으셨던 텍스트중 하나를 발췌하셔서 시역(눈으로 읽으면서 통역하는 기법)을 시키시기도 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영화 컨테이전(Contagion) 기사였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더 새록새록하다.


교수님은 워낙 실력이 출중하신 분이셔서 더 이상 프랑스어를 노력하면서까지 가까이하지 않으셔도 되셨을 것 같은데, '감'을 유지하기 위해 늘 차에서 팟캐스트를 들으시고 신문이랑 주간지는 물론이요 프랑스어 추리소설도 즐겨보신다고 하셨다. 책은 논픽션 보다는 소설을 위주로 보신다고 하셨는데, 내용에 빠져들기에 추리소설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하셔서 그 길로 나도 스릴러 작가를 수소문(?)해서 그때부터 관심 있게 책을 읽었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즐기고 싶은 마음에 졸업 후에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아침에는 몇 페이지씩 원서를 꼭 읽곤 했다.


크라센.jpg 크라센 강연 유튜브 영상 캡처본

나중에 보니 이게 '읽기 혁명'의 저자 크라센이 이야기한 언어 습득 법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다는 사실에 짐짓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에 빠져들어 책을 읽게 되면 설사 모르는 단어나 표현을 만나더라도 '맥락'으로 기억을 하게 되어 오히려 자잘하게 사전을 계속 찾아보기보다는 나중에 정말 중요한데 모르겠는 부분만 찾고 넘어가면 그것도 더 잘 기억에 남았다.


일을 하면서도 계약조항에, 정유니 가스개발이니 늘 딱딱한 자료들만 보다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읽으니 더 집중도 잘되고, 쉬면서도 공부가 되는 것 같은 뿌듯함에 출근길에도 원서를 늘 가지고 다녔다.

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좋은 점은,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실제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또 좋다. 물론 스토리를 위주로 책을 읽었지만, 이따금씩 등장인물들이 '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다' 같은 표현을 쓸 때면 메모해 두었다가 한 번씩 써먹을 기회를 보고 꼭 한 번씩 써봤더랬다.


나열한 방법들은 나에게 주로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이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비법이나 방법들이 있겠지만, 저마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뿐, 어떤 것이 가장 좋고 효율적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통/번역을 위한 도구를 연마하기 위한 작업들이 었기 때문에 이외에 통/번역 훈련과는 별개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어에도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 메타인지: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생각하여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며 자신의 학습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지능과 관련된 인식/네이버국어사전


외국어는 정말 얄미울 정도로 왕도가 없다. 이렇게 귀로, 입으로, 눈으로 표현을 박박 긁어 모아도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것이 표현 채집이었다. 그렇게 모아서 정리를 하고 나면 엑셀시트가 금새 몇페이지는 넘어가 있으니 분명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가물가물 하면서 아는 것 같은데 제대로 아는 것 같지도 않은 그 찝찝한 기분이란... 책을 샀다고 읽은게 되는게 아닌것처럼 내가 봐뒀다고 모아둔 표현이 바로 다 내것이 되는것이 아니었다.


흔히들 아는 만큼 들린다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많이 보고 익숙해 져도 내가 습득해서 진짜로 아는 것만 들리기 때문에, 더 많이 들리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을 늘리는 일이 가장 바람직한 수단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표현이 무슨 뜻이구나 수동적으로 알아채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그 표현을 나도 통역 혹은 번역시에 내가 꺼내서 능동적으로 쓸 수 있어야 진짜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인이라고 한국어가 수려할 수만은 없고, 프랑스인이라고 해도 프랑스어에 약할 수 있다. 내가 어떤 부분에 약한지, 강한지 또 어떤 부분이 약한지 강한지 자신을 확실하게 파악한 뒤, 강한 부분을 더 강화시키고 약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했다. 통번역대학원 2년은 어찌 보면 이렇게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해 나가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는 과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비록 프랑스어와의 싸움(?), 그 과정이 느리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내가 맞이한 수많은 '희열'의 순간을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 그 '싸움' 덕분이었던 지라 앞으로도 프랑스어와의 지피지기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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