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e est pleine de surprises
La vie est pleine de surprises.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통번역대학원에서 양성되는 통/번역사는 크게 인하우스 (In house-기업에 고용되어 사내에서 일하는 직무) 통/번역사와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진로가 나뉘게 된다.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최정화 교수님 첫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신 뒤 교수님은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써서 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졸업 후 진로에 관한 희망사항도 함께 적어달라고 하셨다.
'진로희망 : 인하우스 통역사 (계약직)'
"인하우스면 인하우스지. 계약직은 또 왜 적은 거예요?"
두 번째 수업시간, 걷어가신 자기소개를 한 명씩 다시 돌려주시면서 교수님이 내게 물으셨다.
한창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알제리 내 한국기업이 건설 붐이 불어서 통번역사 수요가 많다고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카더라'에 따르면, 그렇게 통역사로 일하면 건설분야인지라 연봉도 꽤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하게 될 경우 보통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이 되어 일을 하게 되어 '계약직'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적었다. 단순히 급여 차이였다면 프리랜서 통역사라고 적어도 됐었는데 나는 굳이 '인하우스'라고 적고는 계약직이라고 적었다. 당시에는 우선 인하우스로 최소 5년 정도는 경력을 쌓고, 이후에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나름대로 계산을 한 후에 적은 대답이었다.
프리랜서는 로망
인하우스는 현실
어쨌거나 통역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원까지 들어왔고, 졸업 후에는 내가 봐왔던 나의 우상의 모습처럼 국제무대를 누비면서 멋진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로망처럼 그려왔다. 정상회담 통역도 하고, 중요한 국제행사에서 활약하고, 유명인사를 인터뷰하는 자리에 통역으로 이름을 떨치고 대략 그런 모습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려면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기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닌 프리랜서로 일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강의를 해주시는 교수님들 중에 프리랜서 통역사로 내가 예전부터 꿈꿔왔던 그런 삶을 실제로 살고 계시는 교수님들도 계셨고, 인하우스로 프랑스어 관련 기관에 재직을 하시면서 주말에 강의를 해주시는 인하우스 통번역사 교수님들도 계셨다. 그리고 교수님들을 통해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는 선배들, 인하우스로 일을 하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왕왕 들으면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곤 했다.
"일이 없는 시간을 혼자 잘 견디고 보낼 수 있는가가 중요해요."
지금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교수님이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이야기해주시면서 강조해주셨던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그리고 2년을 보내면서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예전부터도 그렇기는 했지만 나는 '소속감'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람이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통 대생'이라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는 일'에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못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과외나 학원 수업 같은 일을 하면서도 힘든 와중에서도 보람이 더 컸던 까닭은 내가 어딘가에 '쓰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쨌거나 내가 선택해서 벌인 일(?)이니 어느 정도 일정의 예측도 가능하니 그 점이 차라리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더 좋았다. 물론 일이 몰려들어서 너도나도 찾는 통역사가 되면 정말 더할 나위 없겠지마는 졸업 후 처음 사회로 진출하는 통역사에게 그럴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많지 않다.
혹자들은 통역사가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어 좋은 직업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내가 관찰해온 나는 '프리랜서'의 생활을 가히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로망을 그냥 저버리긴 아쉬우니, 얼마간 인하우스 생활을 하면 프리랜서지만 인하우스 비슷한 일정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로망이냐 현실이냐, 어쨌든 나는 인하우스 통번역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졸업 즈음에는 틈날 때마다 취업 게시판을 들여다 보고, '프랑스어'를 키워드로 각종 취업사이트를 드나들었다.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통/번역시장의 파이는 90%가 영어고 나머지가 영어 이외의 언어라고 할 만큼 영어의 파이는 생각보다 크고 프랑스어의 파이는 생각보다도 더 작다. 우선 '프랑스어' 자체의 파이가 작은데 그곳에서 통역사 공고를 찾으려니, 프랑스권 대사관이나 국회, 외교부 같은 기관이었는데 내부 채용을 진행하거나 혹은 전임자가 사직하지 않는 한 공고는 쉽게 나지 않았고, 아니면 사기업은 내가 가려고 했던 "계약직"통역사를 뽑는 건설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우리 기수보다 2년 높은 선배들 중에 이미 통역사는 아니지만 대기업에 들어간 분이 2명이나 있다고 하니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알아보던 차에 운 좋게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업 중 하나에 공고가 났다. 그리고 또 정말 운이 좋게도 그 기업에 대졸 공채로 입사했던 대학교 동창이 있었다. 같은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친구라서 그 친구 역시 프랑스어를 쓰는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고, 그 부서에서 주로 담당하는 프로젝트가 알제리 관련 프로젝트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내가 운이 정말로 좋았는지, 그 해에는 인하우스 '정규직 통역사'를 뽑고 있었다.
공고를 보는 순간, 나는 여기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우리 기수 중에는 인하우스에 뜻을 품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통역과에서는 나와 다른 G 언니, 그리고 B 오빠만 인하우스 바라기였다. 다행히 우리 기수 내 경쟁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또 같은 시기에 다른 기업에서도 정규직으로 불어권 통역사 겸 직원을 뽑는 공고가 나왔기 때문에 가능성은 더 늘어났다. 게다가 해당 공고 요강이 통번역대학원 '졸업' 혹은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수 추천제였기 때문에, 교수님 추천서가 꼭 필요했다. 다행히 본교 출신 장학 조교로 주임교수님이셨던 최교수님 조교로도 일정기간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도 나를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교수께 추천서를 요청드리고 추천서를 받는 과정이 그래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면접날, 글로벌 프로젝트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에서 영어와 더불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등 프로젝트를 수행 시 필요한 통번역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통역 파트를 창설하게 되었다는 인사담당자의 설명을 들은 뒤, 삼삼오오 면접장으로 들어가 면접을 봤다.
그리고 졸업시험을 보고 2년 동안 애쓴 나를 위해 예약해둔 파리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합격 소식을 들었다.
덕분에 갈 곳이 정해진 마음 편한 취뽀 생신분으로 파리에서 새해까지 맞이하고 돌아온 나는 입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 사이 또 1달 정도 뜨는 시간을 참지 못해 (?) 2주 정도 일정으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야 그룹 연수에 들어갔다. 갔다 오면 피까지 파랗게 변해온다는 그 '그룹 연수'라는 것에 다녀온 뒤 그 새 친해진 입사동기들과 가까워질 무렵, 회사로 출근해 다시 한 달가량의 '사내 연수'까지 마치고 '사원/통역사'로 정식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당초 내가 계획했던 5년을 훌쩍 넘긴, 6년 하고도 6개월의 기간을 사내 인하우스 통역사이자 직원으로 지내게 된다.
계약직 인하우스로 시작했던 꿈이, 정규직 인하우스로 실현되고, 추후에 프리랜서 통역사로 멋지게 세상을 누비겠다던 다짐이 흐려지더니, 그렇게 되고 싶었던 통역사가 되고 나니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삶은 놀라운일의 연속이라더니, 정말 예상대로 가는듯 하다가도 한번씩 새로운 일들이 생겨난다.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또 성장시키고, 단련시키고, 때로는 숨 막히게도 했던, 이제는 경험의 한편에 자리 잡은 그 기억들을 앞으로 조금씩 꺼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