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오뚝 Aug 01. 2021

사하라 사막에 갔습니다.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의 열렸다


Une langue vous place dans un couloir pour la vie.
Deux langues vous ouvrent toutes les portes le long du chemin
 - Frank Smith

한 언어는 삶을 위한 통로에 서게 해 주고,
두 언어는 그 길에 놓인 모든 문을 열어 준다 -Frank Smith



짧지만 강렬했던 1박 2일의 알제리 출장은 그래도 나에게 좋은 기억만을 남겨줬다. 날씨도 좋았고, 사장님을 수행해야 했기에 일반사원이 머물 수 없었던 좋은 호텔에도 묵을 수 있었다. 당시 회사에는 출장자는 출장 국가에 따라 직급에 따라 호텔 경비가 지정되어 있었기에 사장님 수행할 때는 호텔비 초과 사유서를 미리 제출해서 결재를 받고 출장을 갔다. 무엇보다 알제리의 수도였고, 주변의 풍경은 흡사 우리나라 70년대와 비슷하다고 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비쳤었으니 마치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잠시 잠깐 출연한 느낌이었달까.


 물론, 치안에 위험이 있어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호텔이나 공항, 지점에서 만난 현지인들도 모두 친절했다. 사실, 워낙에 짧은 일정이었으니 호텔, 행사장소, 지점 이렇게만 찍고 오느라 다른 곳을 갈 수도 없는 조건이었으니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계약식 이후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당시 회사에는 크게 설계, 조달, 공사본부로 크게 나뉘어 있었고,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각 본부에서 담당자들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팀을 이루어서 근무하는 시스템이었다. 통역 파트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지원하다가 나도 다른 프로젝트 팀원들처럼 사내 프로젝트로 파견 근무가 시작되었다.

 

공사기간이 총 3년 정도로 정유 프로젝트에 비하면 공정이 비교적 간단하다고는 했지만, 가스플랜트가 세워져야 하는 곳은 사막 한가운데였다.  회사는 이전에 알제리에서 이미 프로젝트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늘 아래 같은 프로젝트는 없다고 이전과는 다른 사막 한가운데 척박한 환경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기에 처음부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사이트라고 불리는 현장에 진입할 때마다 알제리 헌병대에 지원을 요청해서 늘 에스코트를 받아야 했고, 그 에스코트 허가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진입 체도 여러 번 어려움을 겪어 회사차원에서 해당 부처와 대사관등 여러 번 공문을 보냈었다.


프로젝트 기간 중 약 1년간은 사업주(발주처, 고객사, 클라이언트라고도 한다.) 측에서 20여 명 정도 한국에 상주하면서 설계 및 계약 관련 사항을 협의해가는 기간이었다. 동 기간 동안, 알제리 현장에서는 계측도 이루어지고 초반 토지공사, 지질 공사 등 초기 작업들이 진행되었다.


프로젝트가 전반적으로 영어로 진행되기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플랜트를 지어서 납기 할 때 필요한 문서 등이 프랑스어로 전달되어야 하고, 프로젝트 기간 내내 사업주에게서 받는 레터 (공식서한)는 모두 프랑스어였던 지라 계약서 상에서도 상주하는 통/번역사가 계약 요건 중에 하나로 명시되어있었다.

이전 정유 프로젝트는 규모가 훨씬 크기도 했었고, 기본적으로 5-6명 정도의 통역사가 함께 근무했다고 하니

아무리 그에 비해 규모가 작다고 해도 나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프로젝트에서 내가 파견되기 전에 자체적으로 번역사를 한분 뽑아 주셨고, 그렇게 처음에는 두 명이 함께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하나 둘 사업주가 도착하고,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무실 반대편에는 사업주 사무실이 꾸려졌다.

계약서에 사무실 크기, 모양, 자재 등 사양들이 상세히 적혀있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사무실을 마련하고, 각종 집기, 탕비실 등 여러 가지가 마련되었다.


흡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한국 한쪽은 외국 오피스로 나뉘게 된 셈이다. 비단 우리 프로젝트 말고도 다른 프로젝트도 사업주가 상주하는 경우, 이렇게  벽을 사이에 두고 오피스를 나누거나 혹은 다른 건물에 따로 팀을 꾸려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초반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무렵, 또다시 출장이 잡혔다.

토목, 건축 수석 엔지니어 (부장급)분들과 함께 현장에 방문해야 하는 출장이었다. 플랜트 프로젝트의 경우 공사 시작 전반에 걸쳐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인허가 절차가 많은 편이다. 인허가를 담당하는 매니저도 따로 있었는데, 어쨌든 초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반을 다지고 구조물을 올리기 전에 관련 사항에 대해 설계가 해당 국가의 인허가 요건을 충족시키는지, 사용하는 자재가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등등 서류 및 조사 결과를 제출해서 허가를 따내는 일이었고, 인허가 기관에 도면 및 해당 문서들을 제출해서 승인을 받는 일까지 컨트랙터(도급자)인 우리 측이 해야 하는 일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공사기간을 준수하는 일이다. 공사기간 준수가 곧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적으로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에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투입되는 인력 등 비용도 계속해서 늘어나기 때문에 공기 단축이 하나의 주요 과제가 될 만큼 중요한 이슈다.

이런 상황에서 인허가는, 이전 프로젝트의 경험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변수중 하나라고 했다.

승인 기간이 길어지거나, 제출한 서류나 요청을 거절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다시 보완작업을 해서 인허가를 받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따라서 첫 단추를 끼는 작업이 중요했다.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출장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너무 다르다. 내가 갔던 지역은 알제리에서도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가까운 곳이었고, 프로젝트가 수행되는 현장까지 아직 길이 나지 않아 그 근처에서 미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수도인 알제와는 또 다른 치안 문제로 해당 지역은 군인의 에스코트를 받지 않으면 통행 자체가 불가하고, 공항에서 내려서부터 해당 지역에 다다르기까지 계속해서 차량으로 에스코트를 받아야 했다. 당시에 한창 알제리 현장에서 피랍된 일본인이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기사가 한 번씩 올라오던 시기여서 걱정도 됐지만 어쨌거나 가야 하는 출장이니 목숨을 걸고(?) 가보기로 했다.


역시나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에, 출장이 잡히고 미팅을 하게 될 인허가 기관 관련 정보부터 찾아봤다. 당장 미팅을 잡기 위해서 컨택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어로 소통을 해야 했기에 미팅 어레인지부터 전화 통화까지 해서 미팅을 잡았다. 다행히 현지에 먼저 코디네이터로 나가셔서 현장 세팅을 해주시는 현장 매니저 분들이 계셨어서 그래도 출장준비가 조금은 수월했다.


출장일이 다가오면서 역시나 나의 주특기인 각종 용어집을 만들고, 토목, 건축 수석님과 미팅을 했다. 본인들의 전문분야 시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저 '내가 하는 말만 전달해 주면 된다, 어려운 것 없다'라고 해주셨는데 그 내가 하는 말이 예를 들면, 지진 강도가 얼마 정도 되니까 여기에는 어떤 토질을 쓰고, 이런 슬라브를 써서 건축을 하고 뭐 이런 식으로 전문 용어 사이에 조사가 껴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한국어로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구조물과 설계도에 흡사 까막눈이 되었지만 하나씩 하나씩 계속 물어가면서 어찌어찌 준비했다.



이스탄불 공항, 이때만 해도 내가 여기를 몇 번을 더 오리라는 걸 모르고 찍어둔 사진

처음 출장은 그래도 파리를 경유했었는데 이번에는 터키를 경유해서 갔다. 이유는 해당 비행 편이 쌌다. 운이 좋게 경유시간이 길 경우에는 잠깐 시내도 나갔다 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4시간 정도로 그저 공항에서 대기를 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용어를 들여다봤다. 틈틈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은 수석님들을 괴롭혀 가면서 메모했다.


그렇게 경유를 해서 도착하니 이미 한밤중이었다. 호객행위를 하는 알제리 민간 택시(?)를 하나 잡아타서 호텔로 들어갔다. 그래도 공항 근처에는 나쁘지 않은 비즈니스 호텔 체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현장 근처에 그나마 가까운 지역으로 간다는 국내선을 타러 갔다.


국내선이라고 해서 제주도 가는 국내선을 생각하면 정말 경기도 오산이다. 프로젝트 경력이 워낙 많으셔서 출장이 거의 일상화되신 수석님들은 수속을 마치고 난 뒤, 나에게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느냐며  벌써부터 너털웃음을 짓는다.


나:??? 프로펠러요??


프로펠러 비행기가 뭐지.. 하던 나에게 의구심을 더욱더 증폭시킨 건 내 손에 쥐어진 종이 티켓. 그냥 종이 티켓이 아니라 꼬꼬마 시절에 보았던 갱지에 볼펜으로 좌석이 표시되어있었다.


그리고 기내에 들어섰는데, 내 자리에 이미 누가 앉아있다(?).

놀라는 나에게 수석님들은 원래 여기는 버스처럼 선착순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우리도 전혀 다른 번호의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다 같이 앉을 수는 없어 내 옆에는 갓 돌정도 지났을 아기와 엄마가 함께 탔다. 귓전을 때리는 프로펠러의 소음과 워낙에 고소공포증도 좀 있었던 지라 긴장하는 나에게 그래도 꼬물거리는 아기의 손가락, 귀여운 미소가 있어 그 시간이 그나마 견딜만했던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워낙 가까워서 그런가 라고 하기에는 2시간 반 정도를 탔다.

생전 처음으로 봤던 사막 풍경

파란 하늘과 녹음이 어우러진 하늘 위 풍경이 어느새 짙은 갈색으로 변하더니 붉은빛 모래사막으로 바뀌어있었다. 섭씨 50도 정도라니, 그나마 습기가 없어서 이 정도인가 싶을 만큼 작열하는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자그마한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작은 게이트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뜨거웠던 바깥 열기를 잠시나마 식힐까 싶어 들어온 공항 안은 작은 지방공항이라 그런지 여전한 열기 속에 컨베이어 벨트 한 대만 유유히 돌아가고 있었다. 보통 짐을 검사한다는데 (운이 나쁘면 짐을 실제로 열어서 뒤져본다고도 했다.) 생각보다 빨리 나온 짐을 가지고 혹시나 내 가방이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다행히 잠금장치 그대로 있었다.


일행을 기다리면서 공항 안팎을 관찰하던 나는 새삼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깥 열기만큼이라 생경한 눈빛들이 어느새 나로 향해 있었다. 동양인들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그곳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그저 힐끔 쳐다보는 눈짓이 아니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응시 수준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던 차 드디어 모든 일행의 짐이 나오고 밖에 세워진 에스코트 차량으로 이동했다.


안전벨트를 맸는데도 이쪽저쪽 덜컹거리는 지프차 안에서, 라디오 속에서는 아랍어인지 베르베르 어인지 알 수 없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붉은빛 사막이며, 붉은 벽돌 건물이며 이국적인 풍경이 내내 눈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어를 하니 내가 사하라 사막에도 와보는구나 만감이 교차하던 찰나 호텔에 도착했다.

 


높은 성벽 안에 한 채씩 독채로 이루어진 호텔이었다. 에스코트 없이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이곳에서 열흘정도 묵었다.


오며가며 늘 텅비어있던 수영장( 한번도 이용안했다) 과 허허벌판 같던 숙소앞


이전 12화 1박 2일로 떠난 알제리, 날카로운 첫 출장의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