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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Aug 05. 2021

프랑스어로 1인 3역을 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 갔습니다제2부


 Apprendre une autre langue est un peu comme devenir quelqu’un d’autre  – Haruki Murakami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https://brunch.co.kr/@otoutkim/67


꼬박 하루를 더 지나고 나서야 도착한 호텔은 생각했던 비즈니스호텔과는 조금 달랐다. 

키도 크고 머리숱(?)도 풍성하던 야자수들이 즐비해 있고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식당을 지나면 코너 한쪽에 적막한 수영장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내려오면 널따란 부지에 드문드문 한 동씩 방갈로형 호텔방이 나뉘어 있었다. 처음 배정받았던 방은 무리에서 외따로 좀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방에서 나와 미팅 장소나 식당까지 가려면 다시 온 길을 구비구비 되돌아갔다가 돌아와야 했는데, 해가지고 주위가 어둑해지니 아무리 호텔 안이어도 혼자 외따로 있는 것이 좀 불안하기도 하고 무서웠다. 다음날 바로 방을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명색이 호텔인데 너무 유난이다라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사방이 적막한 데다 창문도 잠기지가 않았으니 매번 선잠을 잤다. 그러다 한 번씩 창밖으로 까만 그림자가 드리울 때면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호텔 직원이었다.  워낙 조용하고 적막한 곳에 혼자 있다 보니 그래도 매번 그렇게 놀라는 내가 나도 신기했다. 

그나마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바깥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도록 가동되는 에어컨과, 쏟아지는 태양빛을 차단해주는 암막커튼이 있어 잠시 바깥세상과는 차단되는 기분이 들다가도 전기도 한 번씩 끊기고, 와이파이도 한 번씩 끊기고, 그 와중에 기도시간에 맞추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새삼스레 이 모든 환경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있던 내가,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니.  그러다가도  알아들을 수 없는 알제리 방송과 음악 사이에서 TV에서 프랑스 방송이 나오면 KBS라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그램 패턴을 찾아서 꼭 챙겨보기도 했다 (농촌 총각의 배우자 찾는 방송 혹은 스타일리스트의 메이크 오버 방송). 


나에게는 외국어인 프랑스어였지만, 생경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그 외국어가 이렇게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참 신기했다. 

  

내가 묵었던 호텔방. 이 후로는 시내에 사무실 겸 숙소로 빌라를 빌리게 되어 생겨 그곳으로 다녔는데 나중엔 이 호텔에 정말 너무 돌아오고 싶어 졌다지.


외국인은 헌병대 에스코트 없이 한 발자국도 이동할 수 없는 곳으로 출장을 가다 보니, 출장 일정은 에스코트 일정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헌병대에 아무 때고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전에 정해진 날만 신청할 수 있고 그 마저도 허가가 필요했다. 따라서 정해진 일정 안에 필요한 일들을 모두 매듭짓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출장의 목적은 해당 지역의 T인허가 기관의 남부지점과의 미팅으로, 해당 기관은 수도인 알제에 본사를 두고 있고 알제리 각 지역마다 지점이 분리되어 있어 본사의 지침에 따라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감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해당 기관이 이전 프로젝트 수행 시 유난히 애를 먹었던 단계로 명성이 자자해서 되도록 사전에 세세한 사항까지 협의를 이루 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지만, 공사기간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인데, 기관의 승인이 지체되거나 혹은 리젝(거부)될 경우 도미노처럼 다른 공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니 무엇보다 요구사항에 정확히 맞추어 도면, 문서, 현장을 준비해서 제때에 승인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비용이 늘어나게 되니, 공사기간은 곧 수익과도 직결되는 일이라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전 준비도 많이 했다. 프로젝트에 연관된 법령 중, 해당 기관에서 필요한 법령도 미리 찾아서 번역해두고, 토목, 건축, 공사 그리고 계약 관련 담당자분이 각기 의논할 안건들을 최대한 미리 파악해 두었다. 

해당사항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계약사항을 협의해서 T기관 남부지점과 계약도 체결해야 했기에, 사실상 한 번의 출장으로 모든 것을 다 커버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첫 단추이고, 첫인상을 좋게 심어주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버벅거리지 않도록 이전 프로젝트 자료도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정리해둔 용어집을 들여다봤다.


하늘 아래 같은 프로젝트는 없다.


드디어, 미팅 첫날, 이동에 제약이 많은 우리를 위해 기관에서 직접 호텔로 방문했다. 총 5일간의 미팅도 호텔 내에서 이뤄졌다. 수화기 너머로만 인사하던 T기관의 B 기관장님을 비롯해 실무진까지 총 5명이 방문했는데, 그중에 히잡을 두른 여자분도 함께 엔지니어로 동행했다. 우리 측은 토목, 건축, 공정 및 인허가 담당자분에 미리 현장에 와 계셨던 담당자에 나까지 총 8명이 참석했다. 식당 한편에 회의실로 마련한 커다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미리 요청한 빔 프로젝터가 하얀색 식당 벽을 비추면서 먼저 소개가 오고 갔다. 

출장 전에, 이전에 알제리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해 보셨던 수석님들이 그래도 해당 기관 실무진들은 영어를 어느 정도 했었으니, 기술적인 건 본인들이 직접 말씀하실 거라 크게 어려울 건 없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 계약 관련된 사항이나 의사소통이 안될 때만 통역을 해주면 될 거라고 하셨는데, 하늘 아래 같은 프로젝트는 없다고 같은 기관이라도 지역도, 사람들도 달랐다. 

결과적으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실무진은  1명 밖에는 없었고, 우리 쪽 기준 간단한 기술용어도 기관 측은 불어로만 알고 있을 뿐 영어로 소통이 불가했다. 당연히 모든 회의는 통역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 되었다. 


소규모 회의 통역 같은 경우에는 보통 순차 통역 (발화자가 먼저 발화를 끝내면 뒤이어 통역이 진행되는 형태)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원례 한 가지 언어로 진행되는 회의보다 시간이 더 배로 걸리게 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회의를 진행하는 분이 계시고, 통역사는 통역을 맡아서 하고,  해당 내용에 회의록이 필요할 시 작성은 같이 배석한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특수했다. 


나는 진행자였고, 통역사였고, 실무자였다.


우선 회의 자체를 프랑스어로 진행해야 하니, 어느 순간 내가 회의 진행을 맡아서 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진행자가 되었다.  총 10명의 참석자가 각 기 말을 시작하면 중간에 발언권도 제재(?) 해야 했다. 

통역사의 역할로 참석했으니 당연히 통역사의 역할도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하고 있으니 내 통역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발언을 시작하는가 하면 동시에 여러 명이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통역하는 동안 서로 다른 말씀을 나누시는 통에 프랑스어로 또 한국어로 계속해서 '잠시만요'를 외치고 내용을 전달하고는 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이지 진이 빠지는데 다행히 1시간 정도마다 1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가졌다. 


사실 쉬는 시간도 온전히 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잠깐이나마 아무 말 않고 목을 쉬고 싶은데 나에게 오셔서 꼭 기관 사람들이 혹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래 듣고(?) 알려달라고 요청을 하시는 분이 있었다. 회의 내내 집중해서 쉬지 않고 양쪽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면 지쳐있기도 하거니와 그 기관 사람들도 내가 프랑스어를 하니 그 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조용히 속삭이거나 아랍어를 써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데도 '그래도 혹시 모르니'라며 말씀해오시면 정말 난감했다. 차라리 외부에서 차출된 통역사로 일했으면 불가한 일에 대해서는 더 똑 부러지게(?) 대항했을 수도 있지만,  통역사지만 같은 회사의 사 원급인 내가 부장급 차장급 되는 분들을 모시고 나선 출장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반항(?)은 통역을 끊고 말을 시작하실 때 가하는 제재(?)밖에는 없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금 찾아온 휴식시간에 잠깐 또 쉴까 싶으면 현지 기관 담당자가 말을 걸어오니, 또 같이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도 이런 대화는 앞으로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동안 자주 만나게 될 분과 안면도 트고

우리 회사에나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도 심어줄 수 있겠다 싶어서 또 열심히 참여했다. 뜻밖에도 한국인과 결혼한 조카가 있다는 B 기관장님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기관 No.2, W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시 또 회의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 그나마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또 한차례 폭풍처럼 회의가 진행되고 그날 안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회의가 종료되었다.


드디어 잘 끝나는가 싶었다가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회의록이었다. 프랑스어로 작성되어야 하니 자연스레 회의록 작성도 내가 맡아서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문제는 기관 측 참석자들이 볼 수 있도록 빔 프로젝터에 화면을 띄워 자판을 치면서 프랑스어로 회의록 작성을 하면서 동시에 내가 어떤 내용을 작성하고 있는지 한국어로 우리 측 담당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동료 통역사에게 여담을 전하면서 '동시 통번역'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왔다고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했는데,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있었던 알제리 출장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한 '동시 통번역'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내겐 새로운 장르가 아닌 의례적인 행위가 되어버릴 만큼 자연스러워지고 1인 3역 역시 나에게도 익숙한 옷이 되었다. 


이른바 '동시 통번역'이 끝나면, 또다시 번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성한 회의록을 최종적으로 사인해서 공식적으로 회의록을 배포하기 전에, 출장자분들과 본사에 있는 담당자들에게도 내용을 전달해야 했기에 영어 번역을 했다. 그렇게 숙소에 돌아와서도 회의록을 정리하고, 다음날 있을 회의를 준비하다 보면 여기가 사막인지 어딘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전에 다시 한번 기관과 원문 확인을 하고 사인을 해서 최종본을 만들고 최종본에 따른 번역본 최종본도 함께 만들어 본사에 배포하는 것까지가 나의 역할이었다. 

서로 간 합의한 내용이 기록되는 회의록이자 추후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논쟁에 대한 증빙이 되는 자료이기 때문에 회의 내용을 압축한 출장 보고서 격인 회의록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중요했다. 


그렇게 몇 번의 동시 통번역(?)을 거치고 척박한 환경에 시차가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 즈음 다시 귀국을 해서 거진 짧으면 1달, 많으면 3개월 간격으로 한 번씩 비슷한 일정으로 출장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다닐 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생겨났고, 혹시라도 알제로 출장이 잡히면 그나마 호텔 1층에서 커피라도 마실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된다는 생각에 더 감사하며(?) 다녔던 것 같다. 


알제 호텔에서의 커피와 탄산수 한 잔의 여유


그전까지는 사실, 통번역사는 단순히 통번역만 맡아서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한 조직의 구성원이자 통역사로 그리고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일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며칠간은 꼭 앓아누우기 일쑤여서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지나고 보니, 프로젝트 초기부터 지속성을 가지고 업무를 하다 보니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얻을 수 없는 살아있는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소통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통역사의 역할을 온전히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보람도 컸다. 통역사이자, 중재자로, 실무 담당자로, 때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때그때 다른 역할을 해내는 일도 재미있었다.


프랑스어를 했을 뿐인데, 사하라 사막을 이렇게나 자주 가게 될 줄, 또 1인 3역을 해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언어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이 되게 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와닿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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