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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Aug 11. 2021

번역에 반역하던 통역사의 최후

통역과번역 사이

Q. 다음 문장에서 잘못된 부분을 고르시오. 

 

‘한글은 참 아름다운 말이다’, 

한국어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문제 

 

계약서 수정본 좀 통역해주세요’

어려운 거 없어요. 제가 하는 말만 번역해주시면 돼요’


 얼핏 보면 크게 문제없이 보이는 이 네 가지의 문장은 사실상 말과 글을 혼동한 비슷한 사례다. 

첫째로, 한국어는 한민족이 쓰는 ‘말’인 데 비해 ‘한글’은 한민족이 쓰는 말을 글자로 표기하는 ‘문자’의 이름이니 각각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통역은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 주는 행위나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고, 번역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역시 통역과 번역에게 원래 자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약은 약사에게, 문서는 번역사에게, (회의) 통역은 통역사에게

 

6년 반 남짓 대기업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일을 하는 내내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게 있었으니 바로 이 두 단어의 혼용이었다. 통역과 번역. 통번역대학원을 갓 졸업해 통역이 어떤 일 인지 번역이 어떤 일인지 각각의 일이 결이 얼마나 다른 지 온몸으로 체감해온 2년의 세월이 머리를 스치면서, 나에게는 너무도 선명한 사실이 뿌옇게 흐려지는 현실 속에서 나는 곧 잘 뜨겁게 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이들에게 ‘통역과 번역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알려야 하겠다’는 알 수 없는 사명감. 그렇다고 대놓고 ‘통역이 아니라 번역 말씀이시죠?’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저 무례하지 않는 선에서 내 쪽에서 교정한 문장으로 답변을 했다. 이를테면 문서를 ‘통역’ 해달라는 이에게는, 요청하신 문서를 ‘번역’해서 드리겠다고 하고, 회의에서 하는 말을 ‘번역’ 해 달라는 이야기는 ‘통역’ 지원을 해드리겠다고 교정해서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뜨거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역되는 회의나, 통역되는 문서는 쉬이 줄어들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통역과 번역에 민감했던 까닭은 그 둘이 언어를 매개로 하지만 실제로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 두 가지 행위라는 것 이외에 내가 통역을 선호하는 통역형 인간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통역은 실시간으로 (물론 순차와 동시의 시간차는 있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 혹은 온라인 상에서 발화자와 함께 청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는 점과 그리고, 현장에서 필요한 순발력과 즉흥성이 더 요구된다는 점이 번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에는 화상회의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환경은 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실시간으로 말로 전달되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번역물처럼 기록이 남거나 자취가 남는 성과물이 존재하지는 않는다.(*통역 내용 역시 저작권이 있다. 따로 녹음하거나 촬영할 때에는 사전에 반드시 통역사에 그 사실을 고지해야 하고 추가 비용이 더 부과된다.) 

 

번역의 경우는 실제로 글을 쓴 작가와 글을 읽는 독자가 함께 있는 공간이 아닌, 글로서 작가와 독자를 모두 만난다는 점이 통역과 가장 큰 차이점이겠다. 무엇보다 번역물이 결과물로 나와 독자나 고객의 손에 들어가게 되니, 번역사의 흔적이 남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면 차이다. 번역도 크게  문학 번역과 기술번역으로 나뉜다. 영상 번역과 같이 번역자의 이름이 크레디트에 올라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계약서나 시방서, 기업의 내부 자료와 같은 기술 문서 같은 경우는 대부분 번역자의 이름이 남거나 하는 일은 드물지만, 어쨌거나 누가 번역을 했는지 알 수 있고, 그 결과물이 계속해서 남아있다는 점이, 그리고 번역자를 통해 산출된 결과물이 물리적으로 남는다는 점이 통역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나는 처음부터 '통역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통번역 대학원에 들어갔다. 

최정화 교수님 같이 국제무대를 누비는 통역사가 되고 싶어 들어간 곳에서 물론 나는 통역 수업만을 듣고 싶었지만, 실질적으로 현실에서는 번역과 통역을 병행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2학년 때 통역 전공으로 정해지고 나서도 시장의 법칙(?)에 적응하기 위해 번역 수업도 함께 들었었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 2년 내내 이전까지 내가 했던 번역은 번역이 아니었구나를 느끼면서 (통역도 그랬지만) 번역은 점점 더 내게는 힘든 과정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로 어떤 것이 좋을까 하루 밤을 꼬박 새우면서 고민했던 날도 있었다. 단어 하나에 무언가 탁 맞아떨어지는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꿈에서도 글쓴이를 찾아갈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겁기도 했지만, 왠지 ‘끝이 없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더 통역에 대한 충성도가 더 높아졌다.

 

통역은 우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번역은 글을 쓴 작가, 혹은 문서를 작성한 사람과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작업이라면 통역은 팀 플레이어 중에 한 명이 되어 조화롭게 일을 조율하는 역할까지 겸하게 되어 내 성향상 통역을 할 때 더 보람을 많이 느꼈다. 또 통역 시작 전에 가능하면 담당자를 만나서 필요한 부분을 먼저 전달받거나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살아있는 현장에서 '소통'이 가능 점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점에서 통역이 더 좋았다. 

 

유난히도 통역 사이 고만 싶었던 내가, 회사에서는 번역사로 불리는 일이 점점 더 잦아졌다. 프로젝트 수행 포함 총비율로 따지자면 통역이 20%, 번역이 80% 정도를 차지했다. 어쩌면 통/번역사로 한 기업에 채용되어 들어가서 일을 하는 순간, 이미 통역과 번역 어떤 일이든 회사의 요청에 따라 수행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으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오롯이 통역일만을 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으니까. 


내가 선택한 일이니, 통역일이 아쉽더라도 우선은 주어지는 번역일을 묵묵히 해내는 수 밖에는 없었다.

번역하는 문서는 계약서, 법령, 공문, 보고서, 기술 관련 설계코드, 건축도면 노트 등등 관련 문서와 용례를 찾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눈이 아플 정도로 번역만 하다 보면 점심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은 적도 많다.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은 회의며 담소며 나누는 와중에 계속해서 집중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군중 속의 고독이 이런 것인가 싶을 만큼 같은 공간 속에서 혼자만의 방에 갇혀 일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통상 프로젝트 문서의 경우 90% 정도가 프랑스어-> 영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이 90% 정도를 차지했기 때문에 모국어로 해도 힘든 번역을 두 가지 다른 언어로 해야 하니 거기서 오는 부담감도 한몫했던 것 같다. 특히나 단어 하나에 따라 업무영역(scope)까지도 달라질 수 있는 탓에 보고 또 보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루하루가 번역으로 채워지면서 출장이 없으면 거의 통역할 일도 없어지고, 이렇게 번역만 하다가 통역 감 (흔히 통역을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감’이 떨어진다고 표현한다)이 떨어질까 두려워졌다. 언젠가는 회사 울타리를 벗어나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 실력이 뒤처지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야 했다. 번역물을 보면서도 물론 많은 공부가 되었지만, 읽는 것과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강박적으로 출근길에 프랑스어 팟캐스트도 듣고, 사업주 팀과도 안면을 터서 식사도 함께 하고, 팀 내 알제리인 친구, 프랑스인 국제변호사 R 과장님 하고도 될 수 있는 한 프랑스어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프랑스어는 덤이고, 사업주 쪽 엔지니어들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또 업무에도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원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언젠가는 다가올 통역을 기다리면서, 나는 참 많은 번역을 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결국에는 프로젝트에 관련된 문서들을 모두 번역하고, 그 번역물이 고스란히 기록물로 남았다. 현장에 참여해서 분명히 존재감은 있지만 증빙자료가 없는 통역과는 또 다른 성취감을 선사해줬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영-불 번역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기술용어, 계약 용어들에도 익숙해졌다. 나만의 용어집도 생겼다. 문구 하나하나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습관도 생겼고, 미묘한 언어의 차이에 감탄할 줄 아는 안목도 생겼다. 통역을 전공했지만, 한 프로젝트에서 통역뿐 아니라 번역도 리딩 해서 처음부터 끝단까지 마무리해본 경험치도 쌓였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한 나의 첫사랑은 통역이지만,  의도치 않게 번역을 오랫동안 만나오다 보니 그간 편견에 가려져 외면했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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