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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Sep 11. 2021

파리 신드롬 말고,
통역사 신드롬

같은 곳에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볼 때 생기는 일

파리 신드롬 :프랑스 파리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파리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피해망상이나 우울증 등을 겪는 적응장애의 일종이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입사 초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고, 그 직업으로 밥벌이까지 해내게 되었다는 성취감에 그때의 나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부모님은 대기업에 들어간 딸내미를 자랑스러워하셨고, 나는 드디어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안전한 시작을 했다는 안도감에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영원할 줄 알았던 그 만족감이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꾸 고갈되어갔다. 분명히 원하는 일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회사는 나에게 회사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체성을 부여했다.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키웠던 꿈은 '통역사'로 굵직굵직한 회의에 참여하고, 실력을 뽐내고 그에 따라 인정을 받는 대충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너무 순진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상아탑에 갇혀버렸던 것일까. 현실에서 통역사는 내가 생각했던 위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내가 우러러보던 통역사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은 늘 멋들어진 커리어 우먼으로,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던 와중에는 나도 언젠가는 그런 모습으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프로젝트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 보니 나는 그저 '언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통역사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저 회사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리고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비 엔지니어, 비 전공자로 실질적은 성과를 내는 사람도 아닌

 그저 '지원'하는 사람에만 머물러있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직접적으로 공정에 참여하거나, 공정을 설계하거나 하는 실질적인 작업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그 사이에서 그 중간 어디쯤에서 윤활유 같은,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해내야 했으니 어찌 보면 통역사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자꾸만 나의 정체성에 대해 되묻는 일이 많아졌다.


이렇게 까지 나의 효용이나 나의 쓰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은 평가도 한몫했다. 입사 초기에는 통역사에게 우호적이셨던 분이 인사팀장이셨고, 누구보다 통역사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시고 이해해주시는 분이었다. 실제로 사내 파견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면담도 하고 회식도 하면서 힘든 점도 들어주시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러나 조직은 움직이는 유기체였다.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되었을 그즈음 우리 팀을 구성했던 인사팀장님이 교체되었다. 그룹에서 흔히 후자라고 불렸던 우리 회사에서 전자 쪽에서 새로운 분이 인사팀장으로 부임했고,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장도 변경됐다. 그리고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신임 팀장과 부장님은 통역팀를 소집해서 제도적으로 평가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겉모양 새는 퍼포먼스를 평가하기 어려운 직군이니, 그런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승진을 없애고 그저 평 고과를 주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고과를 잘 받지 못해 승진에서 누락되는 일반 직군도 있었으니, 이 자체로 어쩌면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공채로 들어왔는데 동기들은 모두 승진을 할 때 제대로 된 평가도 못 받고 그렇다고 평가에서 아예 제외되는 것도 아니고, 연봉 상승률도 다르게 만들겠다는 사실에 같이 들어온 통역사들은 대부분 분개했었다. 통역사이지만 동시에 '사원'이었던 우리는 '부장님'과 '상무님'에게 반기를 들 수도 따지고 나설 수도 없었다.


"어차피 너네 여기 평생 다닐 거 아니잖아?"


"통역사를 정규직으로 뽑은 것 자체가 잘못된 거지"


면전에 대고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띵했다. 

게다가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제도가 개편된 이후로, 나는 통역사였지만 동시에 프로젝트에 파견된 프로젝트 팀원이었고,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에 할당된 고과를 나누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제도에 따르면 통역사가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평 고과 이상 상위고과를  2번 받아야 승진할 수 있다고 했다. 상대평가처럼 프로젝트팀에도 A부터 D까지 할애할 수 있는 고과의 절대 총량이 정해져 있었고, 으레 연차 순, 그리고 차기 승진자 혹은 프로젝트에 비용을 줄였다든지, 공기를 줄였다든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사람들 위주로 상위 고과가 주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도, 프로젝트에 파견되고 나서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고 있으니 그래도 승진에 필요한 고과는 제대로 받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야근도, 주말근무도, 출장도 통/번역이 필요한 곳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매 번 평가는 최선을 다하는 것과 평가는 별개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만 할 뿐이었다. 


"통번역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평가할 수는 없잖아?"


한창 출장도, 회의도, 번역해야 하는 문서도 많았던 해의 고과 철이었다. 워낙 면담이야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 해에는 프로젝트에서도 나름대로 기여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 터라 그래도 조금 기대는 했었다. 그런데도 그 '성과'에 통/번역은 정말이지 쉽게 들어가지가 않았다.

억울했다. 문서가 번역이 되지 않으면 어떤 내용으로 일을 진행할 것이며, 사업주에게 전달하는 문서를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 매번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통역이 필요했던 순간은, 그럼 다 뭔지. 애초부터 통역사의 역할이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역할에 대한 나의 기대치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힘들게 애써서 결과물을 내도, '얼마나 기여했는지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몇 백 페이지의 프랑스어 기술 문서를, 그들의 눈에는  복잡하지도 않은 그 문서를 왜 빨리 번역하지 못하는지, 외주를 맡겼을 때 이렇게나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 건지, 가끔씩 들리는 '이 정도 문서는 나도 하겠네'와 더불어 영-불 번역이 한-불 번역보다 단가가 높다는 사실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회사에서 늘 부딪히는 사람들에게 그저 언어 치환 정도의 일로만 여겨지는 통/번역이 나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복잡한 공정을 풀고, 계산식을 써서 화학식을 푸는 것도 기계 배치를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통/번역이 그저 단순 노동쯤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공부한 일이 이렇게나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던 걸까 끊임없이 떨어지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던 날이 여러 날이었다. 


'나는 왜 이럴까?'


심지어 같이 입사했던 통역사들도 괜찮은 것 같은데 사내 파견 기간이 길었던 나만  유독 나만 파리 신드롬이 그렇듯 통역사의 세계에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 힘겨워하는 소위 '통역사 신드롬'을 힘겹게 겪고 있는 것만 같았다. 최근에서야 글을 쓰면서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이게 나 혼자만의 어려움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겪고 있었던 이 감정과 어려움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누군가도 나처럼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어도 좀 덜 외로웠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인하우스 통번역 사는 사용자의 인식에 따라 지위의 오르내림을 크게 경험하고 있었다. 8명의 통번역사 모두 통번역대학원 졸업을 통해 전문성 이 확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번역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용 자로 인해 지위 향상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특히 최근 졸업생 4명은 대학원 인하우스 통번역사의 직업 지위 인식에 관한 질적 연구 169에서 배웠던 바와 달리 통번역사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조직적 분위기 때문에 지위에 대하여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통번역사가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조직 내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뷰 결과 연차가 낮은 4명은 인하우스 통번역사를 ‘전문 직’으로 평가한 반면 경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머지 4명은 ‘준전문직’(T7, T8) 또는 ‘(전문) 서비스직’(T3)으로 분류하는 등 경력에 따른 인식 변화가 나타났다.

-중략-

실제로 인하우스 통번역사 대부분은 통역과 번역이라는 특수 스 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사용자는 주제에 대한 이해 수준으로 해당 통번역사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출처 : 통역과 번역, 20(1), 2018 인하우스 통번역사의 직업 지위 인식에 관한 질적 연구 -조직 내 직업 지위를 중심으로* 31) 임 세 인 (한국외국어대학교)


해당 연구에서도 그렇듯, 내가 겪었던 어려움은 내가 자부심을 느낀 통/번역이라는 특수 스킬에 대해 인정을 받는 것을 원했지만, 회사에서 사용자, 그러니까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엔지니어링에 대한 전문지식 혹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핵심 공정들에 대한 이해도 혹은 수행능력을 중점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나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3년 차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입사하면서 그래도 5년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래도 유예기간을 두면서 내가 회사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스스로에게 시간도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을 시작한 지 3년을 넘기고 회사생활이 6년 하고도 6개월에 접어들 무렵, 

드디어 나는 신드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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