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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Aug 10. 2021

사막보다 힘들었던 것

말 한마디가천냥 빚을괜히갚는 게아니다.


"예전 프로젝트할 때는 여직원들이 밥도 해주고 했었는데, 여자로서 뭔가 좀 솜씨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알제리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인허가 기관 미팅에 통역을 지원하기 위해 초기에는 2-3달에 한번씩 알제리 현장 근처로 출장을 갔다. 처음에는 세팅이 덜되어서 현지 호텔에 머물렀지만 프로젝트가 진전되면서 출장자와 파견자 등 현지에 필요한 인력이 늘어났고, 여전히 몇 백 킬로 떨어진 현장 세팅을 위해서는 중간에 사무실 겸 숙소가 필요했다. 여전히 그 지역전역은 외국인이 군인 에스코트 없이는 이동이 불가했다.


프로젝트에서 현지 지역 마을에 빌라를 하나 빌려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때부터 나도 출장을 가게 되면 더 이상 방갈로 호텔이 아니라 그 빌라에서 일도 하고 잠도 잤다. 중앙에 자그마한 정원을 마주 보고 총 4군데로 나뉘어 있던 3층짜리 건물에서 1층은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는 사무실, 그리고 주방, 회의실 등 공용공간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방들은 출장 및 파견 인력들의 숙소로 사용했다.


그 당시, 드물긴 했지만 다른 현장 주변에서 폭동도 일어나고, 이전 프로젝트의 경우 현장에서 도난 사고도 또 안 좋은 일도 일어났다고 해서, 현지 보안요원도 있고,그나마 현장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갈 때마다 마음 불편하고 불안했던건 어쩔 수 없었다.  


원체 업계에도, 회사에 남자 비율이 많다 보니 출장자 중 유일한 여자는 늘 나 혼자였다.

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동양 여자를 봐서 신기한 마음이라 그랬는지 어땠는지 갈 때 마다 '응시'란 이런것이구나 떠올릴 만큼 언제나 내 얼굴이며 위아래를 훑어 뚫어질 듯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시선이 나는 신기하기도 때로는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같이 출장을 다녔던 분들은 혼자인 나를 많이 배려해 주셨다. 현지에서도 나에게는 VIP룸으로 되도록 화장실이 붙어있는 방을 배정해 주시거나(다른 방은 공용화장실, 공용 샤워실이었다), 그나마 외부 출입이 어려운 2-3층으로 방을 내어주셨다.


전기와 인터넷 하물며 전화까지도 예고없이 툭하면 끊겨버리고, 고장난 화장실에 물을 받아 쓰거나, 그렇지 않으면 화장실 문이 고장나서 새벽 2-3시에 일부러 씻고 후딱 방으로 들어오기도 했었다. 창문도, 심지어 방문도 잠기지 않는 곳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를 위로해 주신다고, 출장을 자주 같이 다니던 H 책임님은 문 앞에 책상을 미뤄두고 자라,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올 테니 소리를 질러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라 하고 안심도 시켜주셨지만 내게는 그런 물리적인 상황보다도 더 힘들었던게 있었으니 바로 '사람'이었다. 


통역하러 왔지 밥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전문직군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통역사/사원으로 불렸다. 공채로 입사해서 동기들까지 있었으니, 그 동기들과 같은 사원으로 대해 주시는 분도 있었고, 통역사님 혹은 번역사님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호칭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조직생활에서는 호칭으로 서열이 나뉘고, 그 서열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했다.


호텔에서는 그래도 가져간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연명하곤 했는데, 현지 빌라에서는 음식을 해주시는 분이 따로 계셨다. 이렇게 장기간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의 경우 식재료가 공수되고 요리사도 함께 파견되곤 한다. 그 요리사분의 조수 격으로 함께 일하셨던 아주머니가 한분 계셨는데 한국인인 우리들을 위해서 직접 유튜브에서 레시피도 보고, 요리사분에게 음식을 배우셔서 꽤 그럴싸한 한식을 내어주시기도 했다.  


한 번은 출장길에 현지 요리사 분도 휴가 중이시고 아주머니도 오시지 않는 날이 있었다. 어차피 10일에서 2주까지 예상하고 갔던 출장이기에 미리 챙겨간 식재료로 대충 차려 먹거나, 컵라면을 먹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르는 적도 있었고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었다.


그날도 늦은 점심이나 먹을까 싶어 식당으로 향했는데, 파견근무로 현지에 상주하시던 L수석님이 계셨다. 파견을 나온 지 몇 개월에 접어든지라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많으셨는지 다른 과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내가 오니 대뜸 본인이 계셨던 국내 현장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A 공사를 하느라 지방 파견을 갔을 땐, 주말이면 여직원들이 한 번씩 닭볶음탕도 해주고, 부대찌개도 끓여줬다면서 매주마다 그렇게 진수성찬을 나눠 먹었다고 한참을 열변을 토하시더니, 식당에 자리를 잡은 나에게 갑자기 화살을 날렸다. 

 

"홍일점으로서 뭔가 느끼는 게 없나? 유일한 여직원으로 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황당하고 불쾌했다. 나는 통역사로 출장을 왔고, 밥하러 온 게 아니다. 분명히 그분에게는 내가 한창 아랫사람인 '사원'으로 보였으니까 더더군다나 이렇게 날아온 말의 길이도 짧았을 테다. 물론 백번 양보해서 호의로 내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고생하시는 어르신께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나랑 같이 일을 한 분도 아니고,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분도 아니다.  도대체 내가 그런 소리를 듣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 싶어서 


"저는 솜씨가 없어서요. 부장님이 솜씨를 발휘해주시는 걸 어떨까요" 하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그 길로 방으로 들어와서 정말 펑펑 울었다.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통역사로 일을 하러 간 거였는데, 나를 그냥 한 팀에 친한 직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어리다고 하기에는 이미 30대였다), 내가 만만해서 그런 건지, 내가 이러려고 그 힘든 공부를 한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오뚝씨가 한 번씩 웃어주면 분위기가 좀 풀리잖아"

"오뚝씨랑 그분이랑 말이 잘 통하니까 웃으면서 비위 좀 잘 맞춰주세요"

"오뚝씨가 알제리에서 좀 먹히잖아(?)" 


이런저런 말들에 상처를 입는 것 자체가 소모적이라고 생각해서 대부분은 묵묵부답으로 넘기거나, 그 자리를 떠나곤 했었다. 어쩌면 그동안 쌓여있던 것이 그 L수석님의 한방(?)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려와 터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는 L 수석님을 되도록 피했고, 되도록 방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시간만 골라서 식당엘 갔다. 


유난히 그 시기에는 몸이 많이 아팠다. 출장만 다녀오면 병원은 필수 코스였다. 장염에 위염을 달고 살았고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출장'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회의에서 통역을 할 때, 무언가 풀리지 않는 문제를 중간에서 함께 해결했다는 희열,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문서로 일이 돌아가고 있다는 보람은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가가 내 생각과는 참 달랐다.


통역사로 일을 하게 되면 통역하고 번역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조직생활이라 그랬던 건지 상황이 특수해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힘들게 공부한 끝에 이제야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을 대함에 있어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사람에 있어 내가 생각한 대우나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힘이 빠졌다. 


회사에서 통역사 선배, 동료들도 있었지만,같은 기업이라도 나처럼 프로젝트에 파견되어 일하면서 출장을 자주 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이럴땐 이렇게 대응하라 하는 매뉴얼을 누가 줄 수 있는것도 아니었다. 하소연한다고 사실상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아마 그즈음부터 내가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정규직에, 안정적이고 통/번역을 위주로 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안정적인 것 이면에는 내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았고, 현실의 벽은 가파르게 느껴졌다.


가파른 벽 앞에서 그나마 한번씩 숨이라도 돌릴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사람'이긴 했다.

"역시, 통역사님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오뚝이가 잘하니까" 라고 북돋아주고 내 일을 존중해 주는 이들이 있어 그나마 버텨나갈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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