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
L'expérience est le meilleur professeur-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2월, 입사한 지 거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함께 입사한 동료 통역사들이 차출되어 러시아로, 볼리비아로 출장을 다녀오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쌓여가는 통역 무용담을 들으면서 정리해 둔 엔지니어링 용어집만 괜스레 들춰보곤 했다.
언제쯤 등판해볼까 오매불망 벤치에만 앉아있는 선수 같던 나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
회사에서 진행하던 수년간의 정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다시금 새롭게 알제리에 프로젝트 입찰을 시작한 지 이미 여러 달이 흐른 뒤였다. 통상 3-4개월로 끝나는 다른 국가 입찰과정과는 다르게 유난히 알제리는 입찰기간이 길었다.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이윽고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알제리 회사 3사가 합작해서 진행하는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된 것. 이전에도 입찰 과정에서 계약서 관련 문항, 혹은 기술적인 사항들에 관해 서로가 명확하게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절차(Clarification)중 필요한 사항에 대해 번역 지원을 해오고 있던 터라, 프로젝트가 영 낯설지는 않았다.
얼마간의 후속작업이 이루어지고 14년 2월에 드디어 계약식 일정이 잡혔다. 나는 본격적으로 출장 준비에 들어갔다. 통역사라고 하면 으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른 분야의 일을 접하다 보면 배경지식과 함께 전문용어를 습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통역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사안이 걸린 경우 (주로 계약이나 협상과 같은 혹은 국제회의자리)가 많고, 또 대부분이 전문가들이 하는 회의가 많은지라 해당 분야의 비 전문가가 전문가들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베테랑인 통대 교수님들도 회의 통역이 잡히면 최소 2주간의 준비기간을 두고 통역을 준비하신다고 하셨으니, 신입 통역사인 나는 오죽했으랴.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인하우스 통역사로 회사라는 환경에서 익숙한 분들과 일을 해왔고, 입사 초반부터도 꾸준하게 정유, 화학, 가스 개발 공정 같이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스터디하면서 용어도 정리하고, 또 사내 연수 기간 동안 다른 프로포잘에서 근무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Q 대리님: 사장님 동반 일정으로 알제리는 1박 2일 일정이에요.
비자랑 준비하실 것이 있으니 사내 에이전시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주시면 됩니다.
출장명령서에 일정 기재하실 때는 현지 기준에 이동 시간 함께 포함하셔서 결재 올리시면 됩니다.
사장님과 함께 움직이는 일정이니, 짐도 최대한 줄여서 싸시는 게 좋아요.
나: 아. 네네. 1박 2일이요. 아(?) 네네.. (???)
알제리가 부산도 아니고 제주도도 아니고 심지어 가까운 일본도 아닌데 1박 2일 일정이 가능한 걸까 내 귀를 의심하면서 우선 출장준비를 했다. 그리고 후에 받은 일정도 이동시간을 빼면 정말이지 1박 2일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출장지에서 만난 인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현실은 정말 한시도 허투루 쓰지 않는 일정으로 짜여있었다. 그나마 나를 위로했던 건 직항이 없는 알제리에 이번 경유지가 파리라 2시간이지만 샤를 드골 공항을 찍고는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알제리 비자도 받고 출장일이 가까워져 왔다. 2월 현지 날씨를 대충 찾아보니 15-16도 정도 되는 선선한 가을 날씨 정도 되었다. 왠지 아프리카 대륙은 사계절이 뜨거울 것 같은데, 전혀 아니었을뿐더러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던 한국 날씨와도 전혀 딴판이었다. 혹시나 모르니 여벌 옷을 좀 더 챙기고 나니 기내용 캐리어가 금세 차 버렸다. 자료니 뭐니 필요한 것들도 겨우겨우 욱여넣고 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이전에 대학원 때 한 번씩 통역 의뢰를 받아서 회사 대표님과 실무자들이 함께 하는 회의에 갔을 때도 이렇게 긴장되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매일 보지 않을 사람들'과 '매일 볼 사람들'에 대한 차이었을까. 혹시라도 실수는 하지 않을까, 잘 해내야 할 텐데 온통 머릿속이 복잡했다.
통역사지만 신입사원이기도 했던 나는 이번 출장 일정에서 직급으로 따지면 최 말단 사원이었다.
그나마 실무를 담당하시고 살뜰하게 챙겨주신 Q 대리님이 있어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혹시 몰라 일찍 간다고 갔는데 이미 Q대리님은 와계셨다. 수속을 마치고 상무님 찬스로 라운지에 함께 들어갔고 잠시 뒤 도착하신 사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회사에서는 한 번씩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면 마치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린 것 마냥 참을 수 없는 정적에 사장님과의 독대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나마 내가 속해 있던 통역 파트가 임원진과 긴밀하게 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장님을 그전에 몇 번 뵐 기회는 있었다. 물론 대기업에서 임원을 거쳐 회사 대표 자리까지 오른 분이니 그 기세나 카리스마가 보통사람과는 달랐다. 그래도 첫 출장이고, 사장님 통역인지라 긴장이 많이 되었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최대한 배려해주시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름대로 화기애애하다고 믿고 싶은 분위기에 대화가 오고 가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다.
드디어 보딩 시간이 다가오고, 다행히(?) 일반석이었던 나와 Q 대리님은 어른들과 잠시 떨어져 재정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미 여러 번 알제리를 오간 대리님에게 대략적인 설명도 들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기에 긴장 반 설렘 반 일정이 시작되었다.
알제리가 속해있는 북아프리카 방문이 나도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원 때 알제리와 국경을 마주한 모로코에 가본 적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청년교류단을 수행하는 통역사로 일정을 함께 했었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음식도 맛있고 좋은 인상을 남겨준 곳이기에 그때 너무 기억이 좋아서 알제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모로코는 청소년 교류단을 수행하는 일종의 자원봉사였고, 이번은 대기업 대표를 수행하는 통역사로 일을 하러 간다는 점이었던 것.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고, 눈앞에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오로지 익숙했던 건 입국심사대 창구 너머로 들려오는 언어, 아랍어 사이에 간간이 들려오는 불어였다.
Bonjour, 봉쥬(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동양인이 많지 않은 알제리에서, 그것도 아직까지 여성들은 대부분이 머리를 감싸는 히잡을 착용하는 곳에서 까만 머리를 풀어헤친 (?) 동양인이 불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생경했는지, 무표정한 공항직원의 얼굴에 미소가 뗘졌다. 새삼스레, 프랑스어를 하니 알제리도 와보는구나 실감이 났다.
사장님과 동행하는 일정이 었기 때문에 이후 일정은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미 공항에 의전차 나오신 지점장님과 부장님을 뵙고, 사장님 이하 출장단은 차를 나누어 타고 호텔로 향했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는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2월 한창 한파의 여파가 남아있던 한국과는 다르게 딱 다니기 좋은 그런 날씨였다. 저녁시간이 훨씬 지난 참에 짐만 호텔에 두고 곧바로 호텔 식당에 다 같이 모였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거의 20시간 남짓 흘러있었다. FM 식 통역 준비라면 나는 다음날 컨디션을 위해 이미 잠자리에 들었어야 했지만, 이론과 실재는 늘 다르기 마련이다.
어쩌다 보니 사장님 옆자리로 배석이 되어 우선 가져간 노트를 펴두고 식사를 시작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가 딱 이런 상황을 두고 이야기하는 건가 보다 싶었다.
한상 가득 차려 진 음식은 쉽사리 줄지 않았다. 사장님의 카리스마 가득한 훈화 말씀(?)이 계속되었던 터라 부장님도, 상무님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시며 메모를 하실 뿐 그 누구도 선뜻 식사를 하시지 못했다. 말씀하시는 와중에도 옆에 있는 나에게는 어서 많이들 들라고 식사를 권하시는데, 비몽사몽인 데다가 자리도 어려우니 말 그대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몇 수저를 겨우 욱여넣었다. 모로코에서는 정말 맛있게 먹었던 쿠스쿠스 요리였는데, 그날 밤 알제리의 쿠스쿠스는 어떤 맛이었는지 도무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제리에서는 크게 3가지 언어가 통용된다. 공용어는 아랍어와 베르베르어(토착어)이고, 상용어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데 알제리는 프랑스를 제외하고 가장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이기도하다. 발주처 측이 3곳의 기업이 합작을 한 형태였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그렇지 못 한 사람, 또 비 프랑스어권 인사들이 섞여있던 터라 사장님께서 영어로 연설을 하시면 뒤이어 프랑스어로 통역을 하는 것으로 준비했다.
여전히 반 도 줄지 않은 음식을 앞에 두고 10시 반 정도가 다 되어서야 식사 자리가 끝났고 이후에는 사장님의 코멘트를 반영하여 부장님과 대리님과 함께 남아 연설문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 수정사항을 의논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부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필요한 부분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 미리 번역을 해두고, 미리 찾아왔던 용어집 (계약 관련, 엔지니어링업 관련, 정유사업 관련)등 용어집을 한 번씩 더 훑어보고 새벽이 다 돼서야 잠깐 눈을 붙였다. 정말 눈만 감았다 떴는데 아침이 되었다.
통역사는 주인공 뒤에 있는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
준비를 마치고 사장님을 필두로 모두가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각 사의 대표들과 임원진들이 즐비한 가운데 본격적으로 계약식을 시작하기 전에, 리셉션 자리가 마련되었다. 사장님을 수행하는 통역이었기에, 사장님 동선을 좇아 필요시 통역을 지원하기 위해 뒤를 따랐었다. 사장님이 만나시는 임원진들 (프랑스인, 스페인, 알제리)의 대부분이 어느 정도는 영어 구사가 가능하셨기 때문에, 중간에 개입해서 통역을 해 드릴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계속 옆에서 대화를 따라가야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다 상대측이나 사장님께서 눈짓으로 나를 쳐다보시면 그때 잠깐 가서 말씀드리고 또 신속하게 나와서 자연스럽게 있는 듯 없는 듯 있었어야 했는데 30분 남짓하던 그 시간이 참 길었다.
당초 예상했던 바와는 다르게 행사도 프랑스어와 영어가 혼재되어 진행되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굳이 사장님 연설은 프랑스어로 통역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밤에 난 뭘 한 건가 순간 맥이 풀렸다. 준비했던 통역을 할 기회가 없어져서 속상했지만 어쨌거나 통역사의 역할은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필요한 부분에서 양방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임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사장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사업주 측에 프랑스, 스페인 대표자 모두 짤막하게 영어로 연설을 했고 3개사 중에 가장 지분이 많았던 알제리 국영회사 대표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통역이 필요한 순간이니 사장님 뒷자리에서 열심히 위스퍼링 통역을 시작했다(*위스퍼링 통역:통역이 필요한 대상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동시통역하는 통역 방법). 이미 알고 있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큰 어려움 없이 통역을 마쳤다. 행사도 막바지로 다다르고 그때까지만 해도 무탈하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행사가 끝나고 J대리님이 창백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거예요? 지점장님이 대략 말씀은 해주셨는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사장님 통역으로 간 출장인지라 사장님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통역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당시 알제리 지점에 지점장님이 프랑스어를 구사하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측 참석자가 사장님 포한 5명을 넘어갔으니 사장님 말고도 통역이 필요한 분들이 계셨다. 특히나 추후에 출장보고서니, 사업주 연설 요지를 정리하는 것도 우리 측 실무자인 Q대리님과 P 부장님께서 주관하셔야 하고 상무님도 계셨는데 통역은 오로지 사장님께만 해드렸으니 그동안 나머지 분들은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계시지 못했다.
원래대로 라면, 그전에 나도 다른 분들은 통역이 필요하지 않은지 한 번은 물었어야 했고, 혹은 역으로 통역이 필요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실무진 측에서 물어오시거나 둘 중 하나는 서로에게 물었어야 했다. 잘잘못을 따질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경험이 많은 통역사였다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기계를 챙겼을까.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회사에 위스퍼링 장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미처 챙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제야, 회사에 기계가 있는걸로 아는데 왜 안 챙겨 왔느냐고 물으시는 상무님께 뭐라 드릴 말씀도 없었다. 그러게요.. 말씀해주셨으면 챙겼을 텐데. 왜 말씀해 주시지 않았을까 괜스레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때는 사실 경황도 없어놔서 이런 자리가 처음인 나보다 오래 참석해보신 실무자 분들이 말씀해주셨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통역사인 내가 먼저 예측하고 챙겼어야 했던 것이 맞다.
어째되었건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고, 우선 중요한 건 보고서 작성이었다. 행여나 잊을까 들은 내용을 먼저 구두로 설명드리고 호텔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글로 정리해서 Q대리님께 송부드렸다.
잠도 설쳐가며 밤새 준비한 연설은 입을 떼어 보지도 못하고, 한다고 했던 통역도 사장님 한 분만을 위한 지원이 되어버린 샘이 되어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큰 문제없이 무사히 끝나고 값진 경험을 얻고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얻으면서 그날 밤 귀국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사장님은 계약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출장지로 출발하셨던 지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파리 공항에서 잡지도 한 권 사고 초콜릿도 좀 샀다.
살면서, 이렇게 까지 하루 24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밀도 높았던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Q 대리님과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잠도 좀 자고 영화도 보면서 출국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귀국했다.
드디어 벤치에서 벗어나 등판은 했는데 결과가 어땠는지 궁금해하던 동료 통역사들에게는 부디 나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용담 대신 '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은 생길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최대한 더 준비하고 확인해야 한다'와 같은 교훈을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4년 2월의 어느 날 지금까지 겪어왔던 경험들이 그랬듯 날카로운 첫 출장의 기억도 그렇게 내 세포에 자리 잡은 귀중한 경험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