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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May 30. 2021

1초 동안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

뭣이중헌디



"어머니가 진정하시고 아이를 달래주셔야죠"


구급대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눈물이 바로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정말 잠시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따라 환기를 시킨다고 문을 열어두고, 바깥 베란다 문까지 활짝 열어놨다. 평소에 소파에서 자꾸 위태롭게 가장자리로 가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쉽게, 그렇게 빨리 떨어질 줄은 몰랐다.


정말 찰나여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어떻게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헐레벌떡 일어나서 가보니 베란다 타일 바닥에 아이가 누워있다. 바로 들춰안으니 그때부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정신없이 아이를 달래는데 얼굴을 보니 코에서 피가 나기 시작한다.

아무 생각도 못하고 '어떻게 해, 어떻게 해'만 연발했다.


남편은 해외 출장 중이고 전화해도 걱정만 시킬 것 같아 전화할 생각도 못했다.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주말이라 친정으로 돌아가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속도로에서 돌이켜 올 수도 없노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없는 정신에 그저 병원에 가겠노라고 연신 얘기를 해대고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에도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너무 아파하는 게 느껴진다. 너무 정신이 없으니 어떻게 상태를 체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별안간 얼굴에 시퍼런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소아과에 데려갈 요량이었는데 이건 당최 소아과에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안 나서 퍼뜩 119에 전화를 했다. 여차저차 해서 아이가 떨어져서 지금 머리가 붓고 코에서 피가난 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경황이 없는 나의 두서없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구급차를 보내주었고, 황급히 옷만 갈아입고 마스크랑 기저귀 가방만 챙겨서 서둘러 나왔다. 내복 차림에 아이를 그냥 들춰안고 아파트 1층에서 구급차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산 병원 응급실로 갈 거예요'


무슨 말인지 듣긴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네? 하고 되물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차림에 사람들이 이것저것 선을 발에도 연결하고 팔뚝에도 연결하니

계속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나도 이미 목 끝까지 차오른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데, 떨리는 내 목소리와 곧  울 것 같은 얼굴을 본 구급대원이 보호자분이 진정하셔야 아이도 놀라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니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맞다. 나 엄마였지'


혼자서 구급차에 올라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부디 정말 제발 머리에는 이상이 없기를, 차라리 이상이 있다면 나한테 생기면 좋겠다.

기저귀 밖에 안 챙겨 왔는데 병원에 오래 있게 되면 누구한테 뭘 부탁해야 하지,

내가 왜 그랬지.


그 와중에 입으로는 아이에게 "괜찮아 아가, 괜찮아, 아니야 괜찮을 거야 병원 가는 중이야 우리, 괜찮아 괜찮아' 연신 해대는데, 아이도 알았을 것 같다.  그건 아이한테 하는 말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되뇌고 있었다는 사실을.


10분이나 지났을까,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이 있다는 게 이렇게 안심이 될 줄이야.

그래도  마음은 급한데 사이렌도 안 울리고 이렇게 가도 괜찮을까 걱정이 들던 찰나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를 안고 들어서는데 코로나 관련 문진을 하고 열체크까지 하는데 손이 떨려서 볼펜을 제대로 쥘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내 모습이 짠했는지 간호사 선생님이 찬찬히 설명해주면서 일일이 손으로 집어가며 여기에 사인하시라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황급히  접수창구에 갔는데 도무지 아이 주민번호 뒷자리가 생각이 안 난다.


급히 나온다고 아기 수첩을 챙기는 것도 잊은 터라 왜 기억이 안나지 기억을 해내려 무진 애를 썼는데 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둥대는 나를 보더니 접수과 직원이  우선 접수 후에 수납 전에 다시 기입해달라고 양해를 해주신다.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어찌어찌 접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병원에 들어섰다.


아이도 진정이 되었는지 계속 울지는 않았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꾸만 뭘 끼워대니, 놀라서 다시 자지러지게 운다.


코에서 피가 나는 것도 혹시나 어떻게 될지 몰라서 닦지도 못하고 그저 죄인 된 마음으로 어쩌다 이렇게 작디작은 아이가 이런 상처를 입었는지 세네 번은 설명한 것 같다.

그리고 입성한 대기실에는 나만큼이나 초조해 보이는 여자분이 한분 계셨고 다행히도 대기 인원은 많진 않았다.


그래도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혹시나 아이가 잘못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기실을 연신 서성거렸다.


이윽고 인턴으로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서 다시 이것저것 문진을 하고,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고 갔다.

마음은 너무 급한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너무 느긋해 보이는 발걸음에 마음이 초조해지다가도, 정말 위중한 상황이 아니니까 그런 거겠지 혼자 위로도 했다가, 다시 앞에 안은 아이에게 괜찮아 괜찮아했지만 사실 나한테 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문진을 마치고 혹시라도 안에 출혈이 있을 경우 CT를 찍어야 할 수도 있다는데, 방사선 노출 양이 많아 지극히 작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암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는 (1/1000) 설명까지 듣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복잡해졌다.


이럴 때면 난 왜 의사가 아닐까 하는 이상한 자책감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의사인 친구에게 주말 아침 전화를 걸어 또 폐를 끼쳤다. 아이만큼이나 놀랐을 나를 안심시켜 주며 괜찮을 거라고 일단은 기다려 보라는 친구의 말에 진정하고 나서 다시 돌아온 의사는 우선 X-ray부터 찍어보고 경과를 보자고 한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x-ray 촬영실에 들어간 아이는 다시 자지러지게 운다.

그래도 혹시라도 잘못된 곳이 있으면 안 되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팔을 힘껏 잡았다.


그리고 다시 대기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 이름이 호명되어 들어간 진료실에서는 그래도 차분하게 맞아주시는 것으로 보아,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의료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엑스레이 사진이 깨끗하게 보여서 그때부터 한시름 놓았다.


다행히 두개골에 골절이나 출혈이 아직은 보이지 않고, 골절이 없으니 이마는 안쪽에서 부어오른 것이라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다행히 코도 코 뼈 쪽은 비껴서 떨어져서 피가 나긴 했지만 지혈도 잘 되었으니 혹시라도 코가 부어오르거나 하면 다시 내원하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기나긴 응급실 행이 마무리되었다.


힘이 풀렸다.


다행히 소식을 듣고 달려와준 동생이 고맙게도 응급실 앞에 와있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내 탓인데, 다 내 탓인데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아이를 힘들게 하고 가족들도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집에 와서 동생에게 아이를 잠시 맡기고 사고가 나던 시점에 CCTV를 돌려봤다.


몇 주째 주말에 독박 육아로 주말이 오히려 더 피곤하고 힘들어지던 참이었다. 일부러 엄마가 금요일 저녁이 아니라 토요일 아침에 본가로 가시겠다고 했던 날이라 그래도 잠은 제대로 잔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일찍 일어난 아이의 아침밥을 먹여놓고, 엄마를 배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혼자 아이를 보면 하루가 그렇게 길 수가 없는데, 그 긴긴 시간을 오디오 북이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소리라도 듣고 있으면 덜 적적했기 때문에, 그날도 어떤 걸 틀어놓을지 고르던 참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평화로운 아침이 눈물과 후회로 바뀌어있었다.


내가 뭐가 그렇게 바쁘고 중요하다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이를 눈에서 놓쳤을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아보라는 의미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아 아이에게도 멀리서 걱정하고 있을 남편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진정돼서 이제는 방긋방긋 평소처럼 잘 웃고 잘 노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놓이다가도 이마에  퍼렇게 줄이 가서 부어있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저렸다.


그래도 뽀뽀도 해주고 엄마 안아도 주는 아이가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어서 미안하고 너무 고마웠다.


아무리 이맘때 아가들이 많이 다치기도 한다지만, 이렇게 낙상사고가 있던 건 100% 보호자 책임이라는 점에 더욱더 경각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이와 둘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아이 앞에서 다른 일에 한눈팔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돌아온 주말, 상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부었던 이마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아이를 보면서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오롯이 아이와 눈을 맞추며, 함께 하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에 찡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내가 그동안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면서, 지금 부터라도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늘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고, 티 없이 밝은 얼굴에 상처까지 나게 만든 못난 엄마에게 햇살 같은 미소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또 주고 싶다.


뭣이 중헌지, 엄마는 이렇게 또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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