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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Jun 20. 2021

어느 임산부의 이직 생존기

동시에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리고 그 후

햇수로는 2년이 흘렀다. 2019년 6월, 드디어 이직을 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부산하던 그때, 

출근을 앞두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아이를 만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이러나저러나 불안하던 차였다.


임신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임신을 하고 이직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버틸 수 있을까, 가뜩이나 좋은 생각만 하고 조심해야 하는 시기에 고뇌란 고뇌는 몰아다 했던 기억이 난다.

검색창에 '이직' '임신''육아'를 이리저리 조합하면서 혹시라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했는지 이리저리 검색을 해봤다. 비슷하게 이직 즈음에 임신 소식을 확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몇 시간이고 웹서핑도 했었다. 뾰족한 해답은 없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수없이 되뇌던 말이었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던 걸까.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직한 회사에서도 자리를 잡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소중한 아들내미와 함께 

힘들지만 또 눈물 나게 행복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늘 그렇듯, 힘들었던 순간들은 또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 나를 더 단단하게 해주는 발판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이직을 한 회사는 여자 비율이 많다. 면접을 주선한 헤드헌터도 강조했던 사실은 여성비율이 많아서 출산, 육아 휴직에 대해서 나름대로는 관대한 편이라 그 점도 역시 추천할만한 포인트라고 했었다. 물론 당시에는 임신 전이었지만, 이직 후에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그 말이 다시금 머리에 맴돌면서 부디 이직을 한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기를, 그 회사의 '문화'가 부디 호의적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기 바로 일주일 정도를 남겨놓고 임신 사실을 알았던 터라, 회사 인사팀에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직접 가서 이야기하는 게 나은지, 그것도 아니면 인터넷에 몇몇 글에서 봤던 것처럼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적응한 뒤에 이야기하는 게 나은지 그 타이밍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찾아보고 고민을 했었다. 결국에는 나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출근 첫날 직접 뵙고 말씀드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출근 이틀 전, 면접에 들어오신 상무님에게 전화가 왔다. 출근 당일에 조금 일찍 와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막 초기 입덧이 시작되던 차였고, 어차피 알려야 하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어렵게 입을 뗐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도 더 호의적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편한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를 채용한 직속 상사에게 다시금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미리 시뮬레이션까지 해보면서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이 소식을 꽤나 오랫동안 많이 기다려왔던 터라 너무 기쁜 상황이었지만 타이밍이 이렇다 보니 마음 놓고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던 그 상황도 참 마음이 힘들었다.


그리고 출근 첫날, 머릿속에서 수없이 돌려보던 시뮬레이션과는 사뭇 다르게 첫마디로 임신 사실을 알렸다. 프랑스인인 나의 상사는 쿨하게(?) 먼저 축하인사를 건넸고 그리고 출산 후에도 회사를 다닐 의향이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지체 없이 나는 대답했다. 나는 커리어를 계속해서 지속할 예정이고 그 때문에 이직도 했노라며 당연히 계속 다닐 거라고 머리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첫날이 시작됐다.



워싱턴 의과 대학의 토마스 홈즈 박사팀이 개인의 스트레스 지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스트레스 측정 정도(Holmes and Rahe stress scale)’를 조사에 따르면 이직이나 부서이동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 (36점)가 친한 친구의 죽음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같은 수준이라고 하니, 개인적으로 겪었던 일련의 일들이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게다가 동일 조사에서 임신으로 얻게 되는 스트레스가 (40점) 이직과 같은 환경의 변화보다도 더 높은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나는 임신한 몸으로 이직을 했으니, 당시에 한창 회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쏟아지는 눈물을 쓸어내렸던 게 어찌 보면 당연했던 일인 것 같다.


이직도, 임신도 모두 다 내가 원했던 일이었는데 사실상 한꺼번에 이루어지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꽤 오랜 기간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았던 아이였던 터라, 그래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이직을 먼저 선택한 것이었는데 어쨌거나 나는 두 가지 변화 속에서 달라진 일상에 다시금 적응해야 했다. 그것도 동시에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아이러니하게도 '소속감'때문에 힘들었던 전 회사에서, 프로포잘, 프로젝트 때문에 짧으면 3-4개월, 길면 6개월에서 3-4년 까지 다양하게 팀을 바꾸면서 일을 했던 경험이 이직에 도움이 되었다. 


이미 다 팀을 이루어서 일한 지 오래된 사람들 틈에서 혈혈단신으로 그것도 '통역사'로 투입이 되어 팀원으로 스며드는 건 기름이 물에 녹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었고, 그때마다 매번 적응하기가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그런 일이 잦아져서인지 나중에는 나름 요령이 생겼고 그 요령 덕분이었을까 나름대로는 잘 적응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낀다.


이제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2년이나 버텨오고, 그 전에도 나름대로 자주 비슷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될 만한 방법 몇 가지를 적어봤다.



1. 헤매는 게 정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피로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숙명=적응장애는 우울증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불안·불면·식욕저하·두통 등 증상은 비슷하지만 적응장애의 경우 증세가 명확하게 ‘환경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고 스트레스를 주던 환경이 없어지면 6개월 내에 급격히 호전된다. 기질적인 요인에 크게 좌우되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보다 증세도 덜 심각하고 치료도 비교적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사람의 기질을 밭, 주변 환경을 날씨라고 한다면 적응장애는 밭의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은데 혹한과 가뭄 등 기상이변으로 농사를 망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라고 했다.
[출처: 중앙일보] 새 직장·부서에 가면 3개월은 헤매는 게 정상
https://news.joins.com/article/19383758


이동한 부서에서 혹은 이동한 직장에서 새롭게 적응을 하려면 최소한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평균적인 수치이니 더러는 좀 더 걸릴 수도 더러는 더 빨리 적응을 할 수도 있겠다. 나 같은 경우도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이제야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 어느 정도는 평균선에 속한다고는 생각했다. 같은 회사 내 부서이동을 할 때는 한두 번이 지나 세네 번이 되니, 그래도 그 적응 기간이 점차로 줄어든 것 같기는 하다.  


같은 회사에서 부서이동을 했을 때도 그랬는데, 이직은 회사를 옮기기도 했으니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자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저 3개월 동안은 나에게 시간을 주자고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이전에는 익숙한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면 이직 후에는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이니 오히려 헤매고 낯설고 어려운 게 정상이다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었다. 


2. 내가 먼저, 그리고 여유롭게.


사람은 관성이 있어서 원래 있던 환경에서 변화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미 익숙한 사람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전혀 다른 곳으로 이른바 '뿌리'를 옮기는 일이 이직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모두 익숙한 상황이고, 나는 그 익숙함을 비집고 들어가서 나의 존재를 그들의 '익숙함'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익숙하지 않은 곳을 익숙하게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별다른 수가 없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하고 대화를 열어가는 수밖에는 없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나는 과자나 젤리, 과일 등등 주전부리를 좋아했다. 내 몫을 챙기는 김에 넉넉히 챙겨가서 주변에 팀원들이나 직원들과 함께 나눠먹는 것이 생각보다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좋은 주제가 되었다. 

다른 말할 것 없이 '이것 좀 드실래요?' 했을 때 마다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물론, 저희는 이런 분위기 아니에요..라고 하는 직원도 있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조금 더 지나니 괜찮아졌다) 


주전부리를 가져가서 나눠먹는다거나,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내서 대화를 이끈다거나 하는 일상 속에 작은 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들도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있을 수 있다.



3. 상대방에 입장에서 생각한다. 


이직 전에 일했던 회사는 부서이동이 잦았다. 그렇게 옮겨간 팀에서 처음에는 늘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나만 빼고 익숙한 그들 사이에서 나만 모르는 이야기가 오갈 때나, 혹은 어떤 사람에게 업무를 물어봐야 하는지 일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봐야만 하는 나와는 다르게 이미 익숙하고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동료들에게 거리감도 느꼈다. 이것저것 계속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으니 귀찮게 하는 것 같고 이러나저러나 마음이 불편했었다. 

같은 회사 안에서 일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팀을 여러 번 바꾸면서 내가 속해있는 조직에 새로운 구성원이 오는 횟수도 늘어가고 직접 그 구성원을 뽑아가는 과정을 거쳐가면서 조금씩 생각도 달라졌다. 조직 내에서는 모두가 크든 작든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공통된 과업이고, 바꿔 생각하면. 이미 그들에게는 익숙한 환경에 '나'라는 '변이(?)'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이미 있는 사람에게도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응'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새롭게 업무를 알려주는 그들도 고충이 있을 것. 그래서 최대한 같은 질문을 하지 않도록 메모도 하고, 명확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정리해서 한꺼번에 물어보기도 하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나에게 내어주는 시간에도 감사를 표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중간중간에 내가 잘하고 있는지, 부족한 점이나 어떤 점을 더 보완하면 좋을지 솔직하게 묻고 피드백을 받았다. 

어쨌든 적응이라는 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한 번쯤은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더랬다.


4. 최선을 다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영화 역린에도 나왔던 내가 너무 좋아하는 글귀다. 

힘들 때마다 이 글귀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점을 찍는다고 생각하고 정말이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온 맘을 다했다.

 

이미 임산부라는 핸디캡 아닌 핸디캡이 있었기 때문일까. 

출산 직전까지는 쭉 다니고 난다 치더라도 후에 어쨌든 얼마간이라도 휴직을 들어가야 하는데 그전에 어느 정도 나를 증명(?) 하고 쉬어도 쉬고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꾸역꾸역 정말 뱃속의 아이가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온 정성을 쏟았다. 홀몸도 아니면서 늘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나에게 남편은 몇 번이고 그만두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미련할 정도로 열심히, 많이 일하면서 그래도 인정을 받고 싶었기에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견디면서 몇 개월을 불살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그저 복직 후를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커리어를 생각하면서 독하게 일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일이 제법 익숙해질 무렵, 나는 입원을 했다. 갑작스레 원인모를 조산기로 병원에 입원을 하고 그 뒤로도 쭉 회사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직한 지 4개월 하고도 2주가 흘렀을 때의 일이다. 


출산을 하고 나니 회사를 다닌 기간 보다, 회사를 쉰 기간이 더 길어져버렸다. 다행히 육아휴직까지도 쓸 수가 있어 출산을 하고 5개월을 아이와 함께 지낸 뒤, 병가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쳐 9개월 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회사에서는 이미 대체근무자를 뽑아놓은 상황이라 더 늘릴 수도 있었지만, 더 길어지만 안될 것 같아서 당초 예상했던 시기에 다시 돌아갔다. 


이직을 하고 적응이 될만한 때에 휴직을 하게 되고, 다시 돌아온 회사는 어색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시금 익숙해지려면 또다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휴직 전에 아주 짧고 굵게 해 놨던 일들이 있으니 생각보다 적응은 전보다는 수월했다. 그리고 또다시, 열심히 일했다. 아침 일찍 잠든 아이를 뒤로하고 다시 잠들기 직전의 아이를 품에 안는 날들이 여러 날 흐르고,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되어 아이도, 회사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하며 찍었던 점들이 어느 순간 선이 되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지 상사의 인정도 받게 되고, 그 선들이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전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에게는 미안함이, 회사에서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라고 셀프 칭찬을 마구 하면서 이직 2년 차 소회를 적어봤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일이 생겨도, 지금껏 그래 왔든 이 또한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 단단해지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지는 순간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지내고 버티고 보내보려고 한다.


2년 전의 나에게, 혹은 나와 비슷한 경험,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2년 전의 나처럼 애타게 조언을 구한다면 그저 모든 것은 결국엔 다 지나가고, 또 경험이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저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는 보고 있으니,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가 지켜보고 있으니 그 정성과 노력과 시간은 반드시 어떤 방향으로든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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