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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오 Apr 05. 2023

이집트 여행 썰 푼다

카이로에서

 이집트로 떠나는 날.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엔 이코노미석에서의 장시간 비행도 할만했지만 점점 버거워진다. 그래도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코노미석으로 예약을 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비상구석을 받았다. 비상구석은 앞에 좌석이 없어 다리를 펼 수 있어 좋다. 혼자 비행기를 타다 보면 비상구석을 받는 일이 잦은데 비상구석은 1순위가 혼자 온 젊은 남자라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비행기에서 내려 미리 예습한 대로 나를 불러대는 온갖 택시 기사들을 뒤로하고 능숙한 척 우버를 불렀다. 이집트에서 오면 가장 놀라는 것은 이 나라에는 횡단보도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건너면 바로 그곳이 횡단보도가 되는데 문제는 사람이 건너도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건너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차가 온다고 놀라서 도로 한 중간에 멈춰 서거나 멈칫하면 이내 와서 박아버릴 것이 분명하므로 절대 어영부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지나가면 그 옆차선에서 달려오는 차에 박혀 명을 달리할 것이기에 적절한 속도와 눈치가 중요하다. 그야말로 도로를 건널 때마다 목숨을 건 자동차 피하기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인들은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6차선이고 8차선이고 능숙하게 건너는데 눈치 없고 요령 없는 자들은 이미 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도로를 생지옥으로 만드는 원인은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차선이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눈엔 차선이 보이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그리고 실제로 차선이 없는 곳도 많다). 차선의 개념이 없기에 그들은 그저 광활한 1차선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차선이 없는 곳에서는 끼어들기라는 개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것은 끼어들기가 아니라 그냥 내가 가던 차선을 조금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가는 것이기에 일단 대가리를 들이밀고 보는 운전자와 옆차가 대가리를 들이밀어도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뒤차의 강대강 싸움이 시작된다. 자신이 끼어들기를 할 때에도, 옆차가 끼어들기를 할 때에도 절대 속도를 줄이지 않는 상남자, 상여자들의 자존심 싸움이 벌어진다. 실제로 사람이 지나가든 옆차가 박으려 하든 브레이크 밟는 꼴을 못 봤다.

 만약 보행자나 옆차에 측은지심을 느껴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뒤차에서는 연신 빵빵 거리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지랄이 난다. 그 빵빵 거리는 소리는 도로 근처에 있는 카페나 건물에 들어가 있어도 1초에 10번은 들을 수 있는데 듣다 보면 이것이 내 귀에서 들리는 환청인지 실제로 누가 경적을 울리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지경이 된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사고가 나질 않는데 이 역시 눈치 없는 자들은 이미 세상을 떴거나 차가 이미 폐차되어 도로에 나오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나라는 신호등이 없다. 8차선이든, 사거리든, 로터리든 신호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신호, 차선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달리기에 이 나라는 그 높은 인구밀도에도 교통 정체가 그리 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개판 5분 직전인 도로에서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우버 기사님 덕분에 편안히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갈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하튼 차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보행자, 사람이 건너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 그런 차들 사이로 다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이 삼박자가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개판난 도로에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어찌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했다. 분명 나는 1인실을 예약했음에도 직원은 나를 도미토리룸으로 안내한다. 나는 1인실을 예약했다고 말을 했지만 직원은 내가 예약한 방이 도미토리가 맞다 한다. 혹시 내가 잘못 예약한 것인가 싶어 안 터지는 인터넷을 억지로 부여잡고 예약 내역을 확인하지만 나는 분명 1인실을 예약한 것이 맞다.

 다시 직원을 찾아가 예약 내역을 보여주며 잘못된 방을 받았다 따지니 어딘가로 전화하더니 자신이 실수했다며 방을 바꿔줬다. 내 귀에는 직원의 통화 내용이 ‘사장님 저 새끼 눈치 깠는데요’라고 들리긴 했지만 아랍어를 모르니 실수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내 방을 되찾았으니 되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쉴 틈도 없이 우버를 잡고 박물관으로 갔다. 우버 기사를 기다리는 도중 우버기사가 계속해서 후회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니 그냥 기다린다. 우여곡절 끝에 또 우버를 타는 데 성공하고 박물관으로 가니 입구에서부터 가이드 필요 없냐는 호객행위가 시작되지만 나는 또 능숙하게 삐끼들을 물리치고 박물관으로 입성했다.

 박물관에는 어릴 적 책에서 봤던 상형문자들과 온갖 유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집트는 워낙 오랜 시간을 존재하며 많은 왕들이 태어나고 죽었기에 그냥 길 가다가 돌덩이를 들고 와서 박물관에 전시하면 그것이 바로 유물이다.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투탕카멘이다.

 투탕카멘이 유명한 이유는 다른 유명한 왕들은 이미 다 도굴당하고 무덤이 텅 비어있는데 어린 나이에 사망하여 잘 알려지지 않아 도굴당하지 않고 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듣보잡이었다 이 말이다. 역시 존버는 승리한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헤밍웨이가 다녀갔다는 카페에 들러 맥주를 한 병 마시고 이집트 전통 시장인 칸 엘칼릴리 시장으로 갔다. 시장을 가는 이유는 이집트 전통옷을 꼭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운전기사에게 전통옷은 얼마냐 물으니 ‘그거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옷인데 왜 사려고 그러냐’라고 했다. 나는 ‘아 난 가난하니까 그 옷 꼭 사야겠다’ 다짐했다. 그래도 사고 싶다 하니 그 옷을 입고 다니는 자기 친구에게 전화해 얼마인지 물어 봐주겠다 했다.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그 친구 거는 맞춤이라 너는 못 산대’라고 했다.

 그렇게 별 도움 안 되는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호객행위의 끝판왕인 시장에 도착했다. 이런 흥정에 약한 저는 제일 처음 보인 옷집에 들어가 원하던 옷을 찾고 얼마냐 물으니 하나에 850파운드라 했다. 나는 그럼 2개를 400에 달라했다. 2개에 950파운드에 주겠다 했다. 나는 500에 달라했다. 900 이하는 안된다 했다. 나도 500 이상은 안된다 했다.

 치열한 공방전이 오가고 결국 550에 2개를 사기로 합의를 봤다. 사실 400에 사려했으나 처음 기세에 밀렸으니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와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놈들을 상대로 항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운전하는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머플러도 보이기에 50에 달라하니 100을 달라하기에 더 이상 실랑이할 기운도 없어 그냥 50을 손에 쥐어 주고 가져왔다. 옷 가게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해가 진다.

 이집트의 석양은 한국의 것과 밀도가 다르다. 이집트의 건물들은 대부분 황토색이기에 해가 질 때면 석양에 물들어 모든 건물이 함께 붉어진다. 석양에 물든 건물들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니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배경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 우리는 석양이 질 때가면 예쁘다는 식당이 있다길래 그곳으로 갔다.

 식당에 도착해 야외 좌석을 달라하니 이미 다 예약이 돼있어 안된다고 했다. 우리도 실내는 안된다 야외를 달라하니 알겠다 하고 야외 좌석을 줬다. 특파원으로 이집트에 와있는 친구가 ‘이집트는 특별히 되는 건 없는데, 또 안 되는 것도 없어’라고 했다.

 야외 좌석에서 본 카이로는 정말 아름다웠다. 저 멀리 피라미드 한 쌍이 보이고 도시 사이로 나일강이 흐른다. 저 먼 수평선에 사막에서 불어온 먼지가 짙게 깔려 있고 그 위로 노을이 지며 빨강에서 검정으로 밤하늘이 그러데이션으로 물 든다. 점점 검은 밤하늘이 붉은 노을을 밀어내며 별이 뜨기 시작한다. 그렇게 피라미드에서 노을, 밤하늘, 별로 변하는 풍경을 모두 감상하다 보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밤하늘에 마음이 평화로워지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집트인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집트에 오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집트인들은 전부 사기꾼이니 절대 누가 뭐라 해도 믿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온 관광객들은 모든 이집트인들을 사기꾼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근데 진짜 전부 사기꾼 맞으니 조심해야 된다. 이 자식들은 아주 사람을 호구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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