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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오 Apr 06. 2023

이집트 여행 썰 푼다 - 2

바하리야 사막에서

 사막을 가는 날. 시차 적응에 실패해 두 시간가량 밖에 못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호텔을 나왔다. 이른 새벽의 거리는 한산하여 그놈의 경적 소리를 좀 안 듣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님을 찾아 방황하는 택시들이 큰 백팩에 캐리어를 끄는 먹잇감을 발견하고는 연신 빵빵대기 시작한다. 이 시간 도로의 절반은 택시인가 보다. 나를 보는 대부분의 차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시장에서 산 이집트 옷과 스카프로 현지인처럼 변장을 했지만 스카프를 두른 게 아직 좀 어색한지 관광객 티가 나나보다. 수시로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을 뒤로하고 집결지에 도착해 투어 버스를, 아니 봉고를 탔다. 생각보다 작은 차에 짐을 싣고 나니 앉을자리가 부족해 짐 옆에 찌그러져 앉았다.


 베이스캠프까지는 5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일러 도로에 차가 없어 좋다. 창 밖을 보는데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든다. 보여선 안될 것이 계속 보인다. 아뿔싸. 내가 이집션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이 친구들은 차선의 개념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중앙선 개념도 없었던 것이다. 도로에 차가 없으니 역주행하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역주행하고 있는 건 우리였다. 여태 거대한 1차선으로 구성된 왕복 2차선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거대한 왕복 1차선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법지대를 달리다 보면 당연히 아찔한 상황도 종종 연출되는데 시비가 붙으면 서로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며 싸우기 시작한다. 조금 전 길 가다 차를 세우고 감자를 주으며 행복해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온도차에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친구들은 당연하게 싸울 때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데 둘 다 엑셀만 밟으니 나란히 옆에서 달리며 오래 싸울 수 있다.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은 그래도 차가 많을 땐 브레이크는 안 밟아도 앞은 보는데 싸울 땐 옆을 보며 액셀을 밟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뭐 앞에 차가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앞은 내가 보면 된다. 그래도 나름의 룰이 있는지 두 운전자가 싸우다 보면 어느 순간 한쪽이 납득을 하고 잘못을 한쪽이 속도를 줄이며 어느새 점이 되어 보이지 않는 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잘못한 쪽은 엑셀에서 발을 떼고 이긴 쪽은 속도를 더욱 올리며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다.


 비하라야사막은 베두인이란 부족의 나와바리다. 베두인은 유목 민족으로 사막을 유랑하며 살았고 지금은 이렇게 투어도 하고 오아시스에서 농사도 지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베이스캠프에서 베두인 음식으로 점심을 준다 하여 먹었다. 베두인들은 유목민이기에 향신료를 갖고 다니지 못해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다(고 한다). 건네준 음식을 먹으니 꽤 맛이 좋다. 무언가 익숙한 미원과 치킨 스톡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아마 msg에 찌든 내 혀가 환각을 느끼는 것일 테다.


 투어 사장님이 여권을 달라 하여 드리니 사진을 보시고 '어머 사진 참 잘 생겼네.'하고 나를 보시더니 '그런데 지금은 왜...'라고 하시고 나는 ' .... 네?'라고 했다. 사막에서 오래 사시다 보니 신기루가 보이시나 보다.


 그렇게 베두인 가이드를 따라 투어를 시작했다. 이름을 묻자 '킹 오브 더 데저트'라 불러달라 했다. 오케이 킹... 첫 투어장소에 도착하고 햇빛이 뜨거워 스카프를 꺼냈다. 스카프를 본 킹오데가 이리 달라하더니 머리에 감아주기 시작했다.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묻지 않길래 거절도 하지 못하고 그의 손길에 나를 맡겼다.


  내 머리에 스카프를 다 두르고 나자 킹은 만족한 얼굴로 '디스 이즈 베두인 스타일. 유 얼 베두인 냐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초사이언 같이 다른 종족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더 강해진 기분이라 그대로 머리에 두르고 있기로 했다. 역시 킹오데의 손길은 무언가 다른 게 있나 보다.


 차를 타고 가다 이 차는 얼마나 됐냐는 질문에 30년 정도 됐다고 한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 차는 처음이라 이 무거운 몸을 태우고 있는 차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질문이 복선이었을까. 투어 중간에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우리는 우선 샌드보딩을 타고 있기로 했다. 그래도 목적지 근처에서 고장이 나서 다행이다.


 샌드보딩의 단점은 내려간 만큼 다시 걸어 올라와야 한다는 점인데 발이 모래에 푹푹 빠지고 가팔라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번 정도 타고나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30분 여를 기다리니 우리 차가 수리가 다 되었는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역시 그는 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투어를 마저 진행하고 사진도 찍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텐트에 짐을 풀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데 킹이 나에게 저 바위산 위로 올라가라고 했다. 무서워서 싫다 했는데 진지한 킹의 얼굴이 더 무서워서 그냥 올라갔다. 거의 기듯 두 손 두 발 다 사용해 가며 돌산 위에 올라서 석양을 보니 바람도 선선하고 훨씬 경치가 좋았다. 땡큐 킹.... 그렇게 석양도 보고 반대쪽에선 달이 떴다.


 오늘은 보름달로 달이 참 밝다. 드넓은 사막엔 햇빛과 달빛을 막을 것이 없기에 오늘 밤의 달은 유난히도 크고 밝다. 그렇다.  쏟아지는 별을 보러 사막에 왔는데 별이 안 보인다. 그래도 모닥불도 피우고 불멍도 하고 달이 저리 크고 밝은걸 보니 운치는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이내 피곤해진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잠에서 깨 달이 넘어가길 기다렸다. 달이 지고 해는 아직 뜨지 않은 주인 없는 밤하늘에 드디어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막에 누워 별을 보다 보니 어느덧 해가 뜨기 시작한다. 이제부턴 다시 태양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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