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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오 Apr 02. 2023

안 그래도 사랑할 것들이 넘치는 계절이라

어느 봄, 진해에서

 괜스레 사랑하게 되는 것들이 많은 계절입니다. 겨울 내내 웅크리고 있던 나무들이 잠에서 깨어나 노란 개나리로, 분홍빛 벚꽃으로, 하얀 목련으로 생명력을 내뿜고, 잠자던 개구리가 깨어나 울어댈 준비를 합니다.

 

방구석에서 뒹굴거리기나 할 거면 꽃이나 보러 가자는 벗의 말에 벚꽃을 보러 가기로 합니다. 수염이 거뭇한 남정네 둘이 꽃놀이를 간다는 것이 퍽 여럽긴 합니다만, 어차피 할 게 없으니 ‘그러자’ 합니다. 모처럼 아침 일찍 샤워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머리도 매만집니다. 가방 속에서 갇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필름 카메라도 챙기고 친구를 만나 진해에 갑니다.

 철을 맞아 만개한 벚꽃들이 온 도시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진해는 온통 분홍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여좌천으로, 생태공원으로, 경화역으로 꽃을 보러 갑니다. 지천으로 널린 벚꽃 나무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꽃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와 있습니다. 화관을 쓴 애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청년, 티격태격하면서도 두 손 꼭 잡고 거리를 걷고 있는 중년의 부부, 입술 굳게 앙다물고 굳은 표정이지만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할머니를 열심히 찍고 있는 할아버지까지. 참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문득 옆에서 나와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사랑스럽다기엔 너무 우락부락한 내 친구를 보니 좀 슬퍼지지만, 그래도 꽃은 아름답습니다.

 봄에 활짝 핀 벚꽃엔 슬픔이 숨어있습니다. 봄이 진해지며 흐드러지면 흐드러질수록, 슬픔도 함께 점점 더 흐드러집니다. 봄은 생명력을 내뿜지만, 그 생명력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일까요. 그리 오래가진 못합니다. 채 한 달도 못 되는 기간 벚꽃은 온 힘 다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뿜고 결국 꽃비 되어 내립니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가 더 아름답습니다.

 이 벚꽃 속에 숨어있는 슬픔을 읽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다른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예쁜 꽃을 보며 행복에 젖는데, 저는 벚꽃을 보면 왜 이리도 슬퍼지는 걸까요. 이별이 다가옴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곧 마주해야 할 이별이 두려워 지금 이 행복을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벚꽃의 꽃말은 ‘짧은 만남 뒤 이별’이 아닐까 합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온 맘 다해 사랑하고 불타 결국엔 재가 되어 나리는 것이 꼭 저 같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분홍의 꽃잎들은 당신을 닮았습니다. 곧 지고 종말을 맞이한다는 점은 저를 닮았네요. 우리를 닮아서 제가 저 벚꽃을 사랑하나 봅니다. 우리를 닮은 사랑이 지는 것이 슬퍼 지난봄 벚꽃을 보며 제가 그리도 울었나 봅니다. 세상 예쁜 것은 당신을 닮고 스러져가는 아픔들은 저를 닮길 바랍니다. 예쁘고 귀한 것만 남은 세상에서 당신은 항상 꽃같이 아름답기를 흐무러진 벚꽃 아래서 기도합니다.

 안 그래도 사랑할 것들이 넘치는 계절이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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