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불편함 속에서도 나만의 길을 만든 작은 플레이어의 이야기.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편마비면 불편한 게 많을 거라고, 게임 같은 거 하기도 힘들지 않겠냐고.
맞다. 힘들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린 나에게 게임은, 몸이 다 따라주지 않아도 마음만큼은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유일한 놀이터였다.
내 인생 첫 닌텐도 게임이 '동물의 숲'이었다.
사촌 오빠가 플레잉하는 걸 옆에서 멍하니 보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집을 꾸미고, 자연을 뛰어다니고, 동물 친구들과 대화하는
그 세계는 병원 복도 끝에서 보이던 회색 풍경 속 유일한 공원이었다.
문제는 조작이었다.
닌텐도는 양손을 전제로 만든 게임기였다.
왼쪽 십자키로 캐릭터를 움직임, 오른쪽의 A, B, X, Y로 상호작용.
그래서 나는 오른쪽 손가락을 가랑이 찢듯 벌려가며 조작했다.
몇 분만 해도 손바닥에 뜨거운 피로가 올라오고, 낚시 몇 번 하다보면 손목이 고장난 기계처럼 떨렸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이 게임이 '힐링'이 아니라 완전한 노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집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사채업자 너구리에게 벨을 갚아야 하고,
벨을 벌려면 낚시, 채집, 과일 따기 반복, 반복, 또 반복.
나는 집 꾸미기만 하고 싶었는데 집을 꾸미려면 빚을 갚아야 했다.
어린 나이에 작은 경제 사회의 현실을 먼저 맛본 셈이었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 콘솔을 내려놓고 한숨 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손 아파?"
"응... 빚 갚아야 하는데 손이 너무 피곤해..."
그날 이후, 어머니는 밤마다 몰래 접속해 내 캐릭터로 돈을 벌어주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구 하나가 늘어나 있고, 통장엔 벨이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게임 시스템 안에 로또 맞은 줄 알았다.
그땐 몰랐지만 그건 내가 불편한 손으로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고
조금이라도 덜 힘들라고 건넨,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도움의 손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산타의 선물보다 더 좋았다.
내 첫 모바일 게임은 카카오톡 게임 삼대장, 쿠키런·애니팡·드래곤 플라이트였다.
내 폰이 없던 때라 주로 어머니 폰을 빌리거나, 몰래 가져오거나 그 둘 사이 어디쯤 해결했다.
주로 병원 대기 시간이나 치료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짧게 한 판 하기 딱 좋았다.
물론 어머니와 작은 신경전도 있었다.
"엄마, 조금만..."
"안돼. 엄마 문자해야 돼."
"5분만..."
"너 5분이래 놓고, 30분 하잖아."
현질은 꿈도 꾸지 않았기 때문에 출석체크와 이벤트로만 버텼고,
덕분에 꽤 강한 '근성 플레이어'가 되었다.
요즘도 어머니는 애니팡을 하신다.
재화는 넘치다 못해 흘러다닐 지경이었다.
"왜 안 쓰고 방치해?"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한다.
"아깝잖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난다.
아... 우리 엄마는 정말 극강 절약의 여신이구나.
내 첫 오라인 게임은 '엘리샤'였다.
말을 키우고, 경주하고, 심지어 날 수도 있었다.
말 버전의 카트라이더라고 보면 된다.
같은 병실 언니 추천으로 시작했는데
마우스 조작이 거의 필요 없어서 한 손으로도 할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방향키 + Shift + Space.
이 세 게를 한 손으로 누르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점프키를 Space에서 '0'으로 바꿨다.
엄지로 방향키, 검지로 Shift, 새끼로 0 키.
이 조합은 기적의 세팅이었다.
비행도 되고, 점프도 되고, 경주도 가능한 완벽한 삼박자.
이때 느꼈다.
'하고 싶으면 길은 만들면 된다.'
사람들은 능력의 문제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깨달았다.
방법이 없으면, 그냥 만들어버리면 된다라는 걸.
돌이켜보면, 내 몸의 불편함은 게임을 못하게 만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조금 다른 방식을 요구했을 뿐이다.
두 손으로 하는 게임이면 한 손으로 할 방법을 찾았고,
키 조작이 복잡하면 다 뜯어 고쳤고,
혼자 감당하기 버거우면 도움을 구해도 된다는 걸 배웠다.
편마비라는 제약은 나를 작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더 궁리하게 하고, 더 창의적이게 만들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만의 길'을 찾게 만들었다.
게임은 나에게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해석하는 첫 번째 교과서였다.
어떻게 하면 내 몸에 맞게 조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편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지킬까.
그 고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한 손이어도, 마음은 두 배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어려움이 있어도 인생을 즐기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
누군가 내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마음을 묶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나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두 손이 아니라,
꾸준히 뻗어 나가려는 그 마음 자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