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처음 나를 밀어낸 날.

23화| 아직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날의 흉터'

by 오립

학원에서 처음으로 '절친'이라는 말이 내 마음 한쪽을 따듯하게 적시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배운 것보다 느낀 것이 더 많았고, 그 감정이 참 소중했다.


늘 병원과 학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던 내게,

영어 학원은 처음으로 또래와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작은 세계였다.


그 아이와 나는 참 잘 맞았다.

쉬는 시간엔 과자를 나눠 먹고,

단어 시험이 끝나면 서로 손등을 톡톡 때리며 장난도 치고,

집에 갈 땐 같이 팔짱 끼고 내려오며

"내일 또 보자!" 하고 헤어지는 사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범한 우정'이라는 걸 경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모님이 큰맘 먹고 놀이동산 일일 자유이용권을 끊어주셨다.

둘이 밖에서 온종일 놀 수 있는 날이었고 매초 허투루 쓰기 싫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며 장기가 따로 노는 경험을 하고,

회전목마에서 머리카락이 날리도록 웃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서로 입 주변에 묻히고 놀기도 했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그려 보았다.

'아, 이 아이랑 평생 절친이 되겠구나.'


하지만 다음 날, 영어 학원에서 만난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세계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너 같은 장애인이랑 놀지 말래. 엄마가 그러셨어. 가까이 오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뜨거워지고

몸이 심장과 함께 땅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애.

그 단어를 나는 한 번도 약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모두가 내 속도에 맞춰줬고,

문화센터에서는 능력보다 즐거움이 중요했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도 몇 만들 정도로 자유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내 세계는 "장애가 있으니까 불편해." 정도였고,

"장애가 있으니, 넌 위험하고 피해가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말은

세상에 어딘가에 존재한다고만 들었던 '진짜 규칙'을 내 앞에 던져놓았다.


장애인은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


나는 그 말을 그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몇 년 전 부모님이 했던 말이

뼈처럼 떠올랐다.


"넌.. 커서 어떻게 살아갈래?"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잘 지내는데 뭐가 걱정이지 싶었다.


그런데 그 아이 한마디가

부모님의 걱정,

내게 닥친 현실,

그리고 세상의 냉정함을 한꺼번에 열어젖혔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 장애가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이 일은 당연히 선생님과 부모님께도 전달했다.

내가 말하자 선생님은 표정이 굳었고,

부모님은 숨을 들이쉬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며칠 뒤, 그 아이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아마 부모님끼리 연락이 오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통쾌함도 시원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가해자가 사라졌는데, 내 안의 상처는 그대로였다.

누군가의 존재가 살아져도 그 존재가 남긴 잔향의 해로움이 남아.

내 상처를 헤집어놨다.


그래서 나는 학원에 남았다.

도망치면 그 말이 사실이 되는 것 같아서 억울했고,

내 마음이 무너진 자리를 억지로라도 메우고 싶었다.

용감해서가 아니다, 용서해서도 더더욱 아니다.

모든 아픔을 치료한 뒤에 남은 것도 아니었다.

내 자존심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도망자일 것 같아서, 스스로 지키기 위해 버텼다.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가 하나 생겼다.

성격도 좋고, 말도 잘 통하는 아이.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마음을 확 열지 못했다.

내 안에 아주 얇은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손톱으로 긋듯 희미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선.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그 친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마지막 방어막인 셈이었다.


혹시나 또 어딘가에서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라는 말이 튀어나올까 봐.

그로 인해 두 번 다시 설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게 무너질까 봐.

그래서 나는 마음을 절반만 주는 아이가 되었다.

마음을 감싸고,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는 늘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아이.

추가적인 아픔을 얻고 싶지 않았던,

그럼에도 사람이 좋아 그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어리석고 서툴었던 겁쟁이.


이건 어쩌면 어린 내가 만든 생존 방식이었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틈.


나는 결국 그 상처를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멋있지만 내게는 먼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줄 알았는데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때 그 말이 바람처럼 불어, 내 마음의 불시를 태운다.

이건 흉터처럼 이고 살아가야 하는 상처라는 걸 안다.

겉은 아물어도 손끝으로 문지르면 아직도 욱신거리는 기억 같은 것이라는 걸.


사람들은 흔히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느꼈다.

시간이 상처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 상처와 함께 지내는 법을 알려주는 것에 가깝다고.

나는 상처를 극복한 적이 없다.

그저, 상처를 지닌 채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무모할 용기를 얻게 되었을 뿐이다.


이 정도면 그 시절 나로선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상처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어른이 돼 가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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