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홈플러스 문화센터에서 배운 인생 공식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학원이라는 딱딱한 공간을 마주하기 전,
가상시뮬레이션 돌리 듯 작은 교실을 체험한 적이 있다.
마트 안의 작은 교실, '홈플러스 문화센터'였다.
엄마는 그곳을 '세상의 연습장'이라고 불렀다.
병원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배움보다 친구가 더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처음 등록한 수업은 주산이었다.
그 시절엔 '주산을 배우면 산수를 잘하게 된다'는 말이 엄마들 사이에서 정설처럼 퍼져 있었다.
엄마는 내가 숫자에 강해지길 바랐고, 나는 또래 비장애인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처음 만지는 주판은 나를 전문적인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도구 같았다.
선생님이 사용 방법을 설명해 주셨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주판 정리'였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서 가름대를 스쳐 지나가며 정리하는 그 동작에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구몬처럼 '연산 문제 한 장씩 해오기.' 숙제를 내주셨다.
문제는, 그 산수가 암산으로도 충분히 되는 수준이었다는 것.
굳이 주판으로 굴리자니 귀찮았다.
주산을 하면 암산이 쉬워진다는데, 오히려 답답하고 오래 걸렸다.
그래서 몰래 암산으로 다 풀고 주판만 굴린 척했다.
결과는 완전범죄.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를 숙제 잘하는 아이로 기억했다.
이날 이후였다.
머릿속에서 '굳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잖아?'라며 나와 타협하기 시작한 건.
그게 내 인생의 첫 번째 잔머리였던 것 같다.
주판을 하며 암산에 강해지는 법이 아닌,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계산하는 법을 배웠다.
주판의 시도가 흐지부지 되고, 이번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바로 성악이었다.
문화센터 한복판에서 오페라가 터지는 건 꽤 진귀한 광경이다.
마이크도, 관객도 없는 교실에서 대형 거울 앞에 선 아이들과 선생님의 무대가 시작된다.
커튼이 올라가기 전, 선생님은 아이들의 목소리 톤에 따라 음역대를 나누어주셨다.
역할이 없던 조연들이 주연을 맡는 순간이었다.
나도 음역대를 받았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평균보다 음역대가 낮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노래를 잘하는 줄 몰랐다.
노래를 부르면 아빠가 어디선가 나타나.
"어우, 음치인데 소리 좀 그만 질러."라며 핀잔을 줘서 노래에 대한 자존감이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같은 반에 친구들 중 가장 잘 부른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 말 한마디가 가슴속에 아직도 남아있어,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산다.
성악의 특성상 숨을 끊기지 않게 내는 것이 중요했는데, 상당히 고역이었다.
배에 힘을 주고 음을 이어가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한 음을 길게 끌다가 왼쪽에 긴장도가 높아져 곤란했던 적이 여럿 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배에 힘! 끊지 말고 쭉!"이라며 과한 지시를 하셨다.
얼굴은 빨개지고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절박해 보여 웃음이 났다.
노래 하나 부르는 게 내 전신을 쓸 정도로 버거웠지만, 나름 행복했다.
마치 내 속의 비명이 노래로 치환되어 아름답게 세상에 비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노래가 매력적인 것 같다.
세 번째 수업은 바둑이었다.
이 수업을 받은 계기는 치료사 선생님들과 여러 가지 게임을 하다가
바둑이라는 종목에 관심이 생겨서이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전쟁, 치열한 두뇌싸움.
검은 돌과 흰 돌 사이에는 좁혀지지 못하는 거리가 있었고, 만나면 무조건 포로로 잡혀 가는 규칙이 존재했다. 이 게임에 평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먼저 이론을 가르쳐주셨다.
바둑은 집짓기 싸움이라고. 어떤 돌이 많은 집을 짓느냐에 따라 승패가 바뀐다고.
그다음엔 아이들끼리 1:1로 맞붙게 했다.
나는 열심히 집을 짓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상대방 남자아이가 우세했다.
난 초보자였고 그 아이는 경험자였으니, 밀리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자 방어하는 게 의미 없다고 스스로 결판을 내렸다.
분명 끈기 있게 쥐고 있다 보면 방법이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하니 내 손은 바둑판 반쪽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내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적에게 한 번에 죽어서 게임이 빨리 끝날 수 있도록.
"이게 내 인해전술이다!"라는 어이없는 농담을 하며 상대를 혼란에 빠트렸다.
"이거 맞아? 왜 이렇게 하는 거야?"
남자아이의 질문에 그때는 피했으나, 지금은 답할 수 있다.
이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지는 게 확실하면 포기해 버리는, 어렸을 적 생긴 나쁜 습관이었다.
승부욕은 강했지만,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몰랐다.
바둑판에서 자신의 실패도 교훈이 될 수 있다.
흔히 '오답노트'를 만들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포기를 했고, 그 실패를 용납할 수 없어 떠올리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다음에도 다른 아이들과의 대국에서 연패를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건 처음부터 내 패착이었다.
바둑도, 인생도 뒤로 되감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두면 그걸로 끝, 내 차례는 그렇게 지나간다.
지금 바둑알을 어디에 둘 것인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한 수가 상대에게 넘어가버렸고,
자신의 수를 후회한다면
'포기'가 아닌 '복기'하는 것이 내일의 나를 더 낫게 만든다는 걸 배웠다.
문화센터에서 배운 건 이것보다 더 많았다.
그중에서도 주판, 성악, 바둑이 가장 내 안에 오래 남아있다.
주판은 세상을 유연하게 살아가는 법을,
성악은 슬픔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법을,
바둑은 자아성찰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이 시절 홈플러스는 냉장 코너와 계산대 사이에
숫자와 음과 돌이 공존하던,
이상하고 아름다운 학교였다.
나는 그곳에서 오랜만에
비장애인 친구들과 같은 책상에 앉았고,
다시 세상의 리듬을 배워갔다.
배움이란 게 꼭 정답을 맞히는 일만은 아니다.
주판, 성악, 바둑 주 과목은 거의 다 까먹었지만,
나는 여전히
주판 대신 머리를 굴리고,
절규 대신 노래를 부르고,
바둑 대신 나를 복기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