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치료 중인 겜블러다

20화| 운동 대신 웃음을 배운 아이, 그리고 겜블러의 탄생

by 오립

친구들과 놀게 되면 늘 듣던 별명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겜블러'

게임을 잘해서 붙은 이름은 아니었다.

다만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게임 종류를 많이 알고 있어서 생긴 별명이었다.

오늘은 그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근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때는 병원 생활이 챗바퀴처럼 느껴지던 어느 시절이었다.

그때의 하루는 누군가 미리 짜둔 루틴 안에서 움직이는, 조금은 끔찍한 일정표 같았다.

처음에는 드라마 속 CEO가 된 기분으로 열심히 임했지만

그것도 매일같이 반복되니 어느 순간부터 지쳐갔다.

지루함의 극치를 달리던 어느 날, 치료사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운동 말고 재밌는 거 없어요?"


반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선생님은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겜블러 인생'이 열렸다.


처음 등장한 건 2015년도 당시 인기 있던 'Wii게임기'였다.

'X-box 키넥트'와 양대산맥이었지만 나는 주로 Wii 쪽이었다.

키넥트는 전신 인식이라 볼링 하나 치려면 자세가 정확해야 했다. 조금만 틀려도 "실패!"가 떠서 괜히 자존심 상했다. 반면 Wii는 리모컨의 버튼만 잘 누르고 휘둘러도 알아서 완벽한 폼으로 인식해 줬다. 그야말로 성격에 딱 맞는 게임이었다.

그래도 키넥트의 장점 하나를 말하자면 춤출 때 생동감이 있어 상대 진영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게임기는 치료사 선생님들과 나의 절충안이기도 하였다.

다리 들고 내리고, 팔을 뻗는 게 운동이 아니라 '게임 운동'이 되는 순간이었으니까.

이때 처음으로 내 몸의 근육보다 웃음 근육이 먼저 풀렸다.


치료는 원래 대부분 1:1로 진행된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끼리 시간대가 겹치면 선생님들이 특별히 팀전을 만들어주셨다.

그 시절 치료실에서 유행했던 건 사방치기였다.

매트를 펼쳐 번호를 매기고 지우개나 양말을 돌 삼아서 던졌다.

서로 선을 밟았는지, 팔을 짚었는지 따지느라 목청이 터져라 웃었다.

휠체어를 탄 친구는 선생님이 대신 뛰어주시기도 했다. 그 장면에 또 한 번 배꼽 빠져라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환호성이 요양병원에 안에서 들을 수 없던 가장 건강한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다음에는 루미큐브, 다빈치 코드 같은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다.

패를 섞고 숫자를 맞추며 머리를 써야 하는 시간이었다.

보드게임 카페에 온 것 같은 집중력을 보여주며 다빈치 코드의 패를 섞을 때 조커카드가 어디 있었는지 외워두기도 하고, 루미큐브를 할 때는 상대방의 패 이용성을 낮추기 위해 얍삽하게 완성된 카드를 손에 쥐고 있기도 했다.

나보다 계산이 빠른 선생님도, 손놀림이 날쌘 친구도 있었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한판 더!"라는 '오징어 게임' 대사가 자주 나왔다.


언젠가는 도파민에 너무 절여져서 남자 선생님과 할리갈리 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질 뻔하기도 했다.

처음엔 "이건운동이 아니잖아. 안돼." 라며 손사래 치던 선생님이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하셨다.

솔직히 초등학생에게 이렇게 진심인 선생님은 처음 봤다.

종을 먼저 치겠다고 서로 손이 엉켜버리고

'쾅-!' 소리가 나면 한 라운드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치료실은 경기장 수준이었다.

종소리 같지 않은 소음이 복도를 들썩였으니까.


이런 열기가 오르다 보니 이젠 선생님과 내기도 했다.

'선생님이 이기면 일주일 내내 운동하기', '내가 이기면 이번 주 두 번은 게임하기'.

이 내기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선생님도 피차일반이셨는지, 서로 사활을 걸어 승부했다.

운동이냐, 게임이냐. 이건 한 주의 운명을 가르는 일이었다.

마지막에는 둘 다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엔 '다음에는 꼭 내가 이기겠다'는 승부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결국 위에 것들도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나아가 치료실을 보드게임 카페를 거쳐 카지노로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어르신들이 치료사 선생님들과 하시던 장기와 고스톱을 본 것이었다.


"선생님, 어르신들은 뭐 하는 거예요? 제가 하는 거랑 좀 다른데 가르쳐 주세요!"


그저 궁금증이었다. 이 질문이 사행성 입문 선언문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으셨다. 그 자리에서 장기짝과 판을 꺼내며 '전략 훈련'을 시작하셨다.

나름 배우면 배울수록 빠져드는 게임이었다.

각자의 역할과 규칙에 맞게 움직이는 게 현실 같아서 흥미가 더 동했다.

첫 판과 두 번째 판 모두 지니 더 오기가 생겨서 한 삼 주 정도는 장기만 두었던 것 같다.

지금 잘하냐 묻는다면 '아니요'. 기초만 배우고 다음 게임인 고스톱으로 넘어갔다.


고스톱은 명절날 가족끼리 앉아서 하는 걸 자주 봤던 터라 쉽게 이기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이기니까 잘하냐 묻는다면 이것도 '아니요' 사실 점수 세는 정도가 한계다.

1월부터 12월까지 무슨 패인지도 못 외우는데 마스터했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솔직히 광박, 피박, 고도리, 청단, 홍단, 초단만 알아도 괜찮지 않을까.


사행성 게임을 하며 한 가지 배운 사실은 나는 도박을 하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돈을 걸지 않은 건전한 사행성 게임도 승부가 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패를 내밀 때 손끝이 떨려 포커페이스가 전혀 되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게임을 하며 부모님 눈치를 안 봤냐. 물론 봤다.

운동하라고 치료실에 보냈더니

막상 가보면 아이가 게임판 앞에서 깔깔대고 있으니 당연히 화를 내셨다.

그래서 나도 노하우를 익혔다.

일주일에 한 번 들키는 건 잔소리로 넘어가셔서 괜찮았고,

다른 날 또 놀게 된다면 30분 치료 중 마지막 5분은 선생님이랑 짜고 '치료하는 척' 연기를 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선생님도 그냥 넘어가주셨다.

아마 어린 우리가 어린이답게 놀지 못하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사실 치료실 외에 또래를 볼 일이 적으니까 틀린 말은 없었다.


모든 선생님이 그런 건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듯. 병원에도 두 부류가 있었다.

"무조건 치료! 운동!"을 외치는 FM 선생님과 "웃으며 놀자!"는 놀이형 선생님.

전자 같은 경우 아이들은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무섭지는 않지만 숨 막히는 선생님.

늘 정확하고, 부모님들에게 인기 많고 병원 안에서도 '에이스 치료사'라고 통했다.

후자 같은 경우 아이들은 천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늘 그렇듯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놀이형 선생님들은 "그래도 이 나이에 내 치료 시간만이라도 웃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셨을 것이고

FM 선생님들은 "얼른 완치하고 밖에서 뛰어놀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셨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들을 생각하고 아끼셨던 마음은 변함없기에 이런 추억을 담아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웬만한 게임은 다 알고 자랐다.

이 이후에 포커, 바둑, 장기, 체스와 여러 보드게임들도 익히게 되며

그래서 친구들이 종종 물었다.


"이거 왜 알고 있냐?"


이 말과 함께 날아오는 '너 혹시..?'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때면 난 웃으며 답한다.


"얘들아, 나 그만한 깜냥 안 돼."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나의 별명이 '타짜'가 아니라 언제나 '겜블러'였던 이유.

지식은 많지만, 그만큼 못하는 사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치료시간을 이어오고 있는 겜블러다.

이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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