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도 명절이 있었다.

19화| 하얀 복도 위로 피어오르던 냄새, 그리고 웃음.

by 오립

명절이 다가오면 병원 복도는 이상하게도 조금 들떠 있었다.

하얀 벽과 소독약 냄새 사이로 김이 피어오르고,

냉장고 속엔 누군가의 본가에서 온 반찬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언제나 같던 하루 속에서도,

그때만큼은 '우리에게도 명절이 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 활기의 중심엔 늘 아이의 보호자, 엄마들이 있었다.

병동의 진짜 경쟁은 치료가 아니라 엄마들의 줄타기였다.

누가 더 성실한 보호자인지, 누가 선생님들과 더 가까운지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복도 끝까지 이어졌다.

외박을 다녀온 엄마들은 본가에서 음식 바구니를 들고 와

"이것 조금 드세요~ 직접 만든 거예요." 하며 선생님들에게 정성을 건넸다.

그건 인사이자, 작은 전략이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를 슬쩍 비집고 다녔다.

쉬는 시간이 되면 조용히 치료실로 걸어가


"이 깻잎 절임은 누구 엄마 작품이에요? 음... 조금 짜네요."


"오, 산적 맛있겠다."


라고 말하며 심사위원에 빙의해 한입씩 맛을 봤다.

선생님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치료실에 미식가 왔다면서 받아주셨다.

엄마들의 치열한 줄타기 속,

그건 나만의 작은 복수이자 유쾌한 놀이였다.


명절엔 치료실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둘러앉아 전을 부치기도 했다.

지글지글 기름 냄새가 복도를 채우면 하얀 벽에 붙은 냉기도 잠시 녹아내렸다.

서툰 손놀림으로 뒤집은 전이 찢어진 대도 맛으로 커버된다며 웃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웃음은 치료보다 더 빠른 약이었으니까.


가끔은 치료사 선생님과 함께 요리를 하기도 했다,

'불닭까르보나라'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브라우니나 팬케이크를 구워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작은 전기 팬 하나로 병실 전체가 디저트 카페가 되었고,

그 냄새에 이끌려 오던 다른 아이들도 수줍게 '저도 한입만요'

하며 접시를 내밀 던 모습이 귀여웠었다.

그때의 우리는 환자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다과회에 앉아 행복한 티타임을 즐기는 아이들이었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먹던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정성과 예의가 오갔지만,

우리에게 그건 그냥 맛있는 추억의 순간이었다.

누가 먼저 굽고, 누가 나눠주었는지도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냄새와 웃음만큼은 추억으로 남아 기억에 잘 보관되어 있다.


특히, 빼빼로 데이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이 오면,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받는 작은 교환식이 열렸다.

학교 대신 병원에서 자라던 우리에게 세상과 닿는 작은 창문이 잠시 열리는 시간이었다.

그날만큼은 치료 대신 웃음이 처방되고,

병실이 잠시 교실이 되는 신비한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요즘도 명절이 다가오면 엄마는 어김없이 깻잎 절임을 꺼내놓는다.

나는 여전히 한입 맛보며 중얼거린다.


"음, 이번엔 조금 덜 짜네요."


그러면 엄마가 웃고, 나도 웃는다.

그렇게 서로의 미소가 닿으면

병원 복도의 따듯한 공기와 전 부치던 소리,

그 시절의 웃음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다.


짧았지만 참 다정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신비하고 아름다운 명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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