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더 아팠던 어른들에게

18화| 병동의 밤은 시끄러웠지만, 그 울음은 살아있으려는 소리였다.

by 오립

병원은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하얀 복도 안에도 서열이 있었고, 병실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동했다.

그 안에서 나는 가장 어린 시민이자, 가장 조용한 관찰자였다.

초등학교를 중간에 온라인으로 바꾸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은 이미 하나의 체계를 갖춘 작은 사회였다.

아이들은 환자였지만, 그들의 보호자들은 누구보다 치열한 인간이었다.


A엄마는 매일 저녁 8시면 불을 껐다.


"우리 애 자야 하니까요."


그 한마디면 병실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하얀 벽은 그 순간 감옥처럼 느껴졌다.

나는 책을 덮고 천장에 번진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병동은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통제의 공간이었다.

어쩌면 그것만이 그녀가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모든 게 통제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던 사람.


B엄마는 냉장고 구역을 철저히 나눴다.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전쟁이었다.

한 성깔 하시던 우리 엄마와 한 바탕했을 때, 그들 사이에서 눈물을 흘린 건 나였다.

그날 내가 울었던 이유는 삶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두 어른의 모습이 너무 불안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의 분노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의 예민함은 사실 마음의 경계였다.


C엄마는 병동에서 가장 각박했다.

자기 아들에게마저 하루가 멀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신 똑바로 차려!"


아이는 하루를 울음으로 시작해 울음으로 마쳤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아들과 같이 놀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도에 세워져 무릎을 꿇었을 때도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그냥, 처음부터 그런 엄마였으니까.

그녀는 누구에게나 엄격했고, 그 엄격함 속에는 흔들림이 있었다. 아이가 자신의 방심으로 또 아플까 봐.

그 두려움을 꾸짖음으로 감춘 사람.

그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나 높았지만, 그 속에는 떨림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화가 아니라 절규였다.


소아 병동이 모인 층에는 '여왕'이 있었다.

놀이방의 불을 일찍 끄는 권한을 가진 사람.

6시면 무조건 소등이었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웃음은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고, 웃음이 멈춘 자리에는 냉기가 돌았다.

그녀는 병동의 질서를 세웠다. 말 한마디면 모두 조용해졌고, 그 조용함은 복종 같았다.

어린 나에게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엘리스의 하트 여왕 같았다.

누구든 규칙을 어기면 벌을 받았다. 그녀의 왕국에서는 웃음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다.

밤이 되면 그녀는 자신의 오른팔, 2인자 엄마와 함께 아들들을 재워두고 클럽에 갔다.

낮에는 독재자였고, 밤에는 도망자였다.

모든 걸 통제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던 사람.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복도 끝까지 퍼질 때면 아이들의 숨소리도 한층 더 작아졌다.

나는 그 소리가 사라질 때마다 이 병원이 조금 더 평화롭길 바랐다.


그중에서도 L아빠가 기억난다.

아이의 엄마는 미국으로 돈을 벌러 갔다.

그는 매일 도시락을 싸서 아이 옆을 지켰다.

한 손으로 밥을 떠먹이고, 다른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참 따뜻해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랑'의 모양을 배웠다.

그리고 F아빠. 아이의 장애 소식을 듣자마자 떠난 사람.

아무도 그를 욕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쟤보다 낫다고 위로하며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을.


그 병동에서 나는 사람을 배웠다.

아이는 치료받았지만, 어른들은 각자의 고통 속에서 병들어갔다.

누군가는 분노로 자신을 달래고, 누군가는 타인의 불행을 안주처럼 씹었다.

그들의 이기심은 혐오스러웠지만 어쩐지 인간적이었다.

그들도 결국 아팠다. 단지 그 상처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지.


그때의 나는 그저 놀고 싶은 아이였다. 하지만 어른들의 비합리적인 규칙 속에서 늘 벌을 서야 했다.

그래도 나는 그 세계를 미워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들의 시간을 회고하며 깨닫는다. 그들은 아이보다 더 어린 어른들이었다는 것을.


병실의 불이 꺼진 밤, 어른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숨겼다. 어른답게.

어떤 이는 술로, 다른 이는 분노로, 누군가는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을 달랬다.

나는 그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인지한다.

그 병동은 아픈 아이들의 공간이 아니라, 상처 입은 어른들의 거울이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 나는 이 시절을 가끔 떠올린다.

그때의 병실 냄새, 큰 소리로 오가던 언쟁들, 그리고 머리채 잡던 보호자들.

어쩌면 그곳이 내 인생의 첫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잔인했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곳.

모두가 다치고, 버티던 공간.

그 어른들이 왜 그렇게 예민하고, 불안해했는지. 이제는 조금 안다.

그들 또한 누군가의 아이였고 부모는 처음이었으며 장애아를 책임진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겨운 일이었다는 걸.

누군가의 눈물 속에서 자라나 또 다른 아이 앞에서 어른이 되어야 했던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면, 그 병동의 밤도 조금은 덜 시끄럽게 들린다.

그 소리는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울음과 같았으니까.


아이보다 더 아팠던 건 어쩌면 부모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분노는 사랑의 다른 얼굴이었고, 그들의 침묵은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제는 그 시절의 어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늦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때 안아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요.


엄마, 아빠. 그리고 그때의 어른들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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