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학교생활, 긴 예고편 같은 기억.

16화| 10살, 세상은 생각보다 빨랐다.

by 오립

병원 생활을 하며 간간이 들려오는 어린이집 친구들의 학교 생활 소식이 내 마음을 흔들어댔다.

한창 친구들과 뛰며 술래잡기나 숨바꼭질, 소꿉놀이 같은 게 즐거울 나이, 10살.

초등학교라는 곳이 너무나 궁금했다. 어린이집과는 달리 교칙에 맞게 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공간이자, 내가 조금 더 자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체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장애를 지닌 몸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린 나이의 장점은 무모함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모님께 부탁드려 한 학기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신나는 첫 등교날. 소꿉친구가 있는 같은 반으로 편성되어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학교에 도착을 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즐거웠던 마음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싸늘한 동급생들의 반응이 나를 강타했다. 예상 밖의 냉대가 나를 맞이한 것이다.

인사를 안 해서 그런 걸까. 선생님이 전해주시는 내 소개와 함께 힘찬 인사를 건네었으나 그들의 시선은 여전했다. 궁금증과 호기심이라면 나았을 텐데, 이 불편한 눈길은 무엇인가. 장애를 얻고 처음 받아보는 호의도 적의도 아닌, 알아챌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 한 아이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오, 드디어 내게 친구가 생기나.' 그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너 팬 좋아 보인다. 이거 빌려줄 수 있어?"


이거 아무리 봐도 양아치 대사가 아닌가. 부모님과 할머니가 첫 학교라고 사 주신 좋은 필기구였다. 당시 다양한 색이 나오는 펜이었는데 나에게 소중했지만, 빌려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그 여자아이가 펜을 가져간 후, 다른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내 자리 바로 앞에 위치한 아이였다.


"너, 쟤 조심해. 무서운 애야."


아무래도 펜을 돌려받기는 글러먹은 것 같았다. 그 아이의 경고를 듣고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를 생각해 용기 내서 말해 준 것 같았으니까. 여기서 대화를 끝내도 됐겠지만, 나는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갈망에 말을 더 이어 나갔다.


"너는 어디 살아?"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친구가 잘 받아줘서 어느새 쉬는 시간 내내 잘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아이의 다른 친구가 데리고 나가버려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그래도 '친구 만들기'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혼자 남아 할 것이 없던 나는 5살 때부터 친했던 남자 소꿉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나랑 놀래?"


늘 내가 주도해서 놀았던 경험이 떠올라 먼저 놀이를 제안했으나, 그 아이는 반의 반장과 함께 논다며 나를 피했다.

서운하진 않았다. 아니, 서운했나? 사실 잘 모르겠다. 어린 마음에 너무 깊은 상처를 입으면 외면한다고 하던데, 내 마음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니며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내가 다가가면 은근히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에는 우연이겠지 하고 넘겼으나,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아, 이 아이가 나를 피하는구나'를 깨달아 버렸다. 일주일 만에 깨달았다. 그래도 앞자리 친구와 친해져서 쉬는 시간마다 그 아이와 놀았다.

이것도 얼마 안 가 끝나게 되었는데...


점심시간이었다. 같이 카드 게임을 하며 놀다가 웃으며 그 친구 몸을 밀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정색하며 내 허벅지를 내려쳤다. 당황했지만 나도 한 성깔 했던 터라 똑같이 내려쳤다.

그것이 감정싸움으로 번져 결국 선생님과 면담까지 가게 되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웃을 때 민 게 기분이 나빠서 때렸다고 한다.

그걸 말로 하면 되지 왜 사람을 때리냐며 선생님 앞에서 또 난리가 날 뻔했으나 선생님의 중재로 일단락되었다. 어린 나이의 싸움은 이렇게 유치하고 별것 없다.

나도 잘못했고 그 아이도 잘못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틀어진 관계는 회복할 수 없었다.

서로 상처를 받았고, 상대를 용서하기엔 아량이 좁았다.

내게 있어서 하나뿐인 친구였지만 그 친구에게는 다른 동급생이 많았기에 관계를 회복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내가 아니지.

또 새롭게 친구를 사귀기 위한 탐색을 시작했으나 안타깝게도 학교 체험학습 날까지 찾지 못했다.


체험학습 당일, 문제가 발생했다.

담임 선생님이 장애인인 나를 케어하면서까지 학급 전체를 감당하기란 어렵다며 어머니가 보호자로 동행하게 된 것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 옆자리에 어머니가 배정되었다.

나는 아직 10살, 친구가 고픈 아이였다. 왜 하필 어머니와 함께 타야 하는 걸까.

아직 나는 친구도 사귀지 못했는데. 뒷자리, 앞자리에서 다른 아이들이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끼고 싶었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했고, 내 오른편에는 어머니라는 장벽에 막혀 대화가 불가능했다.

어머니가 내 체험학습 하나를 위해 귀한 시간을 빼서 동행해 주는 건 정말 감사했지만, 고정 자리배치를 한 선생님이 상당히 미웠다. 어머니가 현장에 차를 끌고 따로 동행하겠다 하셨는데도 선생님은 불안하다며 계셔달라고 했다.


'나, 그렇게 말썽 안 피우는데...'


어머니께 그날에 대해 질문드리니 아직도 이 날을 떠올리면 속이 뭉클해진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런 슬픔도 없었을 텐데' 라며 늘 되뇌게 된다고 하신다. 가슴 한편에 해소되지 않는 한으로 남아있다고.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귀찮아서 그러셨다는 게 명백하다.

자신의 반에 장애 아동이 있다는 걸 탐탁지 않아 하셨던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꼭 슬픈 일만 몰아친 건 아니다. 내 옆자리에 특이한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뭔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맨날 연습장 종이 한 장씩 뜯어 달라며 거래를 해왔다. 마치 지폐처럼. 철저한 계산 속에 도움을 주었지만 이런 행동이 참신하고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자주 도움을 요청했었다.


나중에 알아낸 단어가 있는데, 이를 '은따(은근히 따돌리는 일. 또는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의 형태라 하더라.


이 초등학교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깨우쳐 준 것이겠지.

이제 와서 후회하고 미워해 봤자 내게 득이 될 게 무엇이겠는가. 이 잠깐의 학교 생활이 내가 장애인으로 생을 살아가는 데 최악의 시선들이 붙을 거란 걸 미리 알려 준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예고편 치고는 스포가 많은 영화라서 재미는 없지만, 이 공포 영화의 엔딩을 추측할 수 있으니까 덜 무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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